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 The Disappearance of Haruhi Suzumiy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비현실이 현실 같고, 현실이 비현실 같은 구성, 흔한 소재지만 언제나 흥미를 준다. 외계인과 학교를 함께 다니는 비현실적인 시공간을, 현실이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예술, 그리고 영화가 할 수 있는 특권이다. 검은 암실에서 상식 밖의 일을 갖고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얻는 것이야말로 영화의 장점이리라. 하지만 그래도 현실을 사는 인간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어야 사실 흥행은 물론 예술적 수준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뻔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일본 Animation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The Disappearance Of Haruhi Suzumiya)’은 앞서 말한 기이한 협정을 충실히 잘 지킨 영화다.  

  일본 Animation이라는 것을 빼곤, 사전지식이 하나도 없다 보니 영화를 보는 것이 초반에 고역이었다. TV용 시리즈 물인 작품이라 수많은 시간 동안 방영되면서 많은 정보들이 공개되어서 나름대로의 과정이 있었겠지만,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사전지식이 없는 관계로 이 영화는 다소 당황스럽고 혼란스런 전개를 보여준다. 알고 봐야 즐길 수 있는 영화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귀찮은 영화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묘하게도 바로 그것이 즐거움을 줄 수도 있는 추리영화와 같다. 또한 그것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황당한 상황이 진정한 현실이란 암묵적이고 강요된 전제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기이한 구성원을 지닌 SOS란 고등학교 서클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외계인과 지구인으로 구성된 팀에서 구심점, 아니 명령을 내리면서 팀내에서 일을 만들고 있는 스즈미야 하루히에 의해 벌어지는 일들이 그것이다.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전골파티를 준비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는데 일이 이상하게 틀어지면서 언제부터인가 과거가 바뀌고 팀의 일원인 쿈의 일상이 처음부터 바뀌고 만다. 과거가 통째로 변하면서 그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출발점이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영화는 변화된 삶을 제공하면서 쿈에게 질문을 한다. 자신이 원하던 현재의 시공간으로부터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이전으로 돌아갈 마음이 있는지를. 이 질문은 사실 자신의 현실에 대해 따분하게만 여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일반화를 담고 있다. 새롭게 변화된 곳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그리고 현실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즐겁게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는 있는지, 너무 타성으로, 그리고 게으르고 살고 있는지 등을 말이다. 영화는 그때부터 단순한 Animation을 벗어나 현실 속에서 타성에 젖은 사람들에게 질타를 하기 시작한다.  

  이때 좀 당황스러웠다. 변화를 위한 노력을 과연 했을까? 자성은 탄식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의 즐거움을 방기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개인적인 생활이 되고 만 것 같았다.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한 쿈은 큰 위기를 겪는 것을 보면서 타성에 젖은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많이 힘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것을 변화시켜야만 할 엄청난 과정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극적 긴장감과 아울러 느끼는 Carpe Diem은 분명 퇴폐적인 의미가 아닌, 보다 진중하고 가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끈한 변화보다 좀 더 현실에 충실할 수 있는 인생, 그런 것이 정말 해보고 싶어졌다. 한 해가 저무는 이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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