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애정은 그 무엇보다도 폭력적이고 직설적인 감정으로 돌변하곤 한다. - P198

우린 애초에 너무 다른 사람이었으니,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던 두 개의 선이 우연히 한 점에서 만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멀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까. 누군가는 그게 성장이라고, 아니면 자연스러운 이별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 P200

나는 마치 미라처럼, 혹은 소금 기둥처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말라붙어가는 기분이었는데,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에 맞게 커가고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자신의 속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 P200

불행은 참 진부하지만 행복은 특별하다. - P221

어느새 그때의 일은 우리에게 일종의 외딴섬이 되었다. 명백히 우리 관계의 한중간에 놓여 있지만 아무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려 하지도 않으며 심지어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 - P229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언제나 침묵해 버리는 사람이니까.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상처를 썩혀버리는 종류의 사람이니까. 그것이 내 삶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 유일한 삶의 방식을 바꿀 수는 없었다. - P240

떠나간 것은 떠나보내야 한다. 기억도 사람도. 기억의 주인은 나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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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세상 마음대로 굴러가게 놔두면 된다. - P246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일이라는 건 바라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 세계는 오히려 그가 어떤 것을 바라지 않는지를 훤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 P246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말이죠. 세상에는 모르는 채로 덮어두는 게 좋은 일도 있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당신 어머니 일도 그래요. 진상을 알게 되면 그건 당신에게 상처가 돼요. 그리고 일단 진상을 알게 되면 거기에 대한 책임도 떠맡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 P265

남자는 잠시 틈을 두고 나서 말했다. "내가 아직 맛본 적이 없는 고통이 있다면 그게 어떤 것인지 한번 보고 싶군." 거기에는가벼운 야유의 여운이 담겨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든 고통이란 즐거운 게 아니죠."
"하지만 아픔을 수반하는 게 효과는 더 크겠지. 그렇지 않은가? 의미 있는 고통이라면 나는 견딜 수 있어." - P267

"아픔은 많은 경우에 다른 아픔에 의해 경감되고 상쇄되지. 감각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야."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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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있는 정상적인 사람은 눈사태가 일어날 법한 계절에 눈사태가 일어날 법한 곳에는 가까이 가지 않아." - P126

나라는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은 무가 아니다.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변함없이 덴고라는 열 살 소년을 그리워한다. 그의 강함과 총명함과 다정함을 그리워한다. 그는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육체는 멸하지 않고, 서로 나누지 않은 약속은 깨지는 일이 없다. - P133

신문은 ‘일어난‘ 일은 적극적으로 다루지만 ‘진행중인‘ 일에는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매체다. - P138

고전적으로 표현하자면, 당신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고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들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긴 했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파워풀한 조합이었다. 각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서로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 P187

친절이라는 건 지금(혹은 항상) 이 세계에 부족한 것 중 하나였다. - P188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런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거예요. - P211

"공백이 생기면 누군가가 와서 채워야 해요. 다들 그렇게 하는거니까." - P215

"설명을 안 해주면 그걸 모른다는 건, 말하자면 아무리 설명해줘도 모른다는 거야." - P215

이 사람은 텅 빈 잔해 같은게 아니다. 그냥 빈 집도 아니다. 고집스럽고 협소한 영혼과 음울한 기억을 안고 바닷가 요양소에서 더듬더듬 삶을 이어가는 살아 있는 한 남자다. 자신의 내면에서 서서히 퍼져가는 공백과 어쩔 도리 없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아직 공백과 기억이 뒤엉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이윽고 공백이, 본인이 그것을 원하건 원하지 않건, 남겨져 있는 기억을 완전히 삼켜버릴 것이다. 그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가 이제부터 맞서려는 공백은, 내가 태어난 곳과 똑같은 공백일까.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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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윤도의 세계는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내 비밀의무게에 짓눌려 남들도 자신의 비밀을 짊어지고 살고 있을 거라는생각을 하지 못했다. 짐작도 하지 못할 만큼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 P125

때때로 절대 과거가 되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 P131

학교라는 사회가 야생이나 다름없으며 다층적인 권력관계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 삶이라는 게 한 발짝만 잘못 내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자각이 없다는 점. 순수의 시절에나 간직할 수 있는 맑은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 태리의 그런 투명함이 나는 언제나 불편했다. 그 맑은 얼굴에 보기 흉하게 구겨진 나의 내면이 자꾸만 비쳐 보이는 것 같아서.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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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가 말했어." 다마루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왔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한다. 고" - P36

"이야기 속에 필연성이 없는 소도구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거지. 만일 거기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 이야기의 어딘가에서 발사될 필요가 있어. 체호프는 쓸데없는 장식을 최대한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어." - P36

아오마메는 탄환이 장전된 권총을 받아들고 그 무게가 불어난 것을 깨달았다. 아까처럼 가볍지는 않다. 거기에는 확실히 죽음의 기척이 있었다. - P84

인간에게 죽을 때라는 건 아주 중요한 거야. 어떻게 태어날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선택할 수 있어. - P87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끊는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야. 영화와는 달라. 영화에서는 다들 깨끗하게 죽지. - P87

"돈은 필요 없어. 이 세상은 돈보다 오히려 서로 빚을 주고받는 걸로 돌아가거든. 나는 빚지는 건 싫으니까 가능한 한 빚 받을 데를 많이 만들어두지." - P89

"체호프는 뛰어난 작가지만 그의 방식만이 유일한 건 아니야. 당연한 얘기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총이 모두 다 불을 뿜는 건 아니야." - P91

자신이 지금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의식만으로도 세계가 조금 달라 보였다. 주변 풍경에 기묘한 낯선 색감이 더해졌다. - P92

모든 총이 다 불을 뿜는 건 아니야, 아오마메는 샤워를 하면서 자신에게 말했다. 총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야기의 세계가 아니야. 여긴 터진 틈과 부정합성과 안티클라이맥스로 가득한 현실세계야. - P92

이따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깜박 잊을 뻔하기도 했다. 이건 진짜 현실일까. 자신에게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면, 다른 어디에서 현실을 찾아야 할지 그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우선은 이것을 유일한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어떻게든 이 현실을 살아낼 뿐이다. - P95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아오마메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 두려운 것은 현실이 나를 따돌리는 것이다. 현실이 나를 두고 가버리는 것이다. - P95

과거를 아무리 열심히, 면밀하게 다시 바꿔 쓴다 해도 현재 나 자신이 처한 상황의 큰 줄거리가 변하는 일은 없다. 시간이라는 건 인위적인 변경은 모조리 취소시켜버릴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가해진 수정에 다시금 새로운 수정을 덧칠하여 흐름을 원래대로 고쳐갈 게 틀림없다. 다소의 세세한 사실이 변경되는 일은 있다 해도, 결국 덴고라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덴고일 수밖에 없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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