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경제학 (양장)
누리엘 루비니 & 스티븐 미흠 지음, 허익준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솔직하다. 그런 그에게 ‘Mr. Doom이’란 별명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그 별명 뒤엔 위험에 대한 경고를 적의 공격으로만 생각한, 한참 잘 나갔을 때의 ‘월가’의 비아냥이 숨어 있었고, 그가 세상에 사라졌으면 하는 탐욕스런 희망사항이 있었다. 그런데 그 탐욕이 결국 사고를 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하게 됐다.
  경제학엔 어쩌면 좌우의 대립이 있지 않았는지 모른다. 오직 탐욕에 기인해서 편가르기를 하고, 내 편이 아니면 어떤 수식어를 사용해서라도 상대의 주장과 의견을 꺾으려고만 한다. 심지어 그것이 옳거나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그런 점에서 정직은 위험한 선택이며, 종종 위험하기조차 하다. 특히 강자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라고 충고하는 것은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이야기와 자주 일치하곤 한다. 그래서 루비니 교수는 공공의 적이 됐다. ‘Mr. Doom’은 그렇게 해서 얻은 이름이다. ‘Mr. Fact’가 아니라 말이다. 루비니 교수는 자신이 혜안이 옳았다는 주장이 입증되는 기간 동안 분명 위협과 조소를 견뎌야만 했다. 그리고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겠지만, 그가 옳았다는 현실에 관해 이제 책을 통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역시나 위기 뒤엔 탐욕이 있었다. 그리고 통제되지 않았다. 여기에 사기까지 더해지면서 상황을 최악으로 변했다. 현재도 이해하기 힘든 기이한 금융상품이 은행들과 그림자 은행들로부터 새롭게 제작되고 악용되면서, 거품으로만 가득 찬 주택의 위험을 분산시켰다. 그러나 그런 위험 분산은 결국 눈속임이었고, 책임지지 않는 trader들과 불량한 신용평가사들의 농간 속에 거품에 거품을 더하듯, 미국 국민들은 물론, 전세계의 모든 은행들과 투자자들이 위험을 공유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거품을 막고자 한 워싱턴 정가의 인물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고, 도리어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자들만 있었다. 현재는 과거와는 다른 시공간이란 주장만을 일삼고 자본주의의 위험을 무시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번에도 또 틀리고 말았다. 자유주의의 건강성에만 매몰 된 채, 그 위험성에 애써 눈감고 말았던 것이다. 9•11 이후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도하게 낮은 이자로 경기부양을 유도한 ‘그린스펀’ 전 연준 위원장의 시도로부터 시작된 과도한 경기진작은 거품을 낳고 말았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금리 인상을 통해 멈춰야 했지만 잠시나마 느낀 달콤한 맛에 결코 미국은 저금리를 포기할 줄 몰랐다. 여기에 책임지지 않은 투기꾼들의 역할에 힘입어 미국은 형편없는 위험들을, 건강한 상품에 끼워 팔 듯 하고, 그것을 역시나 국제적으로 구입하면서 위기는 세계화되고 말았다. 어느 순간 거품은 꺼지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풍부하지만 역시나 그에 취해서 결코 거품을 줄이고자 하는 시도도 없었고, 위기는 터지고 만다.
  루비니 교수의 이런 분석은 안타깝게도 사건이 터지고 나서 빛을 봤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파악한 그의 방법론은 역사의 보편성을 탐구하고 그 속에 숨겨진 필연적인 인과론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잘못과 위험을 막자는 것이다. 하지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경구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가 과거를 통해 예언한 사태가 오늘에서야 터진 것이다. 문제는 루비니 교수의 경고는 현재에만 있지 않고 그 이후에 더욱 큰 문제가 있을 것이란 미래의 경고다. 너무 쉬운 방법으로 달러를 찍어내면서 사건의 본질이 된 도덕적 해이를 제거하는 법을 만드는 일에 등한시 한 것은 일시적으로는 문제를 막을 수 있지만 결국 또 다른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점이 가장 걱정되는 내용이다. 심각한 위기 속에 손쉬운 방법은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지적한 것처럼 사태의 원인 제공자는 미국이면서도 미국은 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에 소극적이며, 그가 우려한 미래처럼 달러를 엄청난 양으로 찍어내는 양적 완화를 추구한다면 중국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고 결국 가치하락이 분명한 달러를 국제적으로도 회피하게 된 경우로 인해 달러는 기축통화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최악의 사태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공교로울지 모르겠다. 2010년 11월 5일 미국의 버넹키 연준 의장은 엄청난 달러를 세상에 풀겠다는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 루비니 교수는 어쩌면 그 정도까지 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그가 틀렸느냐가 아니라 최악까지는 안 가지 않겠느냐 하는 정도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인간의 탐욕은 상황을 심각하게 만드는 법이다. 그리고 그나마 예상을 적중한 자의 이야기에 그래도 둔감하게 대처하면서, 진정한 해결책보단 언제나 자신의 부담을 다른 타인에게 전가하고자 한 인간의 근본적인 탐욕이 일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결을 더 힘들게 한다.
  운은 분명 인생에 적용된다. 그러나 인과응보란 법칙도 인생에 적용된다. 언제 될지 모르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위기는 오기 마련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대충 넘어가려 한다면 위기는 더욱 커진 상황이 오게 된다. 그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인, 실패에 대한 치유를 하기 위해선 책임감을 갖고 고통을 각오하면서 견뎌야 한다. 그리고 어떻든 고통분담도 단행해야 하고, 도덕적 해이를 해소하는 정책도 갖춰야 한다. 이를 태만하게 할 경우 위기는 더욱 커지고 루비니 교수의 경고처럼 더 크고 위험한 대재앙이 올 것이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 때 루비니 교수가 또 옳았다라는 칭찬을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인간이 그렇게 우울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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