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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진이다 - 아주 특별한 나에 대한 상상 ㅣ 마르탱 파주 컬렉션 3
마르탱 파주 지음, 강미란 옮김 / 톡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전쟁을 겪은 아이들이 모두 지진이 되는 건 아니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너는 지진이 됐어."
자신이 있는 곳 어디든 진동을 하며 지진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흔들림 같은 것이 생긴다고 느낀 소년은 세상이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했었다.
환상이라고 생각했던 이 모든 현상이 '나'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 소년은 자신이 대단히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에 괴롭다.
주변을 혼돈으로 몰고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는 '지진' 이 된 소년.
그 원인은 다름아닌 소년이 겪은 전쟁의 아픔에 있었다.
어린아이였던 '나'에게 전쟁은 '소리'였다.
침묵은 한시바삐 쫓아내고 없애 버려야 할 적이었다.
폭탄 터지는 소리, 기관총 소리, 하늘에 떠다니는 요란한 전투기 소리…….
'나'는 이런 소란 속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공부를 했다.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나'를 보호해 주었다.
사탕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 아빠의 설탕 냄새, 초콜릿 냄새, 캐러멜 냄새나는 품속은 전쟁도, 이별도, 소음도 모두 잦아들게 했다.
하지만 '나'를 보호해 주던 엄마 아빠는 사탕 공장에 폭탄이 떨어짐으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어린 '나'에게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기억, 전쟁의 기억은 세상과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끌어내는 끝없는 슬픔이었다.
새로운 부모님을 만나고 사랑을 받지만 전쟁으로 부모님과 사람의 안정감을 모두 잃은 '나'의 공포스러운 기억까지 사라지게 하지 못한다.
어쩌면 자신의 분노와 고통스러운 상처가 자신에게 그 이유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정말 위험한 아이 '지진'으로 만든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상처로 인해 지진이 된 소년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점점 세상을 파괴해 나간다.
지진과 전쟁은 놀랄 만큼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소년은 자신에게서 세상으로 관심을 옮길 때 상처(지진)를 잠재운다는 진실을 찾게 된다.
나 자신의 불행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다른 무언가에 정신을 빼앗겨야 한다. 그리고 내 영혼과 정신이 이 세상을 사로잡도록, 세상 모든 것에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숲 속에서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우리는 모두 지진이니까. <본문 p76>
전쟁과 그로 인해 부모를 잃은 소년의 고통은 지진으로 표현된 상상.
그 깊이에 놀랍다.
상처의 크기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을 극복하하고 위험한 세상을 치유하는 힘이 무엇인지 특별한 상상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