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분 만에 끝내는 주식투자 AI활용법 - 종목 발굴에서 매매까지 실전 프롬프트 레시피 252
박성재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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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AI를 써도 프롬프트가 계좌를 가른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밑줄을 긋고 싶었던 문장이다.


처음에는 계좌를 가른다는 표현이 자극적으로 들렸다. 요즘 서점 경제/경영 코너만 가도 AI를 활용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식의 책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이 책도 비슷한 종류의 투자 비법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AI가 투자의 정답을 알려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AI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이 책의 핵심은 AI가 아니라 질문이다.


평소 나도 ChatGPT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대부분 반도체 전망 알려줘, 삼성전자 지금 사도 될까?, 좋은 종목 추천해 줘 정도의 질문을 던져 왔다. 그런데 책에 실린 프롬프트들을 보니 같은 산업을 바라보더라도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다.


반도체를 분석할 때도 단순히 HBM 관련주 알려줘가 아니라 HBM3E와 HBM4의 생산 비중, 공급망 변화, 고객사 확보 현황, 수율 경쟁력, 향후 1~2년의 투자 계획까지 연결해서 묻도록 설계한다. 실제로 최근 시장에서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을 둘러싼 경쟁 구도가 뜨거운 만큼 이런 질문 방식은 상당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AI를 만능 도구로 포장하지는 않는다.


책 곳곳에서 AI의 답변을 해석하는 법, 여러 AI를 교차 검증하라, 증권사 리포트의 가면을 벗겨라 같은 내용을 강조한다. 사실 이 부분은 투자뿐 아니라 AI 활용 전반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ChatGPT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틀린 답을 자신 있게 말하는 경우가 있고, Gemini나 Claude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사용자가 검증하지 않으면 오류를 걸러낼 수 없다.


특히 증권사 리포트의 가면을 벗겨라라는 장이 인상 깊었다. 개인 투자자들은 종종 목표주가나 투자의견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과거 리포트의 예측 정확도를 살펴보고 실제 실적과 비교해 보라고 조언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이다. AI는 여기서 단순한 정보 검색 도구가 아니라 검증 도구로 활용된다.


'60분 만에 끝내는 주식투자 AI 활용법'은 최근 출간되는 AI 투자 관련 도서들 가운데 비교적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무작정 수익을 약속하거나 특정 종목을 추천하는 대신, 투자자가 스스로 정보를 찾고 검증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처음의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같은 AI를 써도 프롬프트가 계좌를 가른다.”


투자 성과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AI 자체가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는 뜻일 것이다. 같은 ChatGPT를 사용해도 누군가는 단순 뉴스 요약만 받아보고, 누군가는 산업의 변화를 읽어낸다. 그 차이는 정보량이 아니라 질문의 수준에서 나온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투자 기술은 최신 모델을 사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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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술 - 인간관계를 변화시키고 마음을 읽는 10가지 대화법
정정숙 지음 / 행복플러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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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코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 잘하는 법 계열의 책일 거라 예상했다. 상대를 설득하는 화법, 호감을 얻는 대화 스킬, 직장생활에서 유용한 처세술 같은 내용들 같은.


실제로 책의 제목도 그렇고, 표지 디자인도 그런 선입견을 강화한다. 그래서 큰 기대보다는 한두 개 건질 만한 문장이나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마음으로 시작했다.


분명 이 책은 자기계발서다.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덜 기술적이다. 오히려 인간관계가 왜 반복적으로 망가지고, 왜 사람들은 상대를 설득하려다 관계 자체를 잃어버리는가를 설명하는 심리학 입문서 같다.


가장 먼저 무너진 선입견은 이 책이 대화를 이기는 기술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제대로 된 아빠라면, 현명한 아내라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같은 표현을 경계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옳은 기준을 제시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사실상 상대에게 당신은 자격이 없다, 당신은 틀렸다는 낙인을 찍는 방식이라고 본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몇 년 전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벌어지던 정치 논쟁들이 떠올랐다. 상대를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틀린 사람으로 규정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장면들. 그런 순간 이미 대화는 끝났다고 말한다. 남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자존심 대결뿐이라는 것이다.


예상 밖이었던 또 하나의 지점은 나의 관점을 강조하는 방식이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해, 우리 가족은 전부 그렇게 느껴 같은 표현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표현을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처음에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였는데 생각해 보니 실제 갈등 상황에서 사람들은 거의 항상 자기 의견을 보편적 진실처럼 말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일반론을 동원하는 순간 개인적 갈등이 집단적 공격으로 확대된다고 설명하는 부분은 설득력이 있었다.


