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사라기 미키짱 - Kisaragi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멋진 반전의 향연이었다.
  유명 아이돌 스타의 죽음 1주년을 추도하기 위해 모인 어른들의 출연은 시작부터 괴이했다. 아이돌 스타들을 사모하기엔 너무 늙은 그들이었기에 영화는 어떤 광적인 팬들의 과도한 집착으로 보이기조차 했다. 그러나 철없어 보이기만 한 그런 다섯 명의 사회인들의 이야기는 각자의 사연을 통해 그들의 진정한 모습은 물론, 현실적인 캐릭터로 돌아오면서 각자의 애달프고 슬픈, 그러면서도 타당한 사연으로 가진 보통 남자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들이 어린 아이돌 스타를 사랑하는 것은 변치 않았다.
  영화인지 연극인지 헷갈린다. 어쩌면 의도적인 장치고 두 가지 요소를 결합시킨 이 영화는 재미있게도 추도식이 벌어지는 장소를 벗어나면 그곳은 환상과 과장의 세계로 표현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인 장소가 현실적으로 묘사되더라도 그들 속이 모두 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들은 아이돌 스타라는 환상적 이미지를 스스로 창조한 체, 그 속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고 또한 벗어나고 싶지 않으려는 남자들일 뿐이다. 밖에서도 또한 안에서도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환상과 이상으로 뒤범벅된 것이다.
  선망의 대상이 됐던 ‘키사라기’ 아이돌 스타의 자살 1주년 추도식에 모인 다섯 남자들은 매우 기이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전혀 정상적일 것 같지 않은 이 남자들은 양복이 잘 어울리는, 결코 십대라고 볼 수 없는 남자들로서 얼굴엔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10대들처럼 소위 광적인 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임 이후 자살이 아닌 살인이라는 기본 전제를 시작으로 하면서 그들의 흥미진진한 영화는 서서히 그 진가를 드러낸다. 영화의 압권은 무엇보다 끝없이 전개되는 반전의 연속이다. 그들의 과거의 비밀이 한 명 한 명 드러나면서 영화는 한 명의 과거사가 드러날 때마다 급격한 반전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반전 속에서 영화의 연극적 요소와 맞물리면서 보는 관객들을 흥분시킨다. 이런 흥분을 일으키는 아드레날린은 무엇보다 뛰어난 배우들의 멋진 카니발이 있기에 가능했다.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사랑스런 그녀, 현대의 남자들의 즐거움의 원천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인 곳에서 벌어지는 진실과 반전 속에 그들이 사랑했던 키사라기의 삶의 진실과 고민, 그리고 한 여인으로서의 행복과 진심을 확인하는 순간이 됐다. 무엇보다 화려한 아이돌 스타에서 인간이면서도 꿈을 가진 어느 착한 여인임이 확인됐다. 그녀는 평범했다. 하지만 그런 진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곳에 모인 그들에게 그녀는 분명히 나름의 환상을 만들어주었고, 힘든 일상에서의 활력이자 먼 하늘의 별로서 다가온다. 진실이 그녀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포기할 수 없는 자기 나름의 환상적인 그녀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었다.  

  진실한 그녀이기보다 환상과 낭만으로 치장된 그녀이기만을 원하는 오늘날의 남자들은 어쩌면 현실 부적응자들인지 모른다. 그리고 심적 고통을 언제나 마음 속에 담고 산다. 그러기에 그것을 피하고자 하지만 현실이란 냉혹한 벽 앞에 언제나 무디어지고 마는 자신들의 용기와 노력, 그리고 담대함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래서 어느덧 현실에서 벗어난 그곳으로 자신들의 쉼터를 만들고 그곳에서 행복을 느끼고자 한다.
  감상적이다. 현실에서 꿈과 낭만을 이룰 수 없기에 억지로라도 만들게 된 자신만의 낭만적인 장소는 사실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건강하지도 않다. 그런 과정에서 잃어버린 자신들의 건강한 생명력은 사라지고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인생들만 양산한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며 그들은 행복하다는 착각을 만끽한다. 어차피 현실에서 얻을 수 없다면 가공된 환상이라도 즐겨야만 즐거운 가련한 인간들의 단면이다. 그리고 그런 험한 낭만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이 현대의 남자들이다.
