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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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내가 본 지금까지의 소설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래서일까? 소설 “광기(Delirio)”는 다른 책과는 달리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고, 시작부터 끝까지 한 부분도 놓쳐서는 안 될 정도로 신경을 쓰게 했다. 라틴문학이 언제나 새로운 것을 전달해준다는 측면에서 이 책 역시 그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좀 읽기 힘든 구조였다. 시간은 순행적이지 않았고, 3대에 걸친 이야기들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시간의 배열은 퍼즐처럼 혼돈스러웠다. 또한 일반적인 소설처럼 한 개인의 서사구조도 아니었다. 여기에 역사적 사실을 담은 배경에서 다소 약한 사랑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아길라르라는 캐릭터는 작가 본인의 말처럼 다소 비현실적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마도 현실 속의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갈등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쉽다.
  그러나 이런 단점은 이 책의 장점을 통해 쉽게 덮을 수 있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라틴문학의 색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만 같았다. 너무 낯설었지만 새로운 시도가 눈에 보였고, 도전정신 역시 강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진부하게 된 소설의 영역에서 이런 모험작품들은 분명 큰 희망을 던져주는 것들이다.
  소설의 시작은 무척 색달랐다. 어떤 리포터 앞에서 이야기를 하듯, 주요 인물들인, 아구스티나, 아길라르, 미다스 등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구성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서사구조는 각자의 이야기에 의한 1인칭의 시각에서 구술된다. 객관적인 사실을 주관적인 시선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고 있기에 이 소설엔 객관적인 내용을 어느 한 개인의 시선을 통해 재해석되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통해 갈등으로 비쳐지고 또한 각자의 해석을 통해 갈등이 해소된다. 각자의 시선으로 상대의 행동을 해석해내는 방식은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이 됐고, 언제나 타인에 대한 궁금증을 야기하며, 바로 다음은 무엇일까, 혹은 왜 그랬을까 등의 의문을 폭증시키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구성은 확실히 이 소설의 긴장미를 높인 묘한 방식이다. 아마도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콜롬비아, 참 슬픈 현실을 안고 있는 나라다. 국토의 반이 게릴라가 점령한 적도 있었고,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군을 끌어들인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소설은 다양한 직업군과 계층군을 이룬 인물들을 배치한다. 작가는 그런 캐릭터들을 설정하는데 있어 전형적 캐릭터만이 아닌 개성적인 캐릭터 역시 혼용하는 기막힌 인물배치를 하고 있다. 사실 광기에 젖은 여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개성적이다. 그러나 사회적 혼란과 위선에 찬 가식을 가진 어느 잘 사는 부자 가정은 그 자체가 광기를 낳을 수 있는 매체였고 그러기에 기이한 인물을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은 캐릭터 설정에선 마술적 사실주의를 따른 것만 같다. 현실 속에서 비현실성을 담은 이 이야기는 마치 평범 속에서 기이한 매력을 뽑아내는 것만 같았다. 
  안타까운 결말이었지만 그래도 강조된 사랑은 분명 이 소설의 강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길라르로 대표되는 착한 남자의 이미지는 분명 콜롬비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찾기 힘든 인물일 것이다. 광기에 물든 여인을 구원한 것은 가족도 아니고 그가 사랑했던 남동생도 아니었으며, 그와 이전에 관계를 맺었던 어두운 사업을 한 미다스도 아니었다. 결국 사랑으로 감싼 아길라르란 인물이다. 그의 비현실성은 어쩌면 약점으로 이야기될 수 있지만 현 사회에서 인간의 탐욕이 범람하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것 역시 사랑과 같은 착한 인간성인 것은 어쩔 수 없는 대안이다. 사회에 대한 배려가 예술의 목적 중 하나라면 작가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선택과 그 제안은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다. 최근 소설에서 사라지고 있는 낯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본 것은 즐거운 기억이 될 것이다.
  작품을 따라 읽어가면서 들었던 것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라틴문학이 언제나 새로운 시도와 시각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래도록 하는 일이 빈번한 것은 그들의 문학적 토양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무서워하지 않는 작가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라우라 레스트레포 역시 그런 작가들 중 하나이리라. 다음 차기작품이 무척 기대되는 이유도 이런 것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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