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대의 안목으로서 격변하는 시류를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항시 백성의 입장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셔먼호사건 이후 천주교 박해 때 그는백성이 천주교를 좇는 것은 위정자가 이를 교화시키지 못함 탓이니 이를 처벌하지 말고 선도해야 한다며 평안도 관내에서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았다. 이 사실만으로도 박규수의 경륜과 인품을 알아볼 수 있다.
박규수는 서화에 대한 안목 또한 일가를 이룬 분이었다. 하나의 안목은다른 안목에도 그렇게 통한다. - P47

초록은 오직 땅과 어울리고 하늘과 맞닿을 때만 생명을 갖는 빛깔이다. 그것은 자연의 빛깔이며 조물주만 구사할 수 있는 미묘한 변화의 원색인 것이다. 6월의 지리산은 그것을 남김없이 가르쳐준다. - P55

봄날 어디엔들 방초가 없으리요마는
옥황상제가 사는 곳 가까이 있는 천왕봉만을 사랑했네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흰 물줄기 십리로 뻗었으니 마시고도 남음이 있네 - P57

정치가는 다 망해갈 때도 최상이라고 말하지만 학자는 가장 좋은 시절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 P63

경상도 장독은 아주 복스럽게 생겼다. 전라도 장독은 아랫도리를 훌치면서 내려가는 곡선이 아름답고, 경기도·서울 장독은 늘씬하니 뻗은 현대적 세련미의 형태감을 자랑함에 반하여 경상도 장독의 탱탱한 포만감은 삶의 윤택이 야물차게 반영되어 풍요의 감정이 일어나 더욱 좋다. - P66

하나의 안목은 다른 안목에도 통한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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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암의 소설보다도 산문을 좋아한다. 원래 한 시대의 빛나는 지성은 어느 장르보다도 산문정신에 나타난다. 그 점에서 산문은 그 시대 문화의 척도이기도 하다. 연암의 산문은 높은 상징과 밑모를 깊이의 은유로 가득하다. 그 상징과 은유의 오묘함 때문에 『연암집』은 아직껏 한글완역본이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연암의 글이야말로 독자에 따라 "아는 만큼 느낄 뿐이다." - P35

연암의 정신은 스스로 부르짖은 단 한마디의 말, 법고창신(法古創新)으로 요약된다. 옛것을 법으로 삼으면서 새것을 창출하라. - P36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영남의 들판은 호남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호남의 산등성은 여리고 안온한데 영남의 능선들은 힘차고 각이 있다. 그래서 호남의 들판은 넓어도 아늑하게 감싸주는 포근한 맛이 있지만, 영남의 들판은 좁아도 탁 트인 호쾌한 분위기가 서려 있다. 그래서일까, 호남의 마을에서는 거기에 주저앉게 하는 눅진한 맛이 있는데, 영남의 마을에선 어디론가 산굽이 너머 달려가고 싶은 기상이 일어난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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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시 펴서 읽으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내 맘 속에서만. 날이 풀리면 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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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가다보면 참으로 기발한 이름의 시골닭집이 나온다. 허름한 집에 허름한 글씨로 입간판을 세워놓고는 상호 왈, ‘켄터키 촌닭집‘이다. 아- 어찌하여 시골닭, 토종닭의 상징성을 켄터키가 가져갔는가! 이 이름 속에 서린 오묘한 문화사적 의의를 후대사람들이 어찌 알고 이해할 것인가. - P17

지금 우리는 간판을 사용가치의 측면에서만 보고 말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화인류학적 유물들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문화상을 아주 정직하게 반영하는 이 시대의 얼굴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면밀하게 읽어내는 것은 답사의 중요한 배움이고 즐거움이다. - P17

영남의 정자들이 이처럼 계곡과 강변의 경승지를 찾아 세운 것이 많다는 사실은, 호남의 정자들이 삶의 근거지에서 멀지 않은 곳, 일종의 전원 생활 현장에 세운 것이 많다는 것과 큰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놀이문화의 정자와 생활문화의 정자의 차이가 된다. 때문에 호남의 정자는 자연과 흔연히 일치하는 조화로움과 아늑함을 보여주는데, 영남의 정자는 자연을 지배하고 경영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 P22

집이란 사람이 살고 있을 때만 살아 있다. 사람이 떠나면 집은 곧 죽는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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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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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실일까
1920년대 미국 금융시장의 전설적인 부부에 대한 이야기로 소설 속의 소설, 자서전, 회고록, 일기의 네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서술하는 사람의 시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읽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진실찾기 게임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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