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의미
자끄 엘룰 지음, 최홍숙 옮김 / 한국로고스연구원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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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엘룰이 구약과 신약을 참고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도시의 의미를 정리한 책이다. 엘룰이 해석하기에 가인으로부터 시작된 도시의 건설의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위한 것이었다. 엘룰은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저자들이 끊임없이 도시에 대해 저주를 선포하는 것에 주목한다. 엘룰은 이 책을 통해 도시가 사람에 의해 건설되었지만 결국은 그 자체가 영적인 존재, 자율적인 존재로서 하나님에 대항하며 저주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선포한다.

이 책은 엘룰의 하나님의 정치, 사람의 정치와 비슷한 형식의 책이다. 그러나 그 책보다는 실망스러운 책이다. 첫째로는 도시의 의미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 분명하지 않으며, 책의 내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이 늘려놓은 느낌을 버리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의 주장에 공감은 가지만 너무 확대시키는 느낌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유감스러운 것은 그의 글이 영어와 한국어로 두번에 거쳐 번역되어서 인지 번역글이 매우 산만하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엘룰의 원문도 그리 깔끔할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국내에 번역된 이 책은 번역이 매우 좋지 않아서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한 중간 중간 발견되는 오타는 이 책이 잘 감수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메세지는 다른 엘룰의 책에 비해 형편없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책의 표지에는 엘룰의 대표적인 책으로 소개되어 있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두란노에서 나온 하나님의 정치, 사람의 정치에서 느껴지는 엘룰의 통찰력이 이 책에서는 얻을 수가 없다. 본인이 엘룰의 책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고, 그 내용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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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이 1
토리 헤이든 지음 / 아름드리미디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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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아동교육 심리학에서 또는 아동 심리 치료분야에서 딥스와 함께 가장 유명한 책일 것이다.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또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판단하는 것은 현재의 상대의 모습에 대한 빠른 판단과 평가다. 그러나 상대의 지난 과거 속에서 그에게 영향을 준 환경들을 알지 못한체 상대방을 평가하고 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스러우면서도 상처를 주는 일인지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한아이1 은 6살짜리 정신 장애를 가진 쉴라라는 여자 아이를 토리 헤이든이라는 한 특수반을 이끄는 여교사가 맡아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쓴 글이다. 쉴라는 어머니가 남동생을 데리고 떠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아이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이었고 마약도 하고 있었으며 빈민촌 같은 곳에서 산다. 여러가지 성적인 학대와 부모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는 이 아이를 폭력적이면서 말을 하지 않는 다루기 어려운 아이로 변화시킨다. 토리가 처음 쉴라를 맡기전 그녀는 신문에 나온 6살 짜리 여자 아이가 자기 보다 어린 남자 아이를 나무에 묶고 불을 붙여 죽일뻔했던 기사를 보고서 쉴라를 처음 알게 된다.

책이 전체 내용은 토리가 쉴라와 관계를 형성하는 부분 그리고 그 가운데 이 어린 여자 아이가 상처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알게된다. 또한 쉴라를 비롯한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을 통해 장애인 그리고 어린 아이의 심리치료와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켜준다. 쉴라의 변화되는 모습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아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관점을 전해줄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한 아이 39페이지]
'그리고 두 종의 소견서 밑에는 당국의 위촉을 받은 정신과 의사가 적은 '아동기의 만성 부적응증' 이라는 단 한 줄의 문장이 붙어 있었다. 귀신같은 그 남자의 결론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쓸모있는 표현인가. 쉴라 같은 어린 시기를 보내야 했다면 만성 부적응이야말로 가장 정상적인 반응이 아닐까. 그런 쓰레기 같은 삶에 적응했다면, 오히려 그게 정신병자임을 입증하는 셈이리라.'