  아이돌 스타는 어느덧 모든 세대의 욕망이 되고 있다. 10대들에겐 선망과 성공의 상징이라면, 20대는 물론, 30-40대 들에겐 사랑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것은 남녀 따질 필요도 없다. 오빠 부대는 물론, 삼촌 부대, 누나, 아줌마 부대 등 한국사회에서 각종 부대들이 넘쳐나고 있다. 부대란 의미는 개인이 아닌 집단적 특성을 아우르는 어휘다. 한 사람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 집단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이며, 모두가 공동으로 갖고 있는 특성이란 말이다. 아이돌 스타에 대한 우리들의 이런 갈망은 어쩌면 잔혹해진 현실 속에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가련한 인간들이 보이기도 하다. 또한 허약해진 인간관계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낳은 대안으로서의 기능도 한다.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약한 관계를 믿기 보다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스타에 취함으로써 차라리 현실의 고통을 잊고자 하는 몸부림인지 모른다. 어쩌면 현실에서의 실패라고 할까? 아니면 새로운 돌파구가 될까? 아무래도 돌파구는 못 될 것이다. 현실감각의 부재란 결국 현실에서의 능동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 찾기를 애초부터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현실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나아갈 것이다.
  불쌍하다. 영화 곳곳에 존재하는 현대의 남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결코 현실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경제적 가치나 외모라는 기준 하에 판단되고 소비되는 현대의 남성들에겐 Loser란 항목이 그다지 특별한 기준도 아니며, 그 분류에 끼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은 누군가는 그런 애처로운 노력이 실패한다. 사회적 Loser들은 그래서 인구 비율 상 어느 정도의 계층을 형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Loser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은 어쩌면 가공되고 치장된, 예쁜 가식의 미소녀일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로 구분되는 남성 Loser들의 소비력을 끌기 위해 예쁜 그녀들은 양산되고 있다.
  Loser, 그들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행복을 보장받았을까? 과연 그 보장받은 수준에서 만족할 수 있을까? 하긴 이런 물음은 무의미한 것이다. 어차피 스스로 찾아서 확보해야 할 사회적 자본이니까. 그러기에 최소한조차 마련할 수 없는 이들이 있기에 그들에게 예쁜 소녀는 사회가 마련해준 축복일 수 있다. 비록 거짓이고, 감추어진 진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자신을 위해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 또한 예쁘게 치장한 그녀들이라면 진실이 무엇이든 고마울 따름이다. 사진 속의, 혹은 TV 속의, 혹은 강한 힘을 지닌 보디가드들이 둘러싼 공연장의 그녀들이, 보편적이겠지만 마치 자신만을 위해 웃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인 것이다. 매력, 그것은 소소한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그나마 보장된 축복인 것이다.
  거짓이라도 좋을 것이다. 자신만의 그녀, 그것은 현대 방송 매체의 크나큰 발전으로 얻게 된 Loser들을 위한 축복인 것이다. 분명 그 뒤엔 슬픈 우화가 존재하고, 슬픈 그들이 존재한다. 어느 순간 최고의 것들을 독식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가 된 이 현실 속에서, 그나마 만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을 위한 기본권이 마련된 것이니까. 슬프지만 만족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나마 얻을 수 있는 비현실적인 망상 속에서 얻게 된 최소한의 행복조차도 빼앗길 수 있으니까.
  보기 나름이리라. Loser들의 삶에 만족하는 방식이 좋아 보이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면 행복할 수 있다. 가식의 몸동작에서도, 아니면 Loser들의 소비력을 긁어 모으기 위해서도 멋진 모습으로 활약하는 미끼짱은 그래서 너무 좋아 보인다. 한 인간의 가치를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가치로만 따지는 이 시점에서 많지 않은 돈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예쁜 소녀의 이미지는 확실히 좋은 행복의 조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록 불행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Loser들의 생존의 지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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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novio 2010-03-24 16:06   좋아요 0 | URL
과연 삶을 제가 잘 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요새 제 주변에 힘든 일이 있는데 님의 글을 보고 조금 힘이 나네요. 지금 눈이 오지 않은데 좋은 하루가 함께 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