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 Welcom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Welcome], 심각한 역설이었다. 그리고 극단적인 대조의 영화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우선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서사는 비극적 로망소설 같지만 그런 이야기가 안고 있는 세상은 냉혹한 현실이다.
  어느 프랑스 남자(시몬)가 자신의 로망을 만나게 된다. 불법이민자였지만 자신에게 사라진 사랑에 대한 열정, 수영선수로서의 재능, 그리고 비현실적인 마음가짐을 가진 불법이민자인 17세의 어느 소년(비랄)이 그였다. 자신에게 전혀 없었던, 혹은 이미 사라졌던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자신과 너무도 다르기에 그 소년에게 빠져들고, 그를 위해 무엇인가를 주려고 한다. 그 때, 그 프랑스인은 이혼준비 중이었고, 수영강사였고, 개인주의 속에 살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있는 중이었다.
  사랑을 위해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에서 프랑스로 와서 다시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 런던에 있는 자신의 애인을 만나러 가겠다는 젊은 청년, ‘비랄’은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선 바보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에서부터 프랑스의 항구도시 ‘칼레’까지 왔고, 또한 ‘칼레’ 앞에 있는 ‘도버해협’을 수영으로 건너려는 무모한 그는 동화에서나 있을법한 서사의 캐릭터일 뿐이다. 그런데 영화 [Welcome]엔 그런 캐릭터가 있다. 아마도 영화는 비현실적인 로망을 이용, 상업성을 충족시키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17살의 쿠르드 난민이 자신의 생존이 아닌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감당해야 할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영국으로 가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불법이었고, 결국 그는 불법 이민자란 낙인이 찍히게 된다. 또한 그런 모험을 이루기 위해 그의 천부적인 자질인 축구를 어디에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바다를 건너기 위해선 수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세상과의 엄청난 투쟁을 해야만 한다. 어떤 점에선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낭만소설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불쌍한 마이너러티들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인 것이다. 사랑이란 행복을 위해 치러야 할 사회적 소수의 비극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17살의 허망한 꿈을 막지 않고 그에게 가능하면 희망을 주려고 한 사람은 그의 수영선생, ‘시몬’이다. 그는 어쩌면 17살짜리 소년의 사랑이 부러웠는지 모른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과거의 아내가 자기 집에서 그녀의 짐을 꾸리는 것을 도와주고 있는, 허망한 상황에 직면한 사내다. 그런 그에게 그 소년은 묘한 기대감을 갖게 한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소년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목도한 난민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대응은 격하기 그지 없었고, 그들을 격리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소심하나마 저항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그런 모습은 한계에만 봉착할 뿐이다. 그런 과정에서 소년에 대한 그의 집착은 아슬아슬할 뿐이었다.
  영화는 비극으로 끝났고, 어쩌면 그것은 시작부터 내정됐는지 모른다. 설사 도버해협을 건너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더라도 그 때부터, 또 다른 비극이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다. 성사돼선 안 되는 이유는 영화 도처에 혼재되어 있었다. 영화 끝나고 나서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프랑스의 불법이민에 대한 사회적 각성인지, 아님 비극적 사랑 이야기에 대한 연민을 보고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한 중년의 다짐인지. 아니면 힘든 사회적 배경 속에서 피어난 인상 깊고 사랑의 가치를 주장하는 어느 서사. 이런 식으로 본다면 관객의 취사선택을 위해 마련됐거나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선택할 수 있는 영화 정도. 어떻든 그 둘 사이 어디에 그런 것들은 있을 것이다. 
  이런 애매한 혼란 속에서도 내가 봤던 것은 우리에게 사라지고 있는 인간적 매력의 확인이었다. 현재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과정은 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심화이든, 경쟁의 심화이든, 확실한 것은 밥벌이에 목매도록 사회는 바뀌고 있다. 이러기에 이민자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사랑도 사치스런 감정 정도로 매도하고 있다. 인간의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변하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과거 인간미로써 평가되고 있는 것들이 지금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같이 살기 보다 혼자 사는 것이 편한 지금, 현대사회는 결혼이나 가족보다 이혼이나 싱글이 대세다. 우린 상대가 필요 없는 그런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 건너 여자를 만나겠다는 청소년의 생각은 솔직히 우스울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프랑스 남자는 감화된다.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없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고 싶지 않은가? 이혼하는 그 시점에서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그를 보고 그는 해협을 건너려 하는 소년을 돕는다. 현실에 비중을 두는 그 순간 정작 잃어버리고 있는 그 감정과 소중한 것을 깨우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소년의 희망이 허망할 수 있어도 조금이나마 성공하길 바랬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소년은 비현실적인 캐릭터라면 프랑스 선생은 바로 우리들과 똑 같은 현실적인 현대인이 된다.
  결국 이 영화는 누가 이기느냐 하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누가 옳으냐가 질문이고 아마도 그것은 소년이 될 것이다. 우리들이 간직하고 또한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그 소년은 그래서 우리들의 로망이다. 그 낭만을 다시금 재현하고 싶어도 못하는 현대인에게 영화는 진지하게 묻고 있다. 바다를 건너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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