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업의 시대 - 그들은 어떻게 독점시장을 만드는가
천준범 지음 / 페이지2(page2)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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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을 위한 변호사 일을 해서인지 아니면 관련 영역에서 오랜 동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내용은 생생했고 어떤 점에선 감동까지 했다. 다만 에세이의 이런 강점으로 편안한 감성으로 책을 마무리하기엔 내용이 너무 무거웠다. 작가가 바라보는 엄혹한 세상이 세련되면서도 우아하게 표현됐어도 결국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그냥 엄혹 그 자체이기 때문이리라. 표지 글인 ‘시장은 절대 나눠 갖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초기업의 독점적 만행을 법으로 단속하기 위해선 초기업의 만행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선 책 한권으로 담기엔 너무 적은 수의 기업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무척 알찼다. 이 책에서 나오는 기업들은 정말 사악하기 그지없다. 록펠러의 독점을 위한 횡포에서부터 미국의 이커머스를 거의 석권해가고 있는 아마존까지 저자는 착실히 핵심적인 기업들의 초기업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를 핵심적인 내용과 관련된 스토리를 충실히 서술한다. 이후 자연스럽게 마지막엔 꼭 ‘아하, 그들은 이렇게 해서 독점하면서 영원한 기업제국을 꿈꾸는구나’하도록 이해시킨다. 저자의 세련된 표현력과 구성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관련된 소송을 다루고 있다. 초기업을 상대하는 미국 법원들의 판사들의 입장에서 말이다.
  록펠러로부터 시작하는 독점 단속의 역사는 참 험난해 보이고 위태롭게 만 보였다. 사실 글 속 하나하나에 담긴 내용과 그 진심엔 염세적인 느낌이 짙게 배어 나온다. 미국에서 과연 초기업의 독점을 막았는지 그리고 한국 역시 초기업의 독점을 막을 수 있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매 장마다 나타났다. 장소와 시간이 다른 만큼 초기업의 독점에 대해선 다른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는 법원조직의 구성을 십분 감안해도 책 속에 나오는 초기업들에 대한 판결에 어떤 일관성이 있긴 한지 하는 의심까지 든다. 어차피 초기업이라 해도 같은 분야도 아니고 같은 기업이 아닌 이상 초지일관 똑같은 판결이 나올 것이란 주장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미국 법원의 일관된 초기업에 대한 법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독점을 해서 만약 가격이 저렴해진다면 과연 그걸 막는 것이 사회적 효용을 저하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기업의 독점을 막아서 여러 기업들에게 파이를 돌아가게 한다면 과연 그게 상품 가격을 내리게 하는 사회적 효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저자 역시 이런 점에서 혼란을 겪은 듯 나중엔 심지어 과연 초기업의 독점을 막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구심까지 드러낸다. 한마디로 잘 모르겠다는 것 같다.
  그나마 저자가 제시한 다양성이란 틀을 통해 초기업의 횡포를 비판하는 모양새를 띠지만 결국 그것도 불확실한 모습이다. 초기업이란 구성을 통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하면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일 수 있단 지점에서 저자의 가치관을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려 보인다. 사실 그건 이 책을 읽는 본인 역시 흔들릴 지점이다. 판매자가 많다고 해서 경제학 이론처럼 가격이 과연 싸질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판매자들도 자신들의 최소비용을 넘는 이상으로 가격을 매기고 그것을 통해 아침밥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공급되는 상품의 공급이 과연 쌀까 하는 의문이 든다. 불경기라도 억지로 현재가격을 옹호하려는 것이 기업들이든 소매업자든 마찬가지다. 이런 걸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때 기업은 파산하지, 사실 가격을 덤핑해서라도 파는 경우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기업 매각은 가격하락을 통해 반전을 이끌려 하기 보단 대충 해서 팔아서 딴 방향으로 틀려는 인간의 본심이란 생각도 든다. 이와 함께 기본적으로 독점 기업을 통한 효용이 그리 작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미시경제학에서 금지옥엽처럼 이야기한 완전시장에 대한 신화를 현대 경제학과 미국 판사들이 너무 과신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게 읽은 부분들이 몰려 있는 부분이 바로 과점에 대한 장이다. 버지니아변호사협회의 수임료 담합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에 판결과 그 이후 수임료 가격 상승을 보면서 천편일률적인 완전시장의 신화가 깨진 것 같았다. 또한 MIT를 포함한 아이비리그의 등록금 액수 담합에서 코웬 판사의 판결은 솔직히 이해 못할 것이었다.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국가가 대학을 관리하면 모를까 어차피 시장경제로 대학을 운영하는 미국에서 소위 최고의 명문대학들의 재정 문제까지 고려해 주면서 대학 자체가 갖고 있다고 하는, 매우 모호한, 사회적 가치를 근거로 결국 명문대 입장을 우선시하는 판결을 할 때, 솔직히 씁쓸했다. 미국 대학들 역시 수치로 표현된 능력 있는 학생들을 모집하려고 혈안인 현실에서 장학금은 소위 상품인데 그걸 담합한 걸 그냥 넘어간다면 시장원칙으로 운영되는 미국 대학에서 퇴출을 그냥 막아주는 셈이다. 그럼 그냥 과점을 통해 미국 대학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자는 이야기일 뿐이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주립대학도 아닌 사립대학들인데 너무 과한 편애였던 것 같다. 또한 NCAA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이색적이었다. 세계에서 학원스포츠로 수익을 내는 미국에서 정작 스포츠에서 선수로 뛰면서 열광적인 팬들의 환호를 이끌고 솔직히 대학 스포츠 수익을 챙기는 주역 중 하나라 할 대학선수들에 대해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과 관련된 소송에서 미국 법원의 판결은 솔직히 희한했다. 미국 대학들의 반독점법 위반은 맞지만 그래도 학생 선수들이 대학과 연봉협상을 해선 안 된다고 판시한 것을 보면 말이다. 역시 NCAA의 힘이 강력했기에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인지 농구의 경우 대학 입학을 한 선수들도 기껏해야 1년 정도 뛰고 프로로 가는 일이 다반사가 됐고 (one-and-done) 심지어는 대학 안 가고 호주 프로리그로 가서 1년 뛰다가 다시 미국 프로리그로 돌아오려는 선수들도 많아지고 있다. 참고로 미국은 나이 제한으로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로 못 가니 결국 이런 방향으로   스포츠가 운영되고 있다. 과연 Freshman인 대학선수들이 과연 학교에 얼마나 큰 소속감을 갖고 뛸지 의아하다. 결국 프로에 당장 갈 수 없으니 잠깐 거치는 기간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럴 거면 고교 졸업 후 ‘르브론 제임스’처럼 바로 프로로 가는 걸 허용하던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초기업의 시대’란 책에서 최종적으로 가치판단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어차피 다음 해에도 기업에 대한 판례는 나올 것이고 그것들이 쌓여 갈 것이다. 판례법 중심이 미국인 이상 통일된 인식을 갖는 획일화된 독점에 대한 가치관을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때그때마다 만들어 갈 것이며 나중에 다시 뒤집히면서 그냥 그렇게 갈 것이다. 다만 어떤 판결이든 미국의 건강성이 어느 정도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 하면 그들의 인식이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엔 미국과 유사한 사례들을 통해 한국 역시 초기업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의 현실을 걱정하는 저자의 근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걱정인 초기업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가 앞으로의 사회의 건강성을 결정할 주요 변수일 것 같아 미국의 판결은 우리들에게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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