특히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변화를 돕는다는 개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의 버나드 거니 연구를 바탕으로 관계 향상 프로그램을 소개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상대를 교정하거나 개조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배우자든 자녀든 동료든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뀌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라는 관점이다.


솔직히 말해 이 부분은 조금 뜨끔했다. 나는 인간관계 문제를 겪을 때 저 사람만 바뀌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반대를 말한다. 내가 상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관계를 파괴하는 출발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의 기술'은 내가 예상했던 흔한 처세술 책과는 조금 달랐다. 물론 자기계발서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을 설득하는 법보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의외를 보여준다.


읽고 난 뒤에 생각보다 괜찮은데? 라 생각 하게 됐다. 물론 몇몇 주장에는 고개가 갸웃해지기도 했지만, 적어도 나의 대화 습관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은 있는 책이다. 어쩌면 좋은 대화란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를 함부로 규정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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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귀 뚫기
집영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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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학습법 책은 늘 비슷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특히 '영어 귀 뚫기' 같은 제목을 보면 더 그렇다. 공부하지 마, 듣기만 해, 귀가 뚫린다 같은 문구는 과장 광고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또 하나의 극단적인 영어 공부법 아닐까? 라는 의심이 컸다. 마치 한때 유행했던 영어 완전 정복 비법 류의 자기계발서처럼..


결론부터 말하면, 그 선입견은 절반은 맞았고 절반은 틀렸다.


이 책이 상당히 강한 신념을 가진 방법론서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저자 집영은 문법 공부와 단어 암기를 영어 습득의 중심에서 거의 밀어내다시피 하면서, 압도적인 양의 듣기 입력을 핵심 원리로 말한다. 한국어 해석을 하지 말라, 소리에 익숙해져라, 말하기는 나중에 따라온다는 메시지.


그런데 예상 밖이었던 건, 이 책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흥미와 즐거움. 사실 나는 처음에 무조건 많이 들으세요 수준의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억지 반복을 경계한다. 재미없는 콘텐츠를 의무감으로 듣는 것은 뇌에 스트레스를 주고 학습 효율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넷플릭스 시리즈든, 유튜브 영상이든, 팟캐스트든 본인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선택하라고 권한다.


실제로 언어학자이자 교육학자인 Stephen Krashen이 말한 이해 가능한 입력 이론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저자가 크라셴을 직접 언급하거나 학술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언어 습득을 즐거운 노출의 축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의외로 현대 언어교육학과 접점이 있다.


또 하나 영어를 규칙이 아니라 소리의 패턴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책에는 원어민이 실제로 사용하는 빠른 발화, 뭉개지는 발음, 자연스러운 억양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단순히 This is rainy season 같은 교과서 문장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영어권 화자들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말하는지를 계속 듣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사실 이 부분은 한국 영어교육이 오랫동안 문법 분석과 독해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 있는 문제제기다. 토익 900점을 넘겨도 해외에 나가면 말이 잘 안 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책의 장점은 분명하다. 특히 영어 공부에 지쳐버린 사람들에게는 해방감을 준다. 단어장을 붙들고 씨름하거나 문법 문제집을 반복해서 푸는 것만이 영어 학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에.


일부 주장은 여전히 과감하고 검증이 부족하지만, 영어를 공부가 아닌 노출과 습관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은 분명 있었다. 특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Don't F**k With Cats)'나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같은 콘텐츠를 영어 입력 자료로 추천하는 부분에선, 저자가 실제로 콘텐츠 소비 환경 속에서 언어 습득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도 엿보였다.


한줄 평


반신반의하며 펼쳤는데, 영어를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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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읽기 시작했다
이태용 지음 / 틈새의시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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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불편했던 대목은 조현병을 겪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여러 예술가와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해석의 재료로 끌어오는 부분이었다. 특히 고흐를 언급하는 장면에서는 몇 번이고 책장을 다시 넘겨보게 됐다.


불편함의 이유는 단순히 동의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오래전부터 고흐나 프란츠 카프카 같은 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신화화되는지 관심 있게 봐왔고, 미술사나 문화사를 다룬 책들도 적잖이 읽어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생각이 하나 있다. 개인의 고통은 해석될 수는 있어도, 다른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상징으로 너무 쉽게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환각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고흐의 삶과 작품을 언급한다. 물론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된다. 낯설고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을 이미 알려진 사례를 통해 이해해보려는 시도니까. 그런데 나는 그 부분이 조금 걸렸다. 고흐의 삶은 조현병이라는 진단 하나로 정리될 수 없는 복잡한 역사이고, 반대로 저자의 경험도 고흐라는 이름으로 설명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건 내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의 상처를 볼 때 왜 그렇게 되었는가보다 어떻게 버텼는가에 더 관심이 가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개인의 체험을 예술사나 사회적 사건과 연결해 의미를 확장하려 할 때, 가끔은 고통 자체보다 해석이 앞서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불편함이 책의 단점으로만 남지는 않았다.


