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일도 질릴 때까지 생각했다. 그것이 아름이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하는 방식. - P142

좋게 말한다는건 상냥하고 친절하게 말한다는 뜻이 아니라, 생각한 바를 처음부터 끝까지 충분히 말해준다는 뜻이었다. 아름은 그렇게 생각했다. - P143

음......
민아는 습관처럼 낮은 소리를 냈다. 그건 듣고 있어, 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설명 없이 서로를 잘 알 때도 있는데. 왜 항상 우리는 어느 순간 낯설어지곤 하는지. - P159

시계를 보지않고 흘러가는 시간은 기이한 데가 있었다. - P161

현실에선 친구를 사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혼자인 지금이 정말로 좋다고 생각하고 사는데...... 인형을 만들면 친구가 생기는 것 같아서 좋아. - P165

지금 생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또다른 생의 자신은 어딘가에서 더 잘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건 아무래도 소용없고 관심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우리는 퍽 잘 어울리지 않은가, 하고 민아는 생각했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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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는 데 들이는 노력과 정성에 놀란다. - P154

코를 찌르는 소독제 냄새 너머로 한 공간에서 개인의 흔적이 모두 지워지며 사람이 이토록 쉽게 망각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멍해진다. "지루 부인이라고 하셨나요? 모른다니까요!? 모렐 부인요? 역시 모른다고요!" 그 방은 또다른 이야기를, 이 도시나 인근 시골 어딘가에서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또다른 인생을 기다린다. - P154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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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나에게 여전히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마음과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죽었다. - P116

그 사람이 하는 일은 그 사람의 심성을 닮는 듯했다. - P124

아름, 재능은 그런 한 단어가 아니고 그 속에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포함된 단어인데, 네가 만난 사람들과 네가 다한 열심도 거기 들어가.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인가에 실패했다 해도 재능이 없는 게 아니야. 네가 바라는 성공에 필요한 재능이 없는 거지. 다른 여러 재능은 있을 거야. 그래서 재능은 항상 사후적일 거야. 되고 나야 그런저런 재능이 있었군, 하고 평가할 수 있거든. - P126

역할이라는 거 정말 어렵지. 그 역할로 인정받고 싶을 때는 더욱더,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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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난 책을 읽으며 평생을 보냈어. 그리고 내 생각에 나는・・・・・・ (그는 한순간 머뭇거린다・・・・・・) 나는 그걸...... (그가 다시 말을 멈춘다......) 그 인생 la vie 이란 걸 살지 못한 것 같아, 그 진짜 인생 말이다." - P95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이가 있는 한, 죽는 것은 불가능하다." - P110

"레퍼토리 하나 없이 목소리만 좋은 것, 그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야. 레퍼토리가 낭독자를 만드는 거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해. 초조해하지 말고, 소설 한 권 한 권, 단편집 한 권 한 권, 그러면 너는 바로 널 감동시키는 진주와도 같은 주제들을 발견하게 될 게다. 너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는 일부터 시작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어야만 잘 읽을 수 있으니까. 네가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재미있거나 진지한 텍스트들을 선택하렴. 그리고 차츰차츰 중심축을 만들어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그렇게 해서 장르나 주제, 세상의 이런저런 지역이나 저자 이름으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요소들을 어떻게 배합시키느냐에 따라 온갖 조합이 가능해지지." - P111

"너는 금세 푹 빠져들게 될거다. 텍스트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는 건 정말 짜릿하고 감동적이니까. 어떤 한 단어 때문에 이전에 읽은 어떤 책의 어떤 단락을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을, 밀려갔다 싶어도 매번 새롭게 태어나면서 끊임없이 되밀려오는 집단창작물이라고 생각하렴. 만약 요행히 그게 인생과 직결된다면, 거기서 너는 걸작을 만나게 되는 거야." - P112

자기가 맡은 역할을 위해 박진감 넘치는 연기를 해야 하는 이야기꾼이나 배우와는 달리, 낭독자는 자기가 읽는 문장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오직 투명하게 존재해야 한다고 그는 절대적으로 믿는다. 오로지 책의 내용만이 밝게 빛나야 한다. - P114

