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깊은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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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을 ‘아이’는 보지 않고 ‘그림책’만 보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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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림책 육아에 반신반의 흔들리는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내게서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좋은 먹거리만큼이나 신경쓴 것 하나가 있습니다.
좋은 마음과 생각을 들려주기 위해 소리내어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었답니다.
지금 생각하니 나의 그림책 육아는 아이가 뱃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면서 시작되었네요.
어설픈 그림책 육아, 단지 그림책을 소리내어 들려준 것이지만 이것이 지금 내 아이에게 바른 먹거리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훨씬 더 건강한 몸과 생각을 만들 수 있는 마음의 도서관을 지을 수 있었던 작지만 탄탄한 땅을 다진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육아에 전념하면서 장난감 대신 책을 물고 빠는 아이를 보면서 책과 친해지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왔었고, 또 그런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눈을 통해,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최고의 책은 『엄마』라는 생각을 굳게 믿으면서 그림책을 읽어 주고 아이와 함께 엄마도 그림책 육아에 대한 믿음도 커져왔습니다.
하지만 요즘같은 ‘사교육 열풍’시대에 나의 교육이 과연 통할 수 있을까? 그림책 한 권 더 읽히는 것보다 학습지를 시키는 것이 낫다는 주위 엄마들의 반응은 지금까지 나의 그림책 육아에 대한 믿음을 자꾸 흔들리게 합니다. 흔들린다는 것은 아직 제가 그림책 육아에 대한 확신?! 줏대?!가 없어서 그런게지요.
그런 답답한 마음에 알게된 곳이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였습니다.
그림책 육아를 진행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고민을 듣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 공간을 이끌고 있는 많은 엄마들의 고민과 해법을 한데 모아 만들어진 『책아이』를 읽어 보면서 저자와 나의 경험이 일치하는 부분에서 ‘아! 맞아. 나도 그랬지’하면서 맞장구를 치며 동변상련을 느낄 수 있었고, 또 내가 흔들렸던 부분, 내 아이가 안따라 준다고 고민했던 부분을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해법이 얼마나 시원스러웠는지 이 책을 읽는 많은 분들이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림책 육아를 하면서 한 번씩 겪을법한 엄마의 책욕심에 대한 따금한 일침!
『그림책을 읽을 ‘아이’는 보지 않고 ‘그림책’만 보느냐』는 저자의 냉랭한 목소리는 타박이 아닌 제가 놓칠뻔한 세심한 조언이었습니다.
주객이 전도되어 아이를 위한 그림책 고민이 아닌 홍수같이 쏟아지는 그림책속에 빠져 자꾸자꾸 그림책을 사고 싶은 엄마의 책 욕심으로 변질되고 있었던 내게 따끔한 충고이자 고마움이었습니다.
그림책 육아의 중심에 아이를 밖으로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책욕심만 가득한 엄마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엄마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나와의 약속도 가슴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림책 육아를 하면서 제가 고민했던 또 한 부분은 저자가 말한 ‘앉은자리 반복기’와 ‘시간차 반복기’라는 과정이었습니다.
만약 그림책을 읽는 아이에게서 이러한 점을 미리 간파했다면 아이의 독서력의 성장을 상당부분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도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차린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심도 함께 하는 자리였습니다.
앉은 자리 반복! 둘째 아이가 지금 겪고 있는 과정입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앉은자리 반복을 즐기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재확인하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애석하게도 이런 이유를 몰랐을 때는 마치 제가 카세트 오토리버스기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책을 읽어주는 자체가 너무 곤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를 세심히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의 이유있는 앉은자리 반복기를 보면서 즐겁게 카세트 오토리버스기능을 담당 해주고 있습니다.
‘앉은자리 반복기’에 있는 내 아이가 그림책의 즐거움에 흠뻑 취해 즐기고 있습니다. ‘곤욕스럽던 일’이 ‘즐거운 일’로 바뀔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옆에 그림책 육아의 든든한 조력자를 만나서인거 같습니다.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그리고 『책아이』는 제가 만난 든든한 조력자였습니다.
“아이 키우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아이에게는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부모가 온 우주와도 같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주 속에서 산다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육아와 교육법들은 바로 아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본문 내용의 한 부분입니다. 형광펜까지 그어 놓고는 읽고, 또 읽었던 부분이지요.
저도 저자처럼 냉장고에 붙여 놓고 오고가며 읽고 있습니다.
육아를 하면서도 간과하게 되는 일, 바로 내 아이에 대한 이해를 놓치는 것이지요.
요즘 ‘엄친아’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재미 소재로 떠오르면서 개그 소재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웃집 아이와의 비교가 얼마나 많았으면 이런 신조어까지 생긴것인지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저 역시 제 이웃집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는 모습이 있었답니다.
제 이웃집 아이는 책 읽기의 성장 속도가 참 빠른 아이랍니다. 그 아이가 빠른 것이지 지금 내아이가 늦는것은 절대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꾸 이웃집 아이의 책장을 살피게 됩니다.
키 크는 성장 속도에도 차이가 있듯이 독서 단계의 차이를 인정하라는 저자의 말에 쿵!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답니다.
아이들은 제 각각 다른 성장 시계를 가진 나무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고, 겨울에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듯이 꽃을 피우라 재촉하고 애닳아 하지 않고 아이의 성장 시계를 이해하고 내 아이의 속도에 맞는 즐거운 책 읽기를 즐겨야겠습니다.
지금, 그림책 육아에 대한 흔들림은 내 아이에 대한 과도한 욕심 때문임을 반성합니다. 『책아이』는 내 아이를 위한 올바른 책 읽기가 무엇인지 그림책 육아의 초심을 다시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저자의 사고와 그림책 육아에 대한 나침반을 발견한 동질감~!
공감이란 것이 이런것이 아닐런지요.
저자의 그림책 육아법은 저에게 『공감』이었습니다.
내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에게 맞는 그림책 육아를 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어김없이 냉장고에 붙여진 메모지를 눈으로 읽으며 마음에 담아봅니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아이를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