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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 ㅣ 세계문화전집 2
프란츠 카프카.에곤 실레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6월
평점 :
프란츠 카프카와 에곤 실레를 함께 다룬 '만나지 않은 쌍둥이'
머릿속에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건 특정한 장면보다도 계절의 공기다. 해가 일찍 저무는 늦가을 저녁, 축축한 돌바닥 냄새가 배어 있는 프라하의 골목, 그리고 증기기관차가 지나간 뒤 남는 차가운 쇠 냄새 같은 것들. 카프카의 문장과 실레의 드로잉을 따라가며 20세기 초 빈과 프라하를 감싸고 있던 불안과 긴장, 욕망과 고독의 분위기를 되살려낸다. 한 시대의 정서와 감각을 복원하는 기록같다.
특히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와 '변신', 그리고 실레의 뒤틀린 자화상과 인물화가 나란히 놓이는 순간들은 흡인력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이 실제로는 만나지 않았음에도 같은 시대를 통과하며 비슷한 상처와 감수성을 공유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설득된다. 두 사람의 삶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카프카를 좋아해서 집어든 책이었는데, 덕분에 실레를 다시 보게 됐다.
무엇보다 작품 해설에만 머무르지 않고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개인사를 함께 엮어낸 것이 좋았다. 낮에는 보험국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던 카프카의 삶, 육체의 불안과 욕망을 집요하게 그려냈던 실레, 둘은 한 시대의 초상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실험실처럼 사용했던 예술가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카프카는 언어를 통해 자기 내부를 해부했고, 실레는 선과 색채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한 본질을 드러냈다.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었다.
또 책 곳곳에 수록된 카프카의 드로잉과 필사 원고, 그리고 실레의 작품들이 단순한 삽화 이상의 역할을 한다. 텍스트를 읽다가 이미지로 시선이 옮겨갈 때마다 두 사람의 세계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급하게 넘기기보다 한 장면씩 곱씹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겨울 유럽 여행 때 들렀던 작은 기차역이 떠올랐다. 이미 어두워졌고 플랫폼에는 몇 사람만 서 있었는데, 그때 느꼈던 설명하기 어려운 고독감이 카프카의 문장과 겹쳐졌다. 전혀 다른 시간의 경험인데도 묘하게 연결되는 순간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나의 기억을 건드리다니..
카프카와 실레를 따로 이해하는 것보다 함께 바라보는 편이 두 사람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프카의 문장 속 인물들은 실레의 그림에서 걸어나온 것처럼 보이고, 실레의 인물들은 카프카 소설의 한 장면 속에서 방황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바로 그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거움으로 만든다.
'만나지 않은 쌍둥이'는 카프카와 실레를 단순 비교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장르를 통해 같은 시대의 불안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에세이에 가깝다. 작품보다도 그 시대의 공기와 그림자가 더 오래 남는다. 늦가을이나 초겨울, 따뜻한 조명 아래서 천천히 읽기에 딱인 책. 갠적으로는 최근 읽은 예술 교양서 중 인상적인 책 중 하나다. 오랫만에 밑줄을 여러 군데 긋게 만든 책이기도 하고, 책장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카프카와 실레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