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 The Last Sta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9세기에서 20세기에 살았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하나인 '톨스토이(크리스터퍼 플러머)'를 미국감독이 미국자본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이 자체만으로도 흥미거리다. 자본주의적 속성이 담긴 미국자본이 보기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인 톨스토이는 사실 불편한 대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톨스토이는 위대한 영웅이 될지 아니면 어수룩하게 재산을 낭비한 자가 될지 사실 궁금했다. 하지만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결코 톨스토이는 아니었고, 그를 둘러싼 인간들의 이전투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톨스토이 영화에 톨스토이는 좀 뒷전이었다.
  톨스토이의 재산을 갖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체들은 개인적인 미래를 염려하는 톨스토이의 아내와 사회 진보주의자였다. 이런 이전투구 속에서 이 둘은 결코 속물근성만을 지닌 존재로 묘사됐다. 백작이었던 톨스토이의 재산은 어느 누군가에겐 편안한 노후와 자식의 풍요한 미래를 결정시켜줄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겐 평등주의를 실현하는 공동체운동의 자금으로 쓰일 수 있는 중요한 재원이었다. 이들의 첨예한 대립은 세상에서 살아갈 시간이 적은 위대한 철학가에겐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의 의지가 변하지는 않았지만 둘 간의 대립은 그를 인간적 고통으로만 몰아갔다.
  미국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근본으로 자처한다. 오늘날 전세계를 경제위기로 몰아간 신자유주의 역시 미국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런 미국이기에 공동체주의와 평등주의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곤 했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미국자본의 힘을 빌려 만들었기에 공동체주의에 대한 입장은 부정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톨스토이와 관련된 영화였는데도 말이다. 영화 곳곳에 담겨있는 공동체주의자에 대한 은근한 부정적 시각은 확실히 영화를 누가 만들었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재산을 통해 노후를 보장받으려는 톨스토이 아내인 소피야 톨스토이와 대립되는 인물로 묘사된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폴 지아마티)’ 역시 그가 추진했던 공동체주의적 인식과는 반대로 독선적이고 야심 있는 인물로만 그려졌다.
  ‘발렌틴 불가코프(제임스 맥어보이)’란 톨스토이의 마지막 비서의 시선으로 진행된 영화는 개인의 인식과 감정으로 진행됐다. 단순히 악처로만 평가됐던 ‘소피아(헬렌 미렌)’의 새로운 해석을 낳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는 다소 산만하면서도 차분하지 못한 채 주관적이고 불안한 방향으로만 나아갔다. 갈등 요소가 그다지 크지 못했지만 불안한 시선 속에서 상황은 이상하게만 꼬여만 갔고, 특히 아버지의 죽음의 장소에 도착한 딸의 어이 없는 애정행각은 그 사실의 진위여부를 떠나 자유란 감정을 충실하면서 부모와의 관계 혹은 인간적인 숙연함도 파괴시켜버리고 마는 것 같아 아연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벌어진 애정행각은 불륜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자막에서 톨스토이의 저작권이 아내에게 다시 넘어간 사연을 담은 자막은 어쩌면 톨스토이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엇나간 사례로서 남았을 것이란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기도 했다. 
  극장에서 위대한 소설가이자 철학가의 영화를 본 이들 중 나이든 분들이 많았다. 아마도 젊은20대에 톨스토이의 사상에 심취했음직한 분들이 과거를 투영하고, 자신이 갖고 있던 삶의 지표를 다시 되새기고, 또한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위대한 철학가의 생애를 다시 기리는 시간을 만들고자 온 분들이었으리라. 톨스토이란 거대한 사상가를 알기엔 현대의 20-30대에겐 좀 무리인 상황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분들을 위한 영화는 아니었다. 위대한 소설가의 이야기보단 그의 주변을 둘러싼 우아하지 못한 이들이 이전투구하고 있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고, 화끈한 애정행각을 아버지의 죽음도 막지 못한다는 묘한 상황까지 나오고 있었다. 위대한 소설가 옆에 있는 속물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같기만 했다. 마치 개인주의가 판치는 오늘날의 세상과도 같았다. 미국이 보는 톨스토이는 그렇게 불행하게 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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