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먹는 것도 실은 마음에 관련된 일이다. 어린 시절의 작가처럼 아무리 달래도 육식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는다든지, 맛집으로 소문난 곳을 찾았더니만 주인장이나 인테리어가 맘에 들지 않아 음식이 전혀 당기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성석제는 [칼과 황홀]에서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마음의 식도락 기행이라 하겠다. 행복한 기억으로 먹었던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어쩌면 행복을 찾는 구도행의 한 소도구로 먹는 일이 등장한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선 그의 행복론부터 들어보자.

 

소와 명이가 처음 내 입안에서 만났다. 짭짜름하고 향긋한 명이 장아찌가 단백질과 지방이 고루 섞인 일등급 한우 등심을 싸고 들어왔다. 평소보다 오래 씹었다. 다른 건, 이를테면 술도 말도 필요 없었다. 그 둘만으로도 행복해지기에 충분했다.(15쪽)

 

군데군데 그는 먹으면서 행복해했던, 행복하게 먹었던 얘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 간간이 위트도 곁들이고 있다. 야키우동을 맛보러 갔던 경북 봉화에서의 중국집 경쟁 스토리는 배꼽을 잡게 한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용궁반점과의 경쟁에서 완전 밀린 인근 중국집이 안간힘을 다해 맞대응한다는 게 상호를 펭귄반점으로 바꾼 것이라는 대목은 정말 웃기는 짬뽕이었다. 동원예비군 소집 시간이 임박한 가운데 어머니와 먹는 일을 두고 벌인 일합도 압권이었다. 기어이 아들에게 라면이라도 먹여 보내겠다고 설득하는 어머니의 질펀한 논리에 아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아들과 한참 공방전을 벌이던 어머니는 네가 떠드는 사이에 물이 다 끓어버렸다며 떡하니 한 그릇 차려내신다. 어머니와의 대결에서 완패당하고 라면 한 그릇을 비우며 그는 흐뭇해한다. 어머니의 논리는 애써 차려낸 것은 먹어줘야 인간이고, 먼저 인간이 되어야 훈련도 의미 있을 테고 그래야 국토방위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들을 먹여 보내지 못했을 때 자신이 느낄 허탈함과 약간의 죄의식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음식에 대한 소신 한번 대단하게 보였다. 그때 이를 외면했다면 작가는 인간도 아닌 놈이 될 뻔했을 것이다. 거의 코믹 드라마 한 장면 같았다.

 

아릿하면서도 훈훈한 에피소드도 종종 섞여 있어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중국 강서성 여산에 있는 오로봉 등정 시 산 중턱에서 만난 아리따운 처녀를 보고 “여우다.”라고 외친 작가. 그 여우가 이끄는 데로 따라 갔다가 덕분에 괜찮은 국수도 맛보고 모노레일도 반값에 탈 수 있었으니.

 

하여 성석제의 [칼과 황홀]은 음식에 대한 미식가의 단순한 품평이 아니라 하겠다. 먹는 게 다가 아닌 것을,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인간 세상은 모두 먹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먹는 것은 마음의 일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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