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할둔 - 역사의 탄생과 제3세계의 과거
이브 라코스트 지음, 노서경 옮김 / 알마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랍권은 물론 마그레브란 지역은 이 책을 읽기 전엔 무척 낯선 지역이었다.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해도 이들 지역에 대한 이질적인 인상은 아직도 건재하지만 그래도 호감도는 무척 높아졌다. 아마도 ‘이븐 할둔, 역사의 탄생과 제3세계의 과거’라는 책이 준 첫 번째 선물일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얻은 것만이 이 책의 선물은 아니다. 무엇보다 마그레브를 포함한 아랍의 뛰어난 역사학자의 철학과 그의 시대를 앞서간 현대성을 보게 된 것은 물론 과거에 갖고 있던 부정적 인식이 상당부분 감소됐던 것이 가장 크다.
  이 책 이전에 읽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란 책에서 묘사된 북아프라카 국가들의 행태와 불미스런 내용들은 이 지역에 대한 호감도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시대적 차이는 있겠지만 어차피 짧은 역사적 사실 앞에 개인적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만큼, 해적이나 인신매매와 같은 어휘들로 치장된 부정적 어휘들은 마그레브 지역에 대한 인상을 그다지 좋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했던 시오노 나나미의 어쩌면 편향된 시각에 따른 저술방식이 그 원인이었겠지만 개인적 입장에선 시작부터 이븐 할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음을 부정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유럽의 노예무역을 위주로 쓴 책을 읽었다면 과연 유럽에 대한 감정이 호의적일까 하는 자문을 한다면 확실히 객관화된 자세를 갖기 위해선 관련된 책은 물론, 양쪽의 견해를 대변하는 Text 역시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대성의 한계이거나 특수성이겠지만 신에 대한 경배를 주장하는 신비주의자이면서, 동시에 합리적 사고로 연속된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를 찾고 그것을 기술하려는 어느 역사학자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인상 깊었다. 책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많은 고찰을 하고 있는 부분으로서, 어쩌면 시대적 한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의지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시대로는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려는 정직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에 대해 가장 의미 있고 보면서 큰 인식을 얻은 것은 도시에 대한 그의 인상과 판단이었다. Local적인 특성은 물론 시대적 특수성이야 존재하지만 도시의 근본적 허약함을 통찰한 그의 인식은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대목이었다. 과연 그의 해석이 현재에도 통할 것이냐는 문제는 많은 담론을 요구하겠지만, 부피를 엄청나게 키우면서, 거의 50%가 되는 현인류가 살고 있는 도시는 현재 사치와 향락의 주요 거점이 됐으며, 인간사회의 건강성을 계속 훼손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한 환경파괴의 지역뿐만 아니라, 건전한 발전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대목은 아무래도 현대성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저자인 ‘이브 라코스트’는 자신이 태어나고 또한 자신의 국적이 있는 북아프리카에 대한 애정을 갖고 이븐 할둔의 책을 통해 이 지역의 성장의 둔화의 원인과 또한 식민지의 원인, 그리고 저개발의 원인을 밝히려고 하고 있다. 특히 그는 다른 지역들로부터 잘못되고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지역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븐 할둔이 제시하고 분석한, 지역의 통합과 권력의 동력인 ‘아사비아’에 대한 분석과 함께, 아사비아를 통해 당시의 지역구분인 ‘움란 바다위’와 ‘움란 하다리’의 건강성과 그 관계를 통찰하는 대목은 무척 인상 깊었다. 이런 분석은 마그레브란 지역의 낙후성이 외적인 요인보다 내부적인 요인에 있음을 확인하고, 동시에 일반화로 확대했을 경우 사회적 건강성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현재의 지역적 저개발로 인해 그 지역에서 나온 문화가 수준 낮을 수도 있다는 편견은 언제나 이븐 할둔 같은 뛰어난 학자들로 인해 쉽게 꺾이곤 한다. 아마 내 경험에도 정확하게 적용됐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결코 의미 없거나 불필요한 것이 아닌, 도리어 큰 즐거움이 된다. 새로운 것을 알 기회를 얻음은 물론, 새로운 인식과 지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적 성장이란 이런 단계를 요구하고 있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븐 할둔의 작품인 [역사 서설]을 직접 만나고 싶다. 그래서 개인적인 편견을 깨는 것은 물론, 보다 새로운 인식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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