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혁명
데이비드 B. 버먼 지음, 이민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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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에 있어 소비는 생명줄이다. 그것은 기업과 같은 생산자에게만 해당되진 않는다. 소비자들 역시 단순한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지금에도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고 상대적 우월감을 과시함으로써 사회적 강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소비는 피할 수 없는 생존방식이다. 과소비는 그래서 태어난 것이다. ‘Winner takes it all’처럼 모든 것을 지배하기에, 그리고 그것을 과시하기에 더욱 많은 것들을 쟁취하는 기회를 얻기에 말이다.
  이런 생산과 소비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바로 디자인이다. 소비를 넘어 과소비를 해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에 있어서, 디자인은 개인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생산자인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그리고 저급하게 본능을 자극함으로써 얻는 것들이다. 인류가 근대를 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동물적인 본능을 넘어 보다 고차원적인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많은 철학가들과 지성인들의 이야기는 사실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디자인은 인간의 편협하거나 본능에 가까운, 혹은 성적인 것으로 상품을 팔려는 그런 방식만으로 기업인들의 탐욕에 봉사하고 있고, 또한 그것이 그들에겐 가장 합리적인 사업방식이고, 지금까지 그랬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불필요한 것에 낭비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고, 건강에 문제가 되고 있는 담배를 더욱 잘 팔리게 하는 부도덕도 자행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기엔 그 피해는 너무 컸고, 잘못했음을 피해갈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렇게 잘못을 한다고 해도,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질타와 자성은 그 주체에 따라 다르고, 또한 질타는 변명으로 귀결되면서 책임을 떠안지 않으려는 비겁함에 이르지만 자성은 자아비판으로써, 보다 건전한 미래를 건설하는 첩경이란 점에서 역시 다르다. 그래서 이 책은 신비롭다고 할 만큼 인상적인 책이다. 자성을 시작하자는 이야기는 특히 그렇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에 대해 혁명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를 살면서 매우 어렵고도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자신이 먹고 사는 것을 줄이는 아픔은 물론 그 영역에서 먹고 사는 자신들의 동료들로부터 소위 ‘왕따’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그리고 부정직하지만 그 부정직으로 먹고 살기에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제도와 관례는 그렇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B. 버먼’은 그런 과격하면서도 무모한 짓을 하고 있다. 이 책의 바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디자인 사회는 물론 자본으로 먹고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회 정의’를 외치고 있는 것은 말이다.
  태생부터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광고는 언제나 과대광고가 있게 마련이며, 설사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긴 하더라도 미필적 고의처럼 무관심하게 처리함으로써 자사 제품의 강점만을 보여주려고 한다. 종종 거짓된 이야기로 과대광고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특성으로 몰지각한 소비를 이끌면서 지구를 위험하게 빠뜨리기조차 하게 됐다. 지금까지 그렇다. 저자는 이런 디자인의 자세를 바로 잡고 ‘좋은 디자인’을 하자고 역설한다. 아무 관련 없는 상품에 성적 이미지나 낭만적인 이미지를 결부시켜서 상품을 팔아서, 과소비를 조장하고, 건강을 헤치고, 마지막으로 지구를 파괴하는데 앞장서는 디자인들의 자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저개발국에서 자행된 뇌쇄와 같은 방법 역시 미래를 위한 상품시장을 개발하는 것을 통해 한 인간의 개성은 물론 건강까지 파괴시키는 사악한 디자인으로부터 이제 지구를 아름답게 꾸미는 디자인을 시작하자는 그의 주장은 식상한 디자인 세계에 큰 의미를 던질 것만 같다.
  부자를 꿈꾸기 위해 직업을 선택한다면 디자이너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은 지구를 지키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덕목일 것이다. 인간이기에 책임지고, 또한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공동체적 사고를 지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그래서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의 의견에 동조한다. 또한 이런 이야기는 디자이너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소비를 만드는 사람도 문제지만 그런 것을 의도하는 기업가도 잘못이 있고, 그것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행복해지려는 소비자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모두가 잘못이기에 디자이너의 문제를 희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이야기처럼 지금 시작하자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주변의 문제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자성해 볼만 하다. 우린 이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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