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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 - 피로 쓴 조선사 500년의 재구성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평점 :
역사를 보는 시각이 객관적이어야 하는가 아님 주관적이어도 괜찮은가 하는 것은 해묵은 논쟁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주관적인 범주 안에서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사실을 선별하는데 있어 사가의 입장이 결정적인 준거가 되며, 또한 역사 기술이란 결과물을 만들어준 내면심리는 글 하나하나에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객관적인 자세를 취하려는 역사가의 입장은 존중되지만 결국 주관적인 범주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어느 정도 객관적이냐가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서 ‘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이란 책은 그런 객관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음을 시작부터 밝히고 있다.
비판이론이 등장하고 힘을 얻으면서 특정 시각을 중심으로 사회의 부당성을 밝히려는 움직임이 현재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주장은 근대화의 특징인 객관성을 부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이나 역사가 수학과 물리학의 법칙을 신봉하면서 전개됐지만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기득권과 사회적 권력자들의 의지가 투영된 면은 어쩔 수 없고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특정입장에 과감히 서야 한다는 비판이론은 현 사회의 약자들의 저항으로 보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배상열은 기본적인 대전제를 갖고 책으로 진술한다. 조선시대는 역성혁명을 통해 이루어진 부당한 국가란 전제를 갖고 시작한다. 잘못된 시작은 500년 역사 전체를 부당한 국면으로 몰아가게 된다. 아마 주관적인 판단으로 시작된 이런 시각은 비판의 여지가 없지 않다. 주관적인 시선이 객관적인 근거로 도움 받지 못할 때 주관성은 여지없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서평에서 그것을 담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평가들은 역사학자들간의 논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할 것들이다. 이 책은 그런 복잡한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단 나에겐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문제제기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주관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언제나 쟁점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작가가 문제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주제다. 조선의 모든 왕이 엉망이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기획반역은 공동체의 많은 이들의 불행을 초래했고 선조인 경우 국운까지 기우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더욱 문제는 책임져야 할 임금이 공동체를 언제든 버릴 자세가 되어 있는 경우 그를 임금으로 알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의 배신감은 물론 그 이탈과 반항은 국가의 분열과 해체를 촉진한다. 왕 자신의 권력기반을 위해 타국의 군대를 이용하려는 고종을 보면 조선에 대한 충성을 요구할 무능력한 왕을 보유한 조선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치를 읽을 수 있다. 민주주의에 의해 선발된 정치가들이 형편없는 왕보다 낫다는 것이 아니라 무능한 자들을 교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그나마 갖추었던 점에서 그 건강성이 확인된다. 작가가 조선의 시작을 근거로 조선의 모든 왕을 폄하하거나 할 수 있는 근거로 볼 수 없지만 무능하거나 치졸한 왕에 대해 그 무엇을 할 수 없단 사실은 조선은 분명 문제가 많은 체제였다. 그것은 고려나 신라와 같은 왕국에게도 해당되리라. 국가의 통합성을 헤치고 소수의 이권만을 보장하는 정치체제는 필요 없음을 이 책은 실증자료로 보여주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