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종말 이후로 또 하나 달라진 점인데, 사람이 없고 라디오와 스냅챗과 페이스북이 없으니 나는 일상의 모든 곳에서 사람의 감정을 느낀다. 감자밭은 따뜻한 봄날에 다정하다. 집은 잔뜩 짜증을 내며 지붕에 구멍 하나를 더 냈다. - P43

날씨는 괴팍하고 신뢰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한시도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연인 같다. 별것 아닌 일에도 화를 내는 그런 남자.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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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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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이름다움을 발견해내던 심시선. 그녀로부터 비롯된 후손들의 당당한 삶이 부럽다.
기억하지 않고 나아가는 공동체는 있을 수 없다는 작가의 말이 오래도록 남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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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말다툼하는 대신 그저 자신을 닫아 버리는 사람이다. 문을 닫거나 책을 덮듯이. - P15

때로 엄마를 보며, 나는 사람이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운 동시에 추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 P16

엄마는 남의 겉모습을 추하게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이 추한 것이라고 했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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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따옴표 같지, 늘 진지하니까. 나는 좀 정신없어서 쉼표같고, 우윤이는 기본 표정이 물음표고, 의외로 해림이가 단단해서 마침표고…………… 너는 말줄임표다. 말줄임표." - P175

어떤 말들은 줄어들 필요가 있었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의 억울해하는 말 같은 것들은 규림은 천천히 생각했고 그렇게 여과된 것들을 끝내 발화하지 않을 것이었다. 타고난 대로, 어울리는 대로 말줄임표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 P175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 P178

"할머니는 할머니의 싸움을 했어. 효율적이지 못했고 이기지 못했을지 몰라도. 어찌되었든 사람은 시대가 보여주는 데까지만 볼 수 있으니까."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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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행위는 읽기라고, - P72

사람의 기억이란 어디서 분절이 생기는 것일까? - P99

마티아스는 오브제가 말을 하면 견디지 못할 인간이었다. 솔직하고 신랄하고 거침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게 시선에게 큰 해방감이었으리라 경아는 짐작할 수 있었다. - P117

부당한 도시에서 오로지 서로만 서로의 존엄을 지켜주었기에 사람을 꺾는 모멸감 속에서 사랑이 싹텄던 것이다. 독한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처럼. - P122

폭력은 사람의 인격을 조각한다. 조각하다가 아예 부숴버리기도 하지만. 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폭력의 기미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얻은 감지력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절망해 방치해버리는 사람도 있어서 한 가지 결로 말할 수는 없다. - P126

친교의 범위가 단정하고 좁은 우윤은 새로운사람과 만나고 친해지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지수가 해코지를 당할까봐 늘 걱정했다. 지수의 입장에선 기우처럼 느껴졌다. 지수에게는 잘 작동하는 촉이 있고, 약간의 아슬아슬함을 감수하더라도 지금까지 몰랐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라 여겼다. 사람이 제일 신나는 모험이었다. - P130

"언니, 그거 알아? 비둘기들도 매들도 원래 바위 절벽에 앉는 새들이라 도시에 적응한 거야."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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