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994년, 그 때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로 이행되는 과정이었지만 공고화됐다고 하기엔 너무 열악했다. 한나라당의 전신이었던 민정당의 독재권력이 물러났지만 사회 곳곳에 극우단체들과 반민주세력이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 세력으로 건재했고, 독재만 물러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 같던 기대가 무너진 시대였다.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했던 여러 양심선언들이 봇물 터지듯 나왔던 시절이었다. 그들의 용기로 한국 사회의 선진화가 이루어졌지만 양심선언은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기에 당시엔 두려움이 교차됐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어두웠던 시절이었다.
양심선언이란 것 자체가 그 시절의 우울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사회의 제도와 법으로는 결코 올바른 사회질서를 구축할 수 없기에 개인의 입장에선 최후의 수단일 수밖에 없는 양심선언은 거대세력에 당당히 맞서야 하는 용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이 실패했을 때의 공포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런 양심선언을 보호해줘야 할 이들에게도 똑 같은 용기를 요구한다. 이렇듯 위험한 일을 한 이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모비딕’이다.  

 

 


영화는 이미 15년도 더 된 과거의 시간을 배경을 들여다본다. 우아하지 못했던 그 시절을 통해 오늘의 우리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특히 거대세력으로 인해 한국사회가 움직인다는 음모론으로 오늘의 한국사회의 면모를 살피고 진단하는 특색 있는 현실고발의 영화다. 정부 위의 정부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는 현실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겐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국민들의 이해와는 다르게 진행되는 정치를 보면서 국민들은 좌절하고 분노하게 되지만, 그래도 바뀌지 않은 부도덕이 판치는 사회는 1994년이나 오늘이나 그다지 차이를 볼 수 없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물론 여당과 야당도 어떻게 못하는 사회의 부를 독점하는 세력들의 음모와 획책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사건과 희생, 그리고 한국의 우울한 자화상이 영화 속에서 매우 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정부 위의 세력이 가장 잘 사용하는 전략이 사실 왜곡이자 축소다. 그래서 ‘당신이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진실입니까?’ 라는 이 당돌한 질문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무거운 논제였다. 한국사회를 자신의 이익으로 이끌려고 하는 권력집단이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에까지 그 힘을 미치고 있으며, 진실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제공하고 진실 역시 왜곡시키는 장면에서 심각한 우울을 경험가게 됐다. 심지어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할 임무를 지닌 언론사 역시 그런 상황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스토리는 그래서 공포를 자아내기까지 한다. 그래서 소설 ‘모비딕’에서의 이야기들은 영화 ‘모비딕’의 기본 전제까지 만들고 말았다. 결코 믿을 수 없는 진실들이 있으며, 그것은 모두가 알아야 할 것들이지만 그것을 막는 세력으로 인해 잘못 알려짐으로써 사회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연기자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캐릭터들과 관계들을 통해 관객들이 볼 수 있는 현실과 그 위기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반국민들의 위기를 쉽게 만들어내는 음해세력들의 실상이 가상현실을 통해 드러남으로써 민주주의의 현위치를 보여주게 되며,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실감하게 하는 효과를 갖추게 된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평범한 진실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음해세력에 대항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선 다행한 일이지만 과연 그런 세력이 현존할지 잘 판단이 안 선다. 그것은 곧 1994년의 위기가 과연 2011년에 해소됐는가 하는 질문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아마도 답변에선 긍정적일 것 같지 않다. 왜냐 하면 지금도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내부고발자의 문제는 지금도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정부 위에 있는 세력에서만이 아니라 정부기관과 그 산하기관은 물론 현재의 모든 기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음해와 만행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내부고발자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지만 그들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은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그들을, 한국사회는 아직 보호해주지 못하는 미개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해피엔딩이 그래서 반갑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열망이 영화 속에서라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지독한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어쩌면 후속편을 제작하기 위해 그런 세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르겠고, 또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 그런 구성을 띄게 됐는지 모르겠다. 우악스런 현실 앞에 압도되어서 허우적거리는 인물보다 그래도 일을 잘 해결해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들을 보고 싶은 것이 관객이고 바로 한국의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은 물론, 희망도 품고, 또한 용기를 낼 수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 보는 내내 재미있었고, 즐거웠고, 미처 몰랐던 민주주의의 참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고맙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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