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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유혼 - A Chinese Fairy Tal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과거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장국영과 왕조현, 그 둘은 한국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고, 또한 지금도 그렇다. 전설이 되어버린 장국영의 매력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담겨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과거를 추억시킨 영화를 본 적이 없고, 아니 봤어도 전혀 기억이 없던 나다. 이 영화는 그래서 나에겐 신선한 대상이다. 즉 처음 듣는 스토리와 처음 보는 캐릭터, 그리고 개인적으로 중국은 물론 아시아 최고의 미인이라 뽑길 주저하지 않을 유역비 주연의 영화다. 개인적으로 20대도 아닌 본인이어서 왕조현도, 그리고 장국영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만 이 영화를 본 나는 그런 과거와의 관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본 것이라 이 영화는 분명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보는 것이다.
지금의 ‘천녀유혼’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영화이기도 하다. 과거의 이름을 딴 리메이크 형식이고 또한 상당 부분 오브제 했겠지만 말이다. 사랑의 대상과 방식이 과거와 차이가 나는 영화다. 그 때의 캐릭터들이 다시 나오고 있지만 그들은 다른 상황에 놓인 그들이다. 단절된 과거가 있는 현재의 아름다운 요괴는 과거를 잃어버렸으면서도 과거의 슬픈 인연으로 인해 언제나 그녀 주위를 맴도는 어느 퇴마사와의 슬픈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왜 그가 자신의 옆에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 퇴마사인 그가 자신을 결코 없애진 않을 것임을 직감도 하고 직접 경험하기도 한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가 자신 주위에 있음을 안다.
퇴마사인 그는 언제나 그녀 주위에 있다. 요괴를 퇴치해야만 할 퇴마사이면서도 요괴를 보호하는 역설적인 관계를 혼자 짊어지고 있는 그는 과거의 이야기를 혼자만 기억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그녀를 향해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멀리 떠나지도 못한다. 사랑이란 과거의 인연으로 인해, 그리고 불운한 경험으로 인해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도 없지만 멀리 떠나 보내지도 못한다. 불운한 사랑은 그런 것이리라. 역설직인 퇴마사의 운명이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알기에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이와 잊혀진 과거를 망각했기에 자신이 사랑했던 이를 인지하지 못하면서 그를 괴롭히는 요괴의 관계는 일방적인 순애보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순애보, 참 오랜만에 보는 스토리다. 과거의 사랑에 힘겨워하면서 망각된 사랑관계로 인해 상처를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이제 보기 힘든 인간관계다. Cool하디 Cool한 오늘의 인간관계를 본다면 퇴마사의 역설적인 사랑은 우화일 뿐이다. 자그마한 상처로도 돌아설 일이 많은 오늘의 시대적 분위기로 본다면 말이다. 현대의 인간관계와 너무나 다른 우화 같은 사랑은 그런데 묘한 울림을 던져준다.
오늘의 우리들은 일방적인 관계에 익숙하지 못한다. 그래서 쉽게 관계를 끝맺는다. 속된 표현으로 너 없어도 남자 혹은 여자는 많다는 표현이 오늘의 언어구사에 넘친다. 위로라는 말로 사용되는 이 표현 뒤엔 인간관계에 대한 허무함과 관계 지속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관계 유지는 남녀를 불문하고 이젠 너무 어려운 과정이다. 한 번 토라지만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수많은 사례들은 우리들의 글속에 넘치고 또한 넘칠 것이다. 이런 속에서 일방적인 순애보는 상처를 크게 입을 수 있으며, 그다지 이성적이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하지만 새로운 천녀유혼에선 이 어리석어 보이는 순애보가 힘을 발휘한다. 비록 비극이지만 한 사람의 마음을 다시 알게 되는 계기가 되며, 어설프지만 그런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함께 희생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런 서사, 이젠 거짓말처럼 보인다. 아니 과거는 어떨지 모르지만 오늘의 우리들에겐 매우 드문 경우이고, 현대인들에겐 주위에 널려 있는 새로운 대안을 버리고 구태의연하게만 보이는 옛사랑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이 유치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유치함이 현대인에겐 없는 것이고, 그래서 고독한 매일을 보내는 것이다. 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래서 언제나 외롭게 생활하고 기계의 나사처럼 취급될 때의 운명을 얼마나 저주할까? 그래서 어렵지 않게 자살하는 이들이 많은 것 아닐까? 그런 선택 뒤에 자신의 가치 하락을 느끼는 불운한 시간이 있어서인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귀중한 존재로 느껴지고 싶을 때, 그렇게 해줄 이는 이제 없어지고 있다. 유치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랑이 사실 무가치해서 비웃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우스워 보이는 것뿐이다. 그런 사랑의 대상이 내 옆에 있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이 어디 있을까? 새롭게 제작된 천녀유혼은 그런 동화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 고맙다. 잃어버린 것들은 장국영, 왕조현만이 아닌 것이다. 바로 귀중하게 여길 줄 아는 이들도 사라졌기에 그런 것들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디엔가 있을지 모를 환상을 경험하고 또한 그것으로 인해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해졌다. 이 영화, 참 예쁜 영화다. 과거를 리메이크한 것이 아닌 과거의 가치 있는 것들을 보여준 그런 영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