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철학 이야기
변순용 지음 / 어문학사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건 다들 직감한다. 과거보다 더 치열해진 삶의 현장과 과거의 사랑과 꿀이 흐르던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도 사실은 이전의 농촌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으로 악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게 왜 이렇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게 되고 행복을 찾을 수 있을 수 있는지 모르는 막막함을 많이들 느끼곤 한다. 뉴스 방송에서 나오는 끔찍한 사고의 뒤에 있는 ‘조현병’이란 단어가 최근처럼 흔하게 느껴지는 것도 낯설다. 이런 와중에 ‘삶과 철학 이야기’의 ‘변순용‘은 철학이라는 치유법을 제시한다.
  아마도 지금까지 철학 하면 다들 철학의 역사를 통해 접해본 것이 가장 많을 것이다. 철학의 역사가 곧 철학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결론은 언제가 예전엔 그랬었구나 하는 뻔한 결론에 도달은 것 같다. 내가 아는 철학은 이 정도였다. 삶의 지혜라기 보단 삶을 위한 정보 정도. 그것도 시험에 안 나온다면 버려도 되는 그런 정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담고 있는 치유로서의 철학은 아니었을 것이다.
  총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시작은 우리가 다 아는 방식을 택했다. 철학의 뜻이 무엇이고 간헐적으로 드러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철학의 탄생 이유에 대한 것들을 1장에서 6장까지 담고 있다. 지금까지 제대로 배운 것 같아 보이지 않아 색다르게 다가온 ‘철학학’이라 부분을 처음 접해보면 이 책은 ‘신에게의 동화’를 위한 지혜의 추구라는 철학의 시초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철학이라면 당연히 고민해야 할 공동체 내에서의 인간이란 근본적인 철학 주제를 6장까지 뛰어난 표현력을 통해 드러낸다. 어쩌면 철학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와 긴장을 이해하길 권하고 그런 바탕 위헤 인간의 고민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그래서 4장과 5장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의 고민이 가장 응축된 부분일 것이다. 윤리를 탐구할 수밖에 없는 사회는 결국 ‘할 수 있는 것들의 영역에선 해선 안 되는 것, 해야만 하는 것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책임인 것’이란 대목은 공동체의 삶의 과정과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문구로 느껴졌다. 결국 이 규정이 곧 법일 것이고, 그래서 현대의 윤리학이 책임의 윤리학이란 단정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의 7장에서부터 마지막 16장까지는 어쩌면 철학과 윤리의 현대적이면서 구체적인 적용대상을 다룬 장들로 구성됐다. 무엇보다 현대의 수많은 문제나 고민해야 할 영영들을 다룸으로써 철학의 적용대상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철학이 현대적으로도 얼마나 가치 있는 인문학인지를 저자는 강력하게 호소하는 듯하다. 7장 먹거리의 윤리학에선 사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내용이 나와 당황스러웠다. 먹을거리를 통해 보녀 현대의 먹거리 문화와 그 속에 담긴 생태계 영향, 그리고 마지막으로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이기에 행사할 수밖에 없는 동물에 대한 폭력문제를 어떻게 인도적인 사육, 지속가능한 사육으로 완화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또한 어쩌면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는 예외를 허용하는 도덕적인 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칸트의 꽉 막힌 태도를 심층적으로 분석해서 도덕적 선악 판단을 자신의 이익에 따라 판단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분석하는 부분에선 인간의 허약한 정의체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집이란 공간의 분석을 통해 나와 타자를 구분한다는 내용을 담은 11장이나 12장 철학교육의 방법론, 그리고 미래에 언젠가는 만나게 될  AI와의 공존 문제 등은 바쁘게 생활하는 우리들에게 깨소금 같은 매력과 여유를 제공해 준다.
  그래도 현대 철학의 구체적 적용의 장으로서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으로 여기는 부분은 바로 제10장인 ‘힘의 논리와 진실의 논리’ 부분이다. 어쩌면 올바름에 대한 트라시마코스의 ‘더 강한 자 및 통치자의 편익’이라는 정의는 지금까지의 상식으론 분명히 틀려 보이지만 사실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올바름을 트라시마코스의 말처럼 이끌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양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 힘에 논리에 굴복하거나, 자신의 의익을 위해서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이를 용인하는 경우’는 어쩌면 강자의 올바름을 내면화시키면서 사회적 악에 모른 체하거나 그걸 용인하고 심지어 실행하지 않았는가 하는 자성을 하게 된다. 이런 정의롭지 못한 인식에 대한 철학의 치료는 그래서 중요해 보인다. ‘철학은 자기 파괴적 반성과 철학적 대화로 절망감에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 공감과 감동에 이르게 하는 소통 치료이기도 하다’라고 표현된 그 치유 방법이 민주주의와 연결됐고 그래서 촛불혁명과 연결되어 보인다. 이런 반성을 통해서 민주주의의 가치가 부각됐고, 다수의 약자가 강자의 교체를 선도하며, 이런 인식이 바로 촛불혁명을 이끈 힘이란 작가의 인식은 이 장을 가장 기억하게 만드는 힘인 것 같았다. 그래서 작가의 말인 ‘이들을 광장에 모이게 한 것은 바로 자기 치유의 노력이며, 이러한 치유의 노력은 결국 자기 존재에 대한 책임을 실현하다는 의미를 갖는다’라는 촛불혁명의 해석은 인상적이었다.
  철학이 학점이나 성적을 따는 경쟁의 장소가 된 어느 수업과목이 된 지금, 철학은 잠자고 있다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는다. 삶의 구체적 유인이 없는데 굳이 일상생활에서 철학에 손을 내밀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철학은 바로 우리들의 생활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천 년간 탐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존재했다. 이런 철학을 모른 채 한 것은 독자들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책무는 무엇보다 관련 종사자일 것이다. 사실 내 일도 하기 벅찬데 다른 분야로 취급되는 것까지 신경쓸 여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갑다. 최소한 지금의 우리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부분을 통해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철학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적어도 난 그랬고, 앞으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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