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암의 소설보다도 산문을 좋아한다. 원래 한 시대의 빛나는 지성은 어느 장르보다도 산문정신에 나타난다. 그 점에서 산문은 그 시대 문화의 척도이기도 하다. 연암의 산문은 높은 상징과 밑모를 깊이의 은유로 가득하다. 그 상징과 은유의 오묘함 때문에 『연암집』은 아직껏 한글완역본이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연암의 글이야말로 독자에 따라 "아는 만큼 느낄 뿐이다." - P35
연암의 정신은 스스로 부르짖은 단 한마디의 말, 법고창신(法古創新)으로 요약된다. 옛것을 법으로 삼으면서 새것을 창출하라. - P36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영남의 들판은 호남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호남의 산등성은 여리고 안온한데 영남의 능선들은 힘차고 각이 있다. 그래서 호남의 들판은 넓어도 아늑하게 감싸주는 포근한 맛이 있지만, 영남의 들판은 좁아도 탁 트인 호쾌한 분위기가 서려 있다. 그래서일까, 호남의 마을에서는 거기에 주저앉게 하는 눅진한 맛이 있는데, 영남의 마을에선 어디론가 산굽이 너머 달려가고 싶은 기상이 일어난다. - P39
이 책을 다시 펴서 읽으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내 맘 속에서만. 날이 풀리면 갈 수 있으려나
이 길을 가다보면 참으로 기발한 이름의 시골닭집이 나온다. 허름한 집에 허름한 글씨로 입간판을 세워놓고는 상호 왈, ‘켄터키 촌닭집‘이다. 아- 어찌하여 시골닭, 토종닭의 상징성을 켄터키가 가져갔는가! 이 이름 속에 서린 오묘한 문화사적 의의를 후대사람들이 어찌 알고 이해할 것인가. - P17
지금 우리는 간판을 사용가치의 측면에서만 보고 말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화인류학적 유물들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문화상을 아주 정직하게 반영하는 이 시대의 얼굴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면밀하게 읽어내는 것은 답사의 중요한 배움이고 즐거움이다. - P17
영남의 정자들이 이처럼 계곡과 강변의 경승지를 찾아 세운 것이 많다는 사실은, 호남의 정자들이 삶의 근거지에서 멀지 않은 곳, 일종의 전원 생활 현장에 세운 것이 많다는 것과 큰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놀이문화의 정자와 생활문화의 정자의 차이가 된다. 때문에 호남의 정자는 자연과 흔연히 일치하는 조화로움과 아늑함을 보여주는데, 영남의 정자는 자연을 지배하고 경영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 P22
집이란 사람이 살고 있을 때만 살아 있다. 사람이 떠나면 집은 곧 죽는다. - P32
무엇이 진실일까1920년대 미국 금융시장의 전설적인 부부에 대한 이야기로 소설 속의 소설, 자서전, 회고록, 일기의 네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서술하는 사람의 시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읽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진실찾기 게임을 해야 한다.
삶의 모든 기이함은 기나긴 일련의 돌연변이를 통해 일어난다. 내 안에서도 세포들이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그 세포들이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바꾸어놓을지 궁금하다. - P428
자연은 내 기억보다 늘 덜 야하다. 취향이 나보다 훨씬 낫다. - P429
고통만큼 사적인 건 없다. 고통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 P432
A는 늘 그러듯 의구심을 깊이로, 망설임을 분석으로 오해한다. - P444
내가 하지 않은 모든 일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할 때 그 생각의 내용은 정말이지 무엇일까? - P472
지금부터는 그 무엇도 기억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무시무시한 자유 - P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