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제국 - 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
임근혜 지음 / 지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 12월 1일 영화 ‘시간의 춤’을 보기 위해 갔던 ‘시네코드 선재’는 나에게 영화만의 관계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 때, 선재는 Martin Creed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고 잠시나마 시간을 허비하기 싫었던 난 입장표의 값, 3000원을 지불하고 전시장을 찾게 됐다. 그러나 Martin Creed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성향의 작가인지 잘 모르고 들어갔고, 이후 근처에 있는 서울 [아라리오 갤러리]에 갔을 때, Tracey Emin과 Antony Gormley의 작품을 봤지만 어떤 작가들인지 잘 몰랐다. 미술의 세계를 즐기기 위해선 미술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지식은 아니어도 나름의 교양을 얻어야 한다는 것, 싫지만 현대인이 현대가 주고 있는 다양한 문화와 예술, 그리고 기쁨을 즐기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다. 난 그렇게 영국의 작가들을 만났다.
  1990년대의 예술, 나와는 멀지 않은 시간대이다. 그런 시기에 벌어진 영국에서의 문화, 혹은 예술계의 변화는 정말 격렬했나 보다. 저자 임근혜의 소개와 분석은 미지의 세계로만 보이던, 아니 관심 밖의 세상이었던 영국의 보이지 않던 모습을 제대로 알려줬다. 분명 이 책은 1990년대의 작가들만 다루지 않았다. 역사적 개괄도 담당했기에, 1990년대 가장 활약이 컸던 yBa (Young British Artists)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그들의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고 yBa의 활약상이 한 시기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기에 21세기를 넘어선 이야기도 해야 했다. 그러나 <Sensation>이란 당시엔 격하기만 한 전시회를 중심으로 태어난 yBa가 이야기의 주류를 형성했기에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저자는 거칠면서 반전통적이고, 어쩌면 기존 질서에 대항한 yBa의 예술적 흐름이 지탱했고, 인기를 끌었던 이유로 크게 세 가지 근거를 두고 설명한다. 우선 영국이 갖고 있던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 혹은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에 대한 관대함이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부터 인종의 다양성이 성립된 이후 마련된 이 대영제국의 속성은 분명 누군가의 아픔을 의미하지만 어떻든 거칠고 기이한 문화를 이루는 기반으로서의 기능을 했다고 지적한다. 또 하나는 영국에서의 현대예술이 갖게 된 소통능력이 있음을 지적한다. 영국의 예술이 예술의 세계로만 빠져들지 않고 지역사회와 경제, 인종, 대중문화, 정치와 경제 등에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미술의 대중화이다. 우아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신비로움으로만 여겨지던 과거의 미술과는 달리 영국의 현대미술, 특히 yBa는 대중스타처럼 등장했고, Gossip과 마케팅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소비된 것이다. 이를 통해 현대미술은 곧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이자 젊음을 함유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영국 현대미술계의 대응방식이었다. 영국의 현대미술계는 경제적 위기와 새로운 변화 기운으로 인해 전과 다른 변화를 겪게 됐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하게 된 것이다. 우선 영국의 현대미술의 아이콘인 yBa의 반응은 매우 대중적이었고 세속적이었다. 또한 그들을 받아들인 영국의 미술전시관 역시 마찬가지로 대중적이었고 세속적이었다.
예술의 변화는 경제적 변화와 함께 온다. 경제적 한파가 밀어닥친 1980년대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던 영국 예술계는 좀 더 젊게,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Mess Media의 힘을 빌려 그들의 대중성과 상품성을 높였으며, 테이트 갤러리와 영국 미술관의 재정상태가 악화되면서 그들의 운영기금 확보와 같은 현실적 이해와 맞물려 미술의 이벤트화가 추진됐다. 이에 부응하여 미술계와 언론의 상업성이 결합되고, 젊은 예술가들에게 바야흐로 주어진 ‘터너상’으로 은밀하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걷어내고 대중가수와 같은 분위기와 인기를 끌도록 하는 역할을 부여 받는다.
  Gossip과 Shocking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다가선 yBa는 전통적인 방식관 매우 이질적이었다. 신비로움과 거리감으로 미술의 우아함을 강조했던 기성미술가와 달리, 강력한 세속성과 과도한 노출로 yAa는 세상에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 물의에 가까운 시끄러움을 자아냈고,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런 논란으로 인해 그들의 미술품들의 가치는 거침없이 상종가를 기록하게 됐다. 각종 경매시장에서 그들의 출품가가 도달한 가격은 세인들의 화두에 올랐고, 그들은 막대한 부를 얻었다. 미술과 대중적인 상업화와 손을 잡은 것에 대한 결과는 물질주의적 측면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데이먼 허스트’는 돈방석에 올랐고, 찰스 사치 등의 큰손들이 미술계의 상업화를 주도했다. 마틴 크리드의 기이한 작품들도 작품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덕분이었다. 동시에 선정적 이미지 역시 작품으로 인정되어서 트레이시 에민의 거친 세상 역시 주목을 받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거리감이 있었던 미술계와 상업계가 손잡으면서 일으킨 이런 현상은 좋든 싫든 영국은 물론 전세계적 현상이고 어쩌면 시장질서의 세계화가 미술이란 예술영역에까지 미쳤다는 것을 입증한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상업성과 미술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그것이 어떤 작품이고 내용이든 말이다.
  다른 한 쪽에서의 대중과의 소통은 또 다른 측면을 갖고 진행됐다. 대중적인 공간에서 자신들의 미술영역을 가다듬고 개척한 미술가들이 그들이다. 공공미술 등에서 볼 수 있는 대중과의 직접 대화는 물론, 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공중의 장소에 직접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얻게 된 것이다. 미술의 민주주의화라고도 느껴질 수 있는 시도는 확실히 전통과는 다른 특색을 지녔다. 이런 변화는 동시에 미술작품을 통해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경제를 살리려는 움직임이 가세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그래서 생기를 잃고 정지상태였던 화력발전소를 ‘테이트모던 런던 현대미술관’로 탈바꿈시킨 것도 가능했고, 게이츠헤드 시의 ‘북방의 천사’ 프로젝트도 가능했다. 또한 트라팔가 광장의 ‘네 번째 좌대’ 프로젝트 역시 이런 결합의 산물이다. 좀 더 가까워진 대중적 미술 공간의 확산은 확실히 주목거리다.
  이런 근거들은 사실 하나로 수렴된다. 무엇보다 미술이 대중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과도한 Shocking한 방식이든 아니면 공공미술과 같은 방식에서 그것들을 읽을 수 있다. 세상과의 단절이 아닌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그들은 전통이 선택했던 신비로움을 깨치고 보다 광장적이고, 보다 대중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에 대한 부수입도 분명 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술이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그것에 대한 효용가치도 깨우치게 됐으며, 대중이 마음먹는다면 미술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인식을 광범위하게 얻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런 가치야말로 yBa가 우리들에게 선사한 선물일 것이다. 현대미술의 대중적인 확산은 무엇보다 현대인들의 문화적 욕구를 자극했고 미술의 거대산업화를 통해 문화적 즐거움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평범한 개인이 어렵지 않게 어느 거리에서의 미술작품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또한 좀 더 그런 기회가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까지 하게 됐다는 점은 무엇보다 긍정적인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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