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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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이 태어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추운 세상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혼자가 된다. 그 세상은 자애로운 신뿐만 아니라 사탄 역시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지나가고, 스러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삶을 끝내고 가는 곳은 어떤 곳일까. 페테르의 말대로 이름도 없고, 말도, 몸도 없는 곳일까. 그래서 아플 것도 없는 곳,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곳일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서 환한 곳일까. 또 그곳은 우리가 사랑하는 건 다 있고 사랑하지 않는 건 없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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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고는 겨드랑이 아래로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옥죄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일,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가 몰고 오는 것들. 그로 인해 자신의 지금 존재가 위협받는 것. - P220

"두려워할 거 없어요. 여느 때의 일요일이 아니니까." 소녀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알려주듯이 그렇게 말했다. - P221

이상이 발생한 건 내가 아니라 이 세계다.
그래, 맞아.
어딘가의 시점에서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소멸하고, 혹은 퇴장하고, 다른 세계가 거기에 자리바꿈을 한 것이다. 레일 포인트가 전환되는 것처럼. - P231

그런 일을 하고 나면 그다음의 일상 풍경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은 언제나 단 하나뿐입니다. - P235

"뭔가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 요컨대 아직 틀에 박히지 않았다는 얘기니까." - P253

"‘모든 일에는 반드시 두 개의 측면이 있다‘ 라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덴고는 말했다. "좋은 면과 그다지 나쁘지 않은 면, 두 가지입니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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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늙는다는 건 고약한 일이야. - P73

야생초들과 그가 아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그가 속한 자리다. 그의 것이다, 언덕, 보트하우스, 해변의 돌들, 그 전부가, 그런데 그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소리처럼, 그렇다 그 안의 소리처럼 그의 일부로 그 안에 머물 것이었다. 요한네스는 손을 들어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본다. 모든 것이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것을, 하늘 저 뒤편에서, 사방에서, 돌 하나하나가, 보트 한 척 한 척이 그에게서 희미하게 멀어져가고 그는 이제 더이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오늘은 모든 것이 과거 어느 때와도 다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일까? - P74

바다가 더이상 자네를 원하지 않는구먼, 그가 말한다 - P81

그래도 닥칠 일은 닥치는 법이야, 그가 말한다 사람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언젠가는 우리 모두 차례가 오는걸, 그가 말한다 - P124

자네 삶과의 연결을 끊어야 하니 뭔가는 해야 했지, 페테르가 말한다 - P130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 P131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 P131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하지만 영혼은, 영혼은 아프지 않단 말인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 P131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 - P132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 P133

그리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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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 몸에 눈꺼풀과 입술이 있다는 건.
그것들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잠길 수 있다는 건. - P161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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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 그의 얼굴이 그녀에게 낯익은 것이 되었다. 그의 평범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세가, 고유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세가 되었다. - P92

말을 잃고 나자 그 모든 풍경이 조각조각의 선명한 파편이 되었다. 만화경 속에서 끝끝내 침묵하던, 무수한 차가운 꽃잎같이 일제히 무늬를 바꾸던 색종이들처럼. - P99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 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않을 거라고.
언젠가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 내가 이끌고 온 모든 경험의기억을 나는 결코 아름다웠다고만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렇게 남루한 맥락에서 나는 플라톤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라고
그 역시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 P120

넌 나에게 말했지.
병실의 벤젠 냄새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자신을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아름다움은 오직 강렬한 것, 생생한 힘이어야 한다고. - P122

삶이란 게 결코 견디는 일이 되어선 안 된다고.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를 꿈꾸는 건 죄악이라고. - P123

어떻게 된 게, 이놈의 나라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하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야 한다니. 이제 그만 안 웃고 살고 싶다. 그냥 내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어. 집에서라도 나는 안 웃으련다. 내가 안 웃어도 화난 거 아니니까 오해 마라.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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