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 삶.사람.사물을 대하는 김정희의 지혜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소설이다. 인문교양을 담고 있지만 형식은 픽션이기에 말이다. 그리고 서간문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조근조근, 때로는 추상 같이 들려주는 삶의 자세에 대한 지침서이다.

 

글씨체뿐 아니라 조선 후기 한국사상사 차원에서도 우뚝한 일가를 이룬, 추사 김정희.

그의 문명은 멀리 중국 연경에까지 닿아 국경을 넘은 대학자들의 교유가 이루어지곤 했다.

그런 추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닮으려는 아들에게 스스로의 일가를 이루라고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닮고 싶다던 네 문장이 떠오른다. 나를 닮지 말라던 내 문장이 떠오른다. 나를 닮고 싶다는 너의 요청에 끝내 나를 닮지 말라고 쓴 내 심정을 너는 족히 이해할 것이다. 나는 네가 닮아야 하되, 닮지 말아야 할 사람이다. 내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부끄러운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유는 명확하다. 내 늙은 고양이는 너에게서는 젊은 고양이로 바뀌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의 벗 권돈인은 언젠가 내게 보내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봄은 무르익어 이슬이 무겁다. 땅이 따뜻해서 풀이 돋아난다. 산은 깊고 해는 길다. 인적은 없는데 향기는 사무친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204-205쪽)

 

보통 아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도 따르고 싶은 마음을 더불어 지니고 있다. 경외심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더 크게 뻗어나가기를 바라는 아버지라면 아들이 자신의 틀에 얽매어 있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알을 깨고 나아가기를 자극하고 고무할 것이다. 추사의 편지엔 온통 그런 아비의 심경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아들을 아끼기에 때론 냉정하게, 어쩜 가혹하게 훈계의 질책을 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대목에 가서 드디어 벼르고 별렀던 말을 내뱉는다.

 

너의 세한도를 남겨라(199쪽)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하겠다. 천하의 세한도를 능가하려면 자신의 세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인 것이다. 그렇기에 추사의 마지막 편지는 일견 냉혹하게 여겨지지만 실은 따뜻한 부성을 듬뿍 담고 있다. 아비의 모방에 급급하지 말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스스로 일가를 이루라는 살가운 조언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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