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의 짜임새는 엉성해 보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점점 더 어른답게 변하는 내 입장에선 좀 유치할 수도 있고 어느 면에서 개연성이 약한 소설로도 느껴진다. ‘재미’가 설정한 세상이 좀 유치하다고 할까? 그러나 그것은 소설의 구성일 뿐 주제나 저자의 의도는 그렇게 평가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즉 읽으면서 느끼는 작가의 의도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다소 약한 개연성이나 어린이 동화 같은 짜임새와 같은 것을 추구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것보다 다른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고, 사실 그것이 저자의 본심이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딸로 구성된 어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재미’는 그들간의 관계는 물론 그들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언제나 자신들 주변의 모든 관계들에 피곤함을 느끼고 적대적인 생각조차 품게 된 이들 가족의 구성원들은 재미와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설 속의 가족엔 가족이라면 갖추어야 할 배려나 희생이란 덕목이 사라져 있다. 도리어 가족들은 이미 희생당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목표와 경쟁만이 존재했다. 거기에 상대에 대한 강요 역시 빠지지 않은 악습으로 존재했다. 내가 이만큼 당했으니 그만한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피해의식과 강박관념이 만연돼있는 가족, 바로 주인공들이 속해 있는 가족의 모습이다. 이런 각자의 피해의식은 서로간의 악영향을 끼치면서 서로간의 상처를 주기도 했고 누군가 없었으면 하는 위험한 생각까지 하게 이르렀다. 누군가 바뀌어야만 해결될 문제이지만 그들은 상대의 변화를 요구했고 희생을 더욱 강요하는 단계로까지 이어졌다. 이것이 소설의 첫무대로 형상화됐다.
  가족구성원들은 가족 울타리를 넘어서도 비슷하거나 더한 탐욕과 비극으로만 치닫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언제든지 때려 치우고 싶은 직장에 다니는 아빠, 남들과의 비교에서 열등의식만 자라나는 엄마,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수업을 잘 해도 수업을 싫어하고 학교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딸, 가족의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가족 밖의 사회 속에서 그들이 쉴 수 있는 터전이나 여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런 외적 분위기는 사실 그들만의 것은 아니다. 집이건 집밖이건 그들이 살고 활동하는 공간은 현대인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민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만 달랐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의 그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재미’는 제목 그대로 재미를 그 해결방법으로 제시한다. 재미란 말 속엔 삶의 여유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그런 여유 속에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자연스럽게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소설의 스토리는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상대의 입장에 서게 되고 또한 자연스럽게 상대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다. 엄마와 아빠의 화해는 서로간에 결여된 그것들을 직접 맛보면서 이해하게 됐고 아이의 문제 역시 엄마의 학습지 선생을 통해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됐다. 소설의 내용은 유치할 수 있지만 제시되는 의도는 결코 유치하지 않은 책이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탐욕이 상대에 대한 강요로 전이될 때 행복은 파괴된다. 반면 재미는 자신의 탐욕을 벗어난 상태에서 맛보는 여유다. 그래서 함께 즐기는 재미는 모두가 여유를 즐기게 되며 그것이 행복의 단초가 된다. 그런 여유 이전에 배려야말로 가장 큰 원천이리라. 하지만 배려와 탐욕이 서로 대조되는 어휘라는 점에서 현대인에게 배려는 어려운 말일 것이다. 특히 경제 위기로 인해 사회는 공격적인 자세를 요구하게 됐고 그래서인지 여유를 부리는 것 자체가 큰 실례가 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재미’에서 제시한 것처럼 그래도 우린 여유를 부려야 한다. 그래야만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매우 기초적이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주제를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어쩌면 힘들다는 말이 넘실거리는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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