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의 지리 이야기 - 20가지 문학작품으로 지리 읽기
조지욱 지음 / 사계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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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는 쉬 다가갈 수 있는 만만한 과목이 아니다. 진입장벽이 녹록하지 않다. 교과 분류 상 사회탐구영역에 해당하는 과목인데도 오히려 자연과학적 소양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지형과 기압 등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추지 않고는 내용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 그래서 학생들의 관심권에서 좀 벗어나 있다 할까?

 

그래서 필자는 이런 시도를 한 것 같다. 우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시선을 확 끌어당긴 다음 지리의 세계를 슬며시 꺼내 보이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퓨전 방식 혹은 몇 년 전 출간 붐을 일으켰던 소프트류 저작물에 해당한다 하겠다. 그런데 이런 유의 책은 대개 두 분야를 연결하는 선이 너무 가느다랗게 이어져 물리적 결합에 그치기 일쑤다. 그러니 아이들은 이마저도 외면하고 만다.

 

하지만 이 책은 예외라 하겠다. 달라도 많이 달랐다. 저자는 문학과 지리를 가르는 경계선 윤곽을 완벽하게 지우고 있다. 문학 작품에 지리 개념이 자연스레 스며들어있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회 진보에 대한 열망도 어색하지 않게 잘 버무려져 있다. 완벽한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먼저 텍스트로 문학 작품을 소개한 다음 작품 속 배경이 되는 지리 개념을 정리하고, 이와 관련된 주변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는데 하나 같이 인간적 감성이 듬뿍 배어 있고 사회구조적 모순도 드러내고 있어 감정이입을 유발한다. 흐름이 정연한 논리 수순을 밟고 있으면서도 문학적이고 사회과학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과 늑대] 얘기를 들려주고 동화에 등장하는 목축지를 옮겨 양을 치는 이목 행위와 그 배경이 되는 알프스 히말라야 조산대 산자락의 지형을 설명한다. 여기에 에티오피아 목동들이 커피를 먹고 정신 번쩍 차렸다는 얘기 끝에 그들이 왜 나른하고 졸리고 외로웠는지를 떠올리며 늑대보다 더 무서운 게 외로움이라고 환기한다.

 

처음엔 단순한 동화에 어떻게 지리가 숨어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의문은 자연스레 풀렸다. 이야기 맥락 속에 깃들어있는 지리 개념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왜 하필 그때 소나기가 내려 소녀의 죽음을 앞당겼는지, 아기돼지 삼형제가 지은 집은 어떤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한 가옥인지 저절로 이해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놀란 게 저자의 남다른 문학적 감수성이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바닷가의 어부들은 파도가 일 때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가리켜 메밀꽃이 폈다고 한다. 가을 봉평은 고원에 파도가 이는 곳이다.’ (26쪽)라고 하거나 [소나기]에서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던 양수리(두물머리)를 첫사랑의 랜드마크라고 명명한 대목에선 무릎을 치고 말았다. 예민하고 정교한 감성의 촉수가 느껴졌던 것이다.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도 읽혀진다. 그는 양치기소년을 탓하지 않았다. 그가 장난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파고들며 그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양치기 소년을 이제 거짓말쟁이로 기억하지 말고 외로운 소년으로 바꿔 생각하자고 제안하고 있으니.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한 안목도 예사롭지 않다. [시골쥐와 서울쥐]에서 이촌향도와 농업시장 개방에 따른 농촌의 변화 등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메밀 꽃 필 무렵]에서는 봉평장이 몰락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에 대해 생각한다. 비분강개에만 그치지 않고 일본 이시카와현 오미초 시장의 거듭나는 모습을 통해 희망의 실마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허생전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제안하고 있다. 하나 같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슈들이다.

 

압권은 마지막에 든 난쏘공. 분위기 싸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처참한 실상을 드러내고 있다. 고급 아파트를 배경으로 남루하게 펼쳐진 판자촌 사진의 리얼한 앵글은 더 많은 전태일, 더 많은 용산 참사를 예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문학 속의 지리 이야기]는 아이들을 지리의 세계로 바짝 끌어당기는 요소를 두루 지니고 있다. 익숙한 문학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지리 개념은 낯설지 않게 다가오고, 문학적 감성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 듬뿍 밴 문장은 몰입도를 높인다. 사회문제를 톺아보는 따뜻하면서도 축축한 시선은 자연스레 집중하게 만든다. 이런 미덕으로 빼곡한 책이니 아이들을 지리의 세계로 이어주는 징검다리로 손색이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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