쉴라가 정신 장애를 가진 것은 그 아이의 환경으로 볼 때 가장 당연한 모습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어린 아이들을 그리고 성인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준 영향처럼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이 책은 심리 치료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만이 볼 책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사람을 상대할 모든 이들이 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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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입문
다니엘 L.미글리오리 / 나단출판사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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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Faith Seeking Understanding 이라는 Daniel L. Migliore 의 책을 번역해 놓은 것이다. 이 책을 산 것은 아마 2000년 쯤에 자연신학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샀던 것 같다. 서울신대에서 교재로 사용하기도 하고 부록으로 나와있는 내용들이 조금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다. 번역본은 이정배 교수의 번역으로 나단에서 나온 것이 있는데 장경철 교수의 번역본이 더 좋은 것 같다. 나단의 책은 읽기가 난해하고 편집상태가 별로다.

저자는 앞부분에 바르트와 칼빈과 틸리히의 문헌을 자주 인용할 것이라는 표시를 해 두었다. 혹시 틸리히나 바르트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할지라도 이 책의 내용이 그렇게 신학적으로 문제가 될 내용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개방적인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주제는 중요한 단어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의 강조, 이를 바탕으로 한 관계의 중요성의 강조, 관계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 중요성 강조 그리고 남성 위주의 신학에서 벗어난 성 차별적이지 않은 신학, 가난한 자와 약한 자들을 위하는 신학, 권위주의를 버리고 연대할 수 있도록 하는 신학을 언급한다. 저자는 계속해서 관계와 공동체 그리고 삼위일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개론서적인 책이라서 책의 내용이 깊이있게 전개되지는 않았다. 신학의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급되면 인물들의 성향과 그들의 신학사조를 이해하고 있을테고 그럴 경우 저자의 지나가는 몇가지 말들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저자의 견해에 동감을 하면서 읽었다. 그의 입장이 너무 공동체쪽으로 강하게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현 시대적 상황하에서는 그의 평가가 좀더 합당해 보이는 것이 공감의 주된 이유였을 것이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다소 지루하다는 점이다. 지루하다 함은 강렬한 용어 대신 비슷한 말을 계속 반복적으로 하면서 훝기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쩌면 하나 하나 분석적으로 표현한 것을 좋아하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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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담
밥 버그 외 지음, 김재홍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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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두 명의 저자는 책의 내용과 서문을 참고해 볼 때 유태인들이며 이 책의 전체적인 인용 및 책 전반에 흐르는 사상적 근거는 유대교의 경전과 성경의 구약부분이다. 저자들은 그와 같은 사상적 기반과 관점 속에서 험담의 위험성을 설득력있게 설명하고자 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10가지 조언을 제안하고 있고, 주변의 일상적인 실제 예를 통해 험담의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책 초반부에서 저자들은 험담의 위험성과 우리의 선택의 중요성(험담을 하느냐 안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대해서 다룬다. 중반부는 험담을 벗어나기 위한 10가지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그리고 후반부에는 다시 험담을 뛰어넘어 남들에게 실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간단하게 다룬다. 그 방법은 목차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저자들은 계속해서 세 부류의 서로 다른 사람들을 고려한다. 첫번째는 험담을 말하기 시작하는 사람이며 두번째는 그 험담의 소재꺼리가 되어버린 어떤 사람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험담을 듣고 있는 사람이다. 그 중에서 저자들의 관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은 험담의 소재가 되어 자신의 명예가 바닦으로 추락하는 험담의 주인공이다. 왜냐하면 이 주인공은 실제 험담을 막을 수도 없는 아무 것도 모르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들은 가장 중요한 두 부류의 사람들을 고려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험담을 하는 사람을 고려하여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오히려 험담을 듣는 사람의 중요성을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물론 험담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통해 험담을 듣지 않고자 하는 자가 또한 험담을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저자가 험담을 듣는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부류의 능동성에 기인한다. 