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기소되면 변호를 받고 판결을 받아야 한다. 또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는 다른 질문들, 즉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왜 그 일이 일어났던가?" "왜 유대인이?" "왜 독일인들이?" "다른 나라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동맹국들의 공통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어떻게 유대인은 자신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에 협조할 수 있었을까?" "왜 그들은 도살장에 가는 양처럼 자신들의 죽음을 향해 걸어갔을까?" 등과 같은 질문들은 중지되어야 한다. - P52

심판대에 오른것은 그의 행위에 대한 것이지, 유대인의 고통이나 독일 민족 또는 인류, 심지어는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다. - P52

정의는 은둔을 요구하고, 분노보다는 슬픔을 허용하며, 그 자신을 주목받는 자리에 놓음으로써 갖게 되는 모든 쾌락을 아주 조심스럽게 피하도록 처방한다. - P53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하는 참상의 중압감 아래 무너진 것은 바로 이 재판의 연극적 측면이었다. 재판이란 희생자가 아니라 행위자와 함께 시작되고 끝나는 연극과 흡사하다. 쇼와 같은 재판은 무슨 일이 일어났고 또 어떻게 일어났던가에 대한, 한정된 분량의 잘 정리된 개요를 보통 재판보다 훨씬 더 절실히 요구한다. 재판의 중심에는 행위자만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행위자는 연극의 주인공과 같다. 따라서 만일 그가 고통을 받는다면 그가 행한 일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지, 그의 행위가 야기한 타인의 고통 때문에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 - P57

비유대인의 세계에 주는 교훈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100여만 명의 아기들이 단지 유대인의 아기라는 이유 때문에, 어떻게 나치스에 의해 살해되었는가를 우리는 세계만방에 입증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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