오히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저자에게는 그런 연결짓기 자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독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는 대목이나, 병을 겪는 과정에서도 책을 통해 자신을 붙잡으려 했던 이야기들은 인상적이었다.


이 책이 회복을 성공담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요즘은 정신질환 관련 에세이도 종종 자기계발서처럼 읽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완전히 극복했다거나, 의지만 있으면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무너진 삶을 조금씩 다시 조립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었다.


또 하나 회복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 친구, 책, 예술, 그리고 사회적 관계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혼자만의 의지로 버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부분은 좋았다.


결국 내가 불편하게 느낀 지점은 저자의 한계라기보다,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고통의 의미화보다 고통의 개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더 넓은 역사와 예술의 맥락 안에서 이해하려 했다. 그 간극이 끝까지 좁혀지지는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이 책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나를 읽기 시작했다'는 정신질환을 소재로 한 감동 실화가 아니다. 한 사람이 무너진 뒤 다시 자기 자신을 읽어가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자신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언어로 정리해 타인에게 건네려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한다고 믿는 순간 오히려 놓치는 것이 생기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참 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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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 ㅣ 세계문화전집 2
프란츠 카프카.에곤 실레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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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와 에곤 실레를 함께 다룬 '만나지 않은 쌍둥이'

머릿속에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건 특정한 장면보다도 계절의 공기다. 해가 일찍 저무는 늦가을 저녁, 축축한 돌바닥 냄새가 배어 있는 프라하의 골목, 그리고 증기기관차가 지나간 뒤 남는 차가운 쇠 냄새 같은 것들. 카프카의 문장과 실레의 드로잉을 따라가며 20세기 초 빈과 프라하를 감싸고 있던 불안과 긴장, 욕망과 고독의 분위기를 되살려낸다. 한 시대의 정서와 감각을 복원하는 기록같다.


특히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와 '변신', 그리고 실레의 뒤틀린 자화상과 인물화가 나란히 놓이는 순간들은 흡인력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이 실제로는 만나지 않았음에도 같은 시대를 통과하며 비슷한 상처와 감수성을 공유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설득된다. 두 사람의 삶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카프카를 좋아해서 집어든 책이었는데, 덕분에 실레를 다시 보게 됐다.


무엇보다 작품 해설에만 머무르지 않고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개인사를 함께 엮어낸 것이 좋았다. 낮에는 보험국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던 카프카의 삶, 육체의 불안과 욕망을 집요하게 그려냈던 실레, 둘은 한 시대의 초상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실험실처럼 사용했던 예술가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카프카는 언어를 통해 자기 내부를 해부했고, 실레는 선과 색채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한 본질을 드러냈다.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었다.


또 책 곳곳에 수록된 카프카의 드로잉과 필사 원고, 그리고 실레의 작품들이 단순한 삽화 이상의 역할을 한다. 텍스트를 읽다가 이미지로 시선이 옮겨갈 때마다 두 사람의 세계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급하게 넘기기보다 한 장면씩 곱씹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겨울 유럽 여행 때 들렀던 작은 기차역이 떠올랐다. 이미 어두워졌고 플랫폼에는 몇 사람만 서 있었는데, 그때 느꼈던 설명하기 어려운 고독감이 카프카의 문장과 겹쳐졌다. 전혀 다른 시간의 경험인데도 묘하게 연결되는 순간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나의 기억을 건드리다니..


카프카와 실레를 따로 이해하는 것보다 함께 바라보는 편이 두 사람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프카의 문장 속 인물들은 실레의 그림에서 걸어나온 것처럼 보이고, 실레의 인물들은 카프카 소설의 한 장면 속에서 방황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바로 그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거움으로 만든다.


'만나지 않은 쌍둥이'는 카프카와 실레를 단순 비교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장르를 통해 같은 시대의 불안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에세이에 가깝다. 작품보다도 그 시대의 공기와 그림자가 더 오래 남는다. 늦가을이나 초겨울, 따뜻한 조명 아래서 천천히 읽기에 딱인 책. 갠적으로는 최근 읽은 예술 교양서 중 인상적인 책 중 하나다. 오랫만에 밑줄을 여러 군데 긋게 만든 책이기도 하고, 책장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카프카와 실레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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