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로게이트 - Surrogat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거짓된 사회에서 산다는 것, 한 번도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대리하는 인형을 통해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사회가 존재한다면 우린 어떻게 생활할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해주는 영화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Surrogate], 무슨 뜻인지 몰랐다. 영화 제목을 알기 위해 사전을 찾는 수고를 할 정도로 이 영화는 나에겐 낯설게 하는 방법으로 다가왔다. 사전에 ‘대리자’라고 나왔다. 이런 선문답과도 같은 영화 제목과는 다르게 극장 안에서 펼쳐지는 서사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난 [다이 하드 시리즈]의 화려한 액션 주연배우인 ‘브루스 윌리스’를 보기 위해서 극장에 가지 않았다.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갔단 표현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영화는 시간만 때울 수준의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 속엔 거짓이 진실처럼 살고, 진실은 은폐된 공간에서 거짓된 사실을 보호해주기 위해 거짓처럼 살고 있다.
  시작부터 다큐멘터리적인 인터뷰 형식과 방송의 뉴스 형식을 빌면서 대리 로봇에 대한 미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인간의 의식을 대변하면서 인간을 대신해 타인을 상대하며, 사회생활을 대신 살아주는 기괴한 미래가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혹시 닥칠 사회 생활에서의 위기에 대처함은 물론 궁극적으로 모든 위험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는 따뜻한 인식을 갖고 만들어진 ‘Surrogate’는 분명 그 의도에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런 대리 로봇들은 다른 측면에서 부정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자신을 가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자신을 속이는 대리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진실을 보여줄 인간이 거리에서 사라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인간을 위한 도구가 인간의 솔직함을 가장하는 수단이 되고, 그를 통해 벗어난 인간들은 빛이 들어오지 않을 폐쇄된 공간으로 가두게 되는 불행한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측면은 이상하게도 타개되지 못한다. 진실을 왜곡하는 것에 익숙해진 인간들은 자신의 젊은 모습이나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을 내세우려는 욕심만을 보이게 되며, 그런 가식적인 모습을 통해 거짓된 생활을 즐기는 기이한 생활모습까지 연출한다. 그래서 사회생활의 진정한 주인들인 인간들은 거리에 나오지 않고, 예쁘고 건장하고 매력적인 가짜 인간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형국이 벌어진다. 바야흐로 가식이 주류가 되는 셈이다. 

 

  이런 사회를 만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영화 속에서 Surrogate란 대리 로봇을 만든 창조자는 도리어 이들을 파괴하려는 역설적 행동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우리들에게 보여주려는 주제의식은 바로 이 점에 있다. 거짓이어도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려는 인간의 욕심은 상대를 속이는 상황으로까지 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진실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에 따른 부작용은 그 사용자들의 내부 심리는 파괴되기에 이른다는 점이다. 어느 Surrogate를 사용하는 여자의 방 안에 가득한 수많은 약들은 그런 내부 심리의 파괴를 상징한다. 또한 서로를 알아야지만 해결될 수 있는 치유의 인간미와 인간관계가 애초부터 거세되면서 그들은 해결할 수 없는 외로움이나 소외와 같은 불치병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겠지만 겉도는 인생만을 살게 될 뿐이며, 결국 인간만이 인간의 진정한 치유약이 될 수밖에 없는 사실을 반증만 할 뿐이다.
  영화는 비극적 사랑을 담은 영화보다 더욱 슬프다. 비록 마지막 영화 부분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지만 그것이 거의 행운일 뿐이란 생각 밖엔 들지 않았다. 한 번 시작된 것의 속성은 강한 항존력을 갖기에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린 처음부터 인간관계와 인간미의 고귀한 가치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생각하고 생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며 살 것이다. 영화 [Surrogate]는 그런 강한 경고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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