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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읽기 시작했다
이태용 지음 / 틈새의시간 / 2026년 5월
평점 :
가장 불편했던 대목은 조현병을 겪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여러 예술가와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해석의 재료로 끌어오는 부분이었다. 특히 고흐를 언급하는 장면에서는 몇 번이고 책장을 다시 넘겨보게 됐다.
불편함의 이유는 단순히 동의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오래전부터 고흐나 프란츠 카프카 같은 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신화화되는지 관심 있게 봐왔고, 미술사나 문화사를 다룬 책들도 적잖이 읽어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생각이 하나 있다. 개인의 고통은 해석될 수는 있어도, 다른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상징으로 너무 쉽게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환각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고흐의 삶과 작품을 언급한다. 물론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된다. 낯설고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을 이미 알려진 사례를 통해 이해해보려는 시도니까. 그런데 나는 그 부분이 조금 걸렸다. 고흐의 삶은 조현병이라는 진단 하나로 정리될 수 없는 복잡한 역사이고, 반대로 저자의 경험도 고흐라는 이름으로 설명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건 내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의 상처를 볼 때 왜 그렇게 되었는가보다 어떻게 버텼는가에 더 관심이 가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개인의 체험을 예술사나 사회적 사건과 연결해 의미를 확장하려 할 때, 가끔은 고통 자체보다 해석이 앞서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불편함이 책의 단점으로만 남지는 않았다.
오히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저자에게는 그런 연결짓기 자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독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는 대목이나, 병을 겪는 과정에서도 책을 통해 자신을 붙잡으려 했던 이야기들은 인상적이었다.
이 책이 회복을 성공담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요즘은 정신질환 관련 에세이도 종종 자기계발서처럼 읽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완전히 극복했다거나, 의지만 있으면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무너진 삶을 조금씩 다시 조립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었다.
또 하나 회복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 친구, 책, 예술, 그리고 사회적 관계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혼자만의 의지로 버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부분은 좋았다.
결국 내가 불편하게 느낀 지점은 저자의 한계라기보다,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고통의 의미화보다 고통의 개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더 넓은 역사와 예술의 맥락 안에서 이해하려 했다. 그 간극이 끝까지 좁혀지지는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이 책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나를 읽기 시작했다'는 정신질환을 소재로 한 감동 실화가 아니다. 한 사람이 무너진 뒤 다시 자기 자신을 읽어가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자신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언어로 정리해 타인에게 건네려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한다고 믿는 순간 오히려 놓치는 것이 생기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참 하게 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