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들이 문화재와 토목사업에 두는 관심은 자기능력의 과시와 대국민 선전효과에 있어왔다. - P222

늘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돌보아주어야 좋은 효과를 내며 자극도 된다 - P228

나는 항시 관(官)이 하는 일보다도 민(民)이 하는 일이 빛날 때 그 문화는 성숙한다고 믿고 있다. 세상사람들이 알아주는 일에 매달리는 스테이지 체질들이 제풀에 사그라들고, 남들은 뭐라고 하든 곰바위처럼 자기가 생각한 일에 일생을 거는 쇠귀신 같은 분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소중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4천만이 들떠서 레게춤을 흔든다 해도 단 한 명만이라도 그러지 않는 인생이 있다면 우리 문화는 죽지 않고 영원하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1세기 한국역사가 나에게 가르쳐준 값진 교훈이었다. - P228

그날 내게 다가오는 석불사 석굴의 조각은 맹목적 보편성을 드러내는 아카데미즘이 아니었다. 신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인간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말하기엔 절대자의 기품이 강하였다. 엄숙하다고 말하기엔 온화하고, 인자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엄했다. 젊다고 생각하려니 너무 의젓하고 노숙하다고 말하기엔 너무도 탄력있었다. 남성으로 보려 하니 풍염하고 여성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건장하였다. 그리하여 혹자의 "아버지라고 보려 하니 너무 자비롭고, 어머니로 보려 하니 너무 엄격했다"는 말도 생각났고, 이 세상의 질서와 평화가 저 한 몸에 있다는 말도 생각났다. - P234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 P234

종소리는 때리는 자의 힘만큼만(에 응분하여) 울려지나니……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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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도 훨씬 더 나쁜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 P61

왜냐하면 이 기소사건과 관련된 한 재판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역사였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재판의 심판대에 서 있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고 나치 정부도 아니며 바로 역사 전체에 나타나는 반유대주의이다."
이것은 벤구리온이 설정한 기조였고, 이를 하우스너 씨는 충실하게 따랐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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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네다의 짧은 일생 속에 담겨진 많은 의미를 생각해본다. 35세의 젊은 나이로 죽는 그해까지도 땡볕에서 부소산성을 측량하던 백면의 기술자이고 무명의 건축학도였던 그가 7년간 말없이 성실하고 치밀하게 측량했던 그 경험을 토대로 불과 3년 만에 이처럼 위대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인생을 사는 법과 학문하는 법을 동시에 배우게 된다.
그의 삶과 학문은 ‘작은 것의 힘, 작은 것의 위대함,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 P197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들어 있다 - P197

석굴은 경이적인 정확도로써 기하학적으로 건립되었다. 이 정확도는 1천분의 1, 아니 1만분의 1에 달한다. 1만분의 1이란 10m에 대하여 1mm의 오차를 말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석굴의 각 석재가 얼마나 정확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뜻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석굴 본당은 정원(正圓)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원호(圓弧)를 구성하고 있는 조각의 숫자만도 15구에 달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거대한 화강암의 암석을 갖고 마치 밀가루반죽이라도 다루듯 자유자재로 다듬어놓았던 신라인의 솜씨도 놀랍거니와 그러한 솜씨를 뒷받침하여준 신라인의 기하학에 대해서도 경탄할 뿐이다. - P200

진짜 과학자란 모름지기 자연현상을 거스르지 않으며, 거기에 순응하는 과학적 사고를 하는 분임을 나는 여기서 알았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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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기소되면 변호를 받고 판결을 받아야 한다. 또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는 다른 질문들, 즉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왜 그 일이 일어났던가?" "왜 유대인이?" "왜 독일인들이?" "다른 나라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동맹국들의 공통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어떻게 유대인은 자신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에 협조할 수 있었을까?" "왜 그들은 도살장에 가는 양처럼 자신들의 죽음을 향해 걸어갔을까?" 등과 같은 질문들은 중지되어야 한다. - P52

심판대에 오른것은 그의 행위에 대한 것이지, 유대인의 고통이나 독일 민족 또는 인류, 심지어는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다. - P52

정의는 은둔을 요구하고, 분노보다는 슬픔을 허용하며, 그 자신을 주목받는 자리에 놓음으로써 갖게 되는 모든 쾌락을 아주 조심스럽게 피하도록 처방한다. - P53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하는 참상의 중압감 아래 무너진 것은 바로 이 재판의 연극적 측면이었다. 재판이란 희생자가 아니라 행위자와 함께 시작되고 끝나는 연극과 흡사하다. 쇼와 같은 재판은 무슨 일이 일어났고 또 어떻게 일어났던가에 대한, 한정된 분량의 잘 정리된 개요를 보통 재판보다 훨씬 더 절실히 요구한다. 재판의 중심에는 행위자만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행위자는 연극의 주인공과 같다. 따라서 만일 그가 고통을 받는다면 그가 행한 일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지, 그의 행위가 야기한 타인의 고통 때문에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 - P57

비유대인의 세계에 주는 교훈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100여만 명의 아기들이 단지 유대인의 아기라는 이유 때문에, 어떻게 나치스에 의해 살해되었는가를 우리는 세계만방에 입증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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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석굴암은 분명히 하나의 마음에 의해 통일된 계획의 표현이다. 인도 아잔타나 중국 용문석굴처럼누대의 제작이 모인 집합체가 아니다. 하나의 마음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연한 구성이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적 제작이다. 외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놀랄 만큼 주도면밀히 계획된 완전한 통일체이다. - P186

걸음을 굴 밖에서 굴 안으로 옮기면 마음도 또한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 위대한 불타는 소리없이 조용히 그 부동의 모습을 연화좌대 위에 갖춘다. 우러러보는 자는 그 모습의 장엄과 미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완전히 내적인 영(靈)의 세계다. 그는 앞에 네 명의 여보살을, 뒤에는 십일면관음을, 그리고 좌우에는 그가 사랑하는 열 사람의 제자를 거느리고 영원의 영광을 고한다. 감실에 있는 여러 불상들은 그 법열을 찬송하는 듯하다. 여기는 (석굴 밖) 외부의 힘의 세계가 아니다. 내적인 깊이의 세계다. 미와 평화의 시현이다. 또한 장엄과 그윽함의 영기(靈氣)이다. 얼마나 선명한 대비가 굴 안팎에 나타나 있는가! 모든것이 밖으로부터 안으로 돌아간다. 힘에서 깊이로 들어간다. 움직임[動]보다도 고요함 속에 사는 것이다. 종교의 의미는 석굴암 속에서 다하는 느낌이다. - P186

침묵의 물체를 보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감정이입의 상태를 말할 수 있는 것은 글솜씨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 P189

불상이란 곧 인간이 만들어낸 절대자의 상이다. 신, 절대자, 완전자, 그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곧 이상적 인간상의 구현이다. 그것은 모든 고대인들이 추구한 조화적 이상미이기도 하다.
모든 양극의 모순이 극복되어 하나의 이상적 질서를 이룰 때 우리는 그것을 고전적 가치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고전은 고전으로서 통한다. 그것은 양의 동서, 때의 고금을 관통하는 이상인 것이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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