"우리가 쓴 모든 것의 최초의 선구자인 신은/ 사람들이 취해 있는 이 땅 위에서/정신의 날개를 이 책 속에 넣어놓았다./ 책을 펼치는 사람은 누구나 거기서 날개를 찾아,/ 영혼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저 높은 곳을 날 수 있다./ 학교는 예배당과 같은 성소이다./아이가 알파벳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하나씩 따라 읽을 때 / 문자 하나하나마다 미덕이 들어 있으니. / 그 심장은 이 겸허한 미광 속에서 은은히 빛난다. / 그러므로 아이에게 책을 주어라/손에 램프를 들고 걸어라, 그 아이가 그대를 따라올 수 있도록." - P126

노인요양원에서 이웃은 대단히 중요한 존재다. 이웃들은 서로 유대를 맺는다. 서로 공감한다. 자잘한 도움을 주고받는다.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해 수다를 떤다. 우리가 책방 할아버지의 방에서 책 읽기를 시작한 이후로, 책방 할아버지와 그의 옆방 할머니 사이에 진지한 우정이 맺어졌다. 책 읽기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 P132

나는 억지로 눈물을 삼킨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직접 맞닥뜨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책 읽기를 통한 우리의 만남은 틀린 표현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를 마치 손자와 할머니처럼 암묵적인 결탁을 맺은 공모자들로 만들어주었다. 함께하는 순간마다 받는 것만큼 주고 싶은 마음이 일 때, 서로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적당한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 P134

목소리가 가식적이다. 이건 아니다. 시작부터 엉망진창이다.
당연히 누군가와 직접 통화할 거라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뜻밖에도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겨야 하는 그런 난처한 상황에 처한 꼴이다. "제가 부인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셀레스틴, 저예요, 그레구아르예요!"와 같은 식 말고, 아니, 정말로 진지하게, 회복 불가능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는 어떤 어조로 말해야 하는 걸까?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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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마음을, 말로 꺼내놓고야 알 수 있었다. 이제야 혼자 힘으로 해낸 것이 있는데, 그걸 걷어차고 또다른 곳으로 탈주하려는 마음이 스스로도 버거웠던 것이다. 뭔가를 좋아하고 또 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렇게나 무겁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그런 마음이 나를 짓눌러 아침마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 P40

엄마에게 배운 것은 두 가지다. 두 가지 같지만 실은 한 가지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는 수치심. 나는 엄마가 나를 대하는 방식에서 수치심을 느꼈고 그것을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자 애썼다. 나는 엄마가 창피함이나 수치심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거나 좋던 분위기도 잡치게 만드는 엄마의 들쑥날쑥한 날카로움이 나는 언제나 부끄러웠다. - P59

엄마가 가르쳐준 두번 째가 말이나 해봐, 하는 말이었다 그 말 역시 나에게는 수치심을 동반했었다. 나는 부탁이나 흥정이 너무 싫고 어려웠고 그런 상황이 오면 받아내야 할 것도 포기하는 성격이었는데 엄마는 그런 내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다. - P60

직업을 바꾸게 되는 때, 그런 때는 살면서 몇 번 없고, 익숙했던 것과 작별하고 새로운 것과 인사하며 다시 살아 있음을 느끼니까. 거기에 그 직업을 좋아하게 된다면, 없던 용기까지 생긴다. 새로워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 P61

한동안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잔인했다. 그렇게 구는 법밖에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나의 비정하고 박정한 면은 모두 엄마에게서 왔다고, 꽤 오래 생각해왔다. - P63

엄마와 나는 화해하는 방식도 이상했다. 모든 엄마와 딸이 조금쯤 이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안하다는 말 없이 화해했고 서로에게 죽일 듯 퍼붓던 심한 말을 잊었다. - P63

아무래도 슬픔은 고체다. 내가 제일 많이 떠올리는 형태는 어릴 적 봤던 바이올린 활에 바르는 송진덩어리다. 슬픔은 마음 한구석에 송진 같은 고체 형태로 존재하다가 어떤 녹는점에서 녹아 흐른다. 액체가 되어 온몸으로 퍼지기도 하고 자칫하면 눈물이 되어 쏟아지기도 한다. 슬픔의 녹는점은 누군가의 한마디나 체온, 혹은 해질녘의 버스 정류장이나 혼자 멍하니 보내는 주말의 긴긴 낮일 수도 있다. - P67

나는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려웠다.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겉돌까봐. 서로의 현재에는 관심이 없다는 걸 들킬까봐. 순간의 반가움으로 덜컥 약속을 잡았다가 몇 시간을 곤란하게 보낼까봐. 무엇보다 과거의 나를 기억할까봐 두려웠다. 나는 다 잊었는데. 잊으려고 애썼는데 말이다. 그게 뭐가 그렇게 두렵냐고 묻는대도, 두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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