그린랜턴: 반지의 선택 - Green Lanter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세상이 점점 경쟁이 치열하고 살기 어려워서인지 천하무적일 것 같은 초인간들이 세상의 쓴맛을 느끼면서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영화들이 많아졌다. 사회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그들의 작업에 심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회의를 느끼는 상황이 영화 속에서 보이고, 자신의 경제적 문제에 시달리는 영웅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하늘에 살던 신들이 지상의 인간으로 변하면서 겪는 고충이랄까? 이런 류의 초인간적인 영웅들은 분명 인간적이고 바로 옆에 있는 우리들 같다. 그리고 인간이 겪고 있는 고민들을 듬뿍 갖고 있는 이들의 활약을 보면서 어느 순간 관객들이 현재 겪고 있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또한 초인간들의 영웅 영화에서 느끼게 됐다.
  초인간들의 활약을 담은 영화들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인간들의 고민을 말끔히 날려버리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과 다른 가치관과 확고부동한 믿음,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대단한 괴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통해 현실의 괴로움을 날려 버리는 즐거운 시간도 갖게 된다. 하지만 인간에 보다 접근한 영웅들이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면서 이런 기쁨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현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갔던 극장에서 고민만 잔뜩 갖고 오는 꼴이다. 그런 영화관람이 너무 흔해진 지금, 시름을 달래기 위해 갔던 극장의 영화들이 도리어 시름만 계속 주고 있는 상황이다.  

 

 


  좀 재미없어졌다. 고민을 위해 극장에 갈 영화들은 솔직히 많다. 하지만 고민을 날려 버리고 단순한 재미를 위해 갈 극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초인간적인 영웅영화에서 삶을 성찰하게 되고, 사회의 모순이 고발되며, 영화 속 악당들도 자신들의 악행이 다 이유가 있게 됐다. 과연 그들을 처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문제까지 영웅영화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배트맨은 주인공 자체가 고민의 심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스파이더맨은 평범한 그들처럼 학교와 생존에 부대끼면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명문 Columbia University에 다니는 수재이지만 삶의 질곡에선 벗어나지 못하는 불행을 짊어지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위해 의협심을 발휘하는 DNA 돌연변이 인간의 모습은 자신의 삼촌에게 받은 영향이 깊긴 하지만 그래도 안쓰러울 뿐이다. 솔직히 그들의 노력으로 세상이 바뀔지 의문이 될 만큼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탄생하는 악당들은 끝이 없다. 즉 사회의 만행에 대한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린랜턴은 그래서 반갑다. 사회적 냉대를 받은 친구가 악당이 되는 과정이 있긴 하지만 선악의 분명한 구분 속에서 정의로운 활동이 멋있어 보인다. 인생의 실패자일 것만 같은 이가 정의를 실현하고 사랑도 얻는 것은 분명 동화 같은 비현실성이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바라보고 싶은 그런 모습이다. 또한 여타 행성들 속에서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용기의 가치를 통해 공포를 극복하는 모습은 분명 인간의 한계와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의성도 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의 노력과 용기, 그것이야말로 인간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인 셈이다.  

 

 


  뻔하다는 비판, 이 영화는 이런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그것은 배트맨과 같은 영웅영화로 진화한 현대의 관객들이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과거가 과연 오늘의 가치를 상실할까? 그리고 단순한 영웅 이야기가 과연 배트맨보다 무의미할까? 고민 속에서 내린 결론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호하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보여주는 것 역시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고민의 시간 속에 파 뭍인 현대인들에 있어 과연 자신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더없이 반가울 수 있다. 그린랜턴은 그런 영화다. 과감하게 성찰을 삭제하면서도 분명하게 가치 있는 인간의 자세를 보이고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지루하지 않게 보여주는 영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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