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2월 6일은 프랑스 민주주의에서 대단히 중요한 날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날을 중요하게 만든 것은 폭도들이 거리에서 보인 행동이 아니라 주류 보수주의 정치인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반응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과정에서 묘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P62
민주주의에 헌신적인 정치인들, 혹은 정치학자 후안 린츠가 충직한 민주주의자라고 부른 사람들은 언제나 세가지 기본적인 행동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첫째, 승패를 떠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이 말은 패배를 일관적이고 명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민주주의자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혹은 폭력을 쓰겠다는 위협)을 사용하는 전략을 분명히 거부해야 한다. - P63
충직한 민주주의자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미묘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반민주주의 세력과 확실하게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 P63
민주주의 암살자에게는 언제나 공범이 있다. 그 공범은 민주주의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그 규칙을 공격하는 정치 내부자들이다. 린츠는 이들을 가리켜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라고 불렀다. - P63
표면적으로 충직한 정치인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지만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 P64
그렇다면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는 정치인들이 ‘자신과 관련된 세력‘이 폭력적이거나 반민주적인 행동을 했을 때 보이는 반응이다. - P65
역사는 우리에게 주류 정치인들이 전략적으로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를 용인할 때, 극단주의 세력은 더욱 강화되고, 단단해 보이던 민주주의가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P72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반민주적 극단주의자를 보호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이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 P74
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정치인들이 폭력적이거나 반민주적인 행동을 거부할 때, 극단주의자들은 고립되고, 힘을 잃고, 포기한다. - P75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반민주 세력을 정당화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그들을 격려하고 심지어 더 급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독재의 평범성banality of authoritarianism이 의미하는 바다. - P76
민주주의 붕괴를 주도하는 많은 정치인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서려는 야심 찬 경력지상주의자다. 그들은 심오한 원칙을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단지 민주주의에 무관심할 뿐이다. 그들이 반민주적 극단주의를 묵인하는 이유는 그게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들 정치인은 단지 앞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할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붕괴에 반드시 필요한 조력자 역할을 맡게 된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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