험담의 소재가 되어버린 당사자는 험담을 막을 능력이 없고 험담을 하기로 작정해서 하기 시작한 사람은 이미 선택을 해 버린 사람이다. 그러나 험담을 듣기 시작하는 사람은 이 험담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하게 능동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가장 중요하며 가장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것은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입장이지만 매우 설득력 있는 입장이다. 모든 험담이 험담과 관련된 사람을 망치는 것이라면 이 험담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듣는 사람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계속해서 험담을 하거나 하지 않고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이 입을 통한 위험한 공격은 입에서 그 말이 떠나는 순간 주워 담을 수 없는 매우 위험한 행위임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험담은 모든 사람 곧 험담을 하는 사람과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 그리고 험담을 듣고 있는 사람 모두를 망하게 하는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험담을 하기 시작하는가? 저자는 그것을 자신의 합리화 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부분적으로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부분적으로는 즐기기 위해서 라는 말이다. 저자들이 매우 쉽게 다가가고 있기에 험담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이에 대한 이해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험담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자주 하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며, 그 위험성을 너무 과소 평가하고 있고 조금씩 노력하면 우리의 대인 관계가 매우 건전하게 변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짧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함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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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크 엘룰 사상입문 - 인터뷰에 의한
쟈크 엘룰 / 솔로몬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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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번역된 이 책의 제목은 '인터뷰에 의한 쟈크엘룰 사상입문' 이다. 영문 제목은 IN Season out of Season 이다. 무심코 책상에서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엘룰의 인터뷰를 정리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엘룰의 삶과 그의 생각들에 대한 조금의 이해라도 얻기를 소망했다. 결론적으로 그와 같은 이해는 당연히 생겼다. 거기에는 좀더 엘룰에 대해서 알고 싶은 욕구와 함께 그의 뜻대로 (정말 그가 원했던 대로) 그의 사상을 그대로 따라서는 안된다는 경계 의식이 섞여 있다. 한줄 한줄 형광펜으로 오가는 길가에서 줄을 치면서 집중했던 내용 하나하나를 분석할 여력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단순하게 몇가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엘룰의 친구 사르보노와 쟝 보스크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충격을 받았다. 엘룰에게 영향을 미친 두 명의 친구는 매우 상반되면서 매우 다른 영역에서 매우 막대한 영향을 엘룰에게 준다. 엘룰의 정치활동과 복음의 혁명적인 특성에 대한 이해와 활동을 나를 매우 흥분시킨다. 엘룰에게 있어서 복음은 질서를 흔드는 것이며 그의 모든 관심사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와 앞으로 일어날 상황과 오늘 우리에게 닥쳐오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가 인것 같다. 엘룰은 환경문제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했으며, 정치 문제에 그렇게 다가갔으며, 사회에 부적응하는 부랑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갔다. 그는 대학을 변화시키기를 원했고 그리고 그렇게 움직였다.

안타깝게 나의 지식의 한계는 내가 그의 나라 프랑스와 유럽의 당시 상황을 추측할 뿐 정확하게 이해할 능력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다소 이해하지 못할 상황과 사건들을 추측하면서 받아들일 뿐이다. 이 다소 복잡하면서 정돈되지 않은 사상가의 말은 그러나 전혀 방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구원론에 대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확신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확신은 나의 마음을 흔든다. 지금까지 고작 그의 책을 4권정도 읽은 나로서는 아직 엘룰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최근에 다산글방에서 나온 자끄엘륄의 사상입문이라는 책을 보면 조금 더 그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 책은 타인의 평가일 뿐 모든 판단은 엘룰의 책을 직접 읽고 그 문헌을 통해 그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앞에서 말했듯이 내가 그를 실천하는 사상가로서 여전히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가 자신의 사상대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나에게 기쁘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엘룰은 내가 매우 조심스럽게 바라봐야할 기독 지성인이라는 점을 알려줬다는 점이다. 그리고 난 그것이 엘룰이 원했던 바임을 조금은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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