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상징
칼 구스타프 융 외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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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어려워보이는 학문적 서술을 비교적 쉽게 풀어놓아 초심자들도 교양서로 읽기에 최적입니다. 내용도 무척 흥미롭고 여러가지 화보 첨부와 더불어 책만듦새도 훌륭해 소장하면서 읽기에 좋은 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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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빛 속삭임 속삭임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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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관시리즈'로 유명한 아야츠지 유키토, 그가 스물일곱살에 썼다는 1988년작 <진홍빛 속삭임>. 그의 작품 <어나더>와 비슷한 분위기의 호러미스터리다.

 

 어떤 사정에 의해 기숙사 여고로 전학 온 소녀. 엄격하기 이를데 없는 교칙과 숨막힐듯한 분위기, 기묘한 반 아이들의 소근거림과 눈빛들, 흐릿흐릿 기억날듯 말듯한 소녀의 과거, 그 속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연쇄살인사건.

 

 소녀들의 피(월경)에 대한 원초적 공포, 자라난 환경과 가정상황 등에서 빚어진 트라우마, 그로인해 분출되는 뒤틀린 욕망, 감금(폐쇄적인 기숙사, 특별실, 근신실)과 억압(엄격한 교칙)에 대한 두려움과 반사심리 등 여고생들이 느낄만한 두려움과 공포를 적절히 뒤섞어 그럴싸한 물리적, 심리적 분위기를 잘 만들어내고 있다.

 

 다만, 일부러 공포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쓴 여러가지 서술장치들에 있어서는 특별히 무섭다거나 오싹해졌다기 보다는 왠지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배어났다. 이십대의 젊은 작가가 이렇게 하면 독자들이 무서워할까, 저렇게 하면 오싹해할까 하며 공포분위기를 만들어보고자 낑낑대며 열심히 노력해 써내려간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기 때문에. 어쩌면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밝을 때 작품을 읽어나갔기 때문일지도... -.-;;

 

 그리고 원초적이고 인위적인 소녀들의 욕망에 더해 그 나이대 소녀들이 가질법한 시기와 질투, 겉과는 전혀 다르게 저 깊은 속에서 은근히 끌어오르는 한줄기 내밀한 심리를 잘 버무려 놓았더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무대와 배경이 제한적이었기에 어쩔수 없었다 싶고, 약간은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분위기의 작품이라 조금 못미친 부분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후에 문고판으로 다시 내면서 쓴 아야츠지 유키토의 후기에 '얼굴이 붉어지는 부분이 많아서 차라리 다 뜯어 고치고 싶었다'고 술회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들. 범인은 누구일까, 어떻게 된 일일까 궁금해 책장을 신속하게 넘기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범인의 정체와 반전.

 

 관시리즈도 그렇지만 이 작가의 작품에서 복선과 복선회수는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철저하다. 사소한 것 같은, 그냥 흘려버린 문장과 표현 하나하나에도 결말과 반전을 위한 '빵조각'이 숨어 있으니, 모든 것을 다 알고난 뒤에 책장을 팔락거리며 앞부분을 허겁지겁 넘겨보고 '아, 그랬구나.', '이게 그 의미였구나.'하고 느끼는 허탈함과 묘한 쾌감.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을 찾아 읽게 만드는 주요 원동력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속칭 속삭임 시리즈는 <진홍빛 속삭임>, <어둠의 속삭임>, <황혼의 속삭임> 이렇게 세 편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의 분위기를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관시리즈'라는 메인요리에 곁들여 내놓는, 아야츠지 유키토식 호러미스터리를 한번 맛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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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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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번 작품은 일단 추리소설은 아니다. 중반부까지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야기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반전은 있는가 등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장치들이 여럿 있지만 일단 추리소설은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번 작품은 일단 재미있다. 가독성 정말 끝내준다. 어쩌면 이와 유사한 형태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이 있었을지언정 히가시노 게이고식 이야기로 청소기로 먼지 빨아들이듯 독자를 흡입력 있게 몰입시킨다.

 

 읽으면서 내내 떠올랐던 것은 소니사의 비디오게임기 PS2의 게임 '절체절명의 도시'시리즈와 한때 인기를 끌었던 미드 'LOST'다. '절체절명의 도시'는 직접 플레이 해본 게임은 아니지만 재난을 당해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도시에서 생존자들과 조우하고 식량을 찾아내고 생존하는 그런 류의 게임. 이번 작품과 굉장히 유사한 면이 많다. 미드 'LOST'는 운항중이던 비행기가 정체불명의 섬에 불시착,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존기와 섬의 비밀에 관한 드라마. 이 'LOST'에서 나중에 밝혀지는 세계관과 전체적인 얼개가 <패러독스13>의 그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 그리고 작품명은 정확히 기억안나지만 어떤 이유로 세상에 홀로 남게 된 남자가 공허한 도시에서 이것저것 찾아내며 생존하고 생존자들과 하나 둘씩 만나고 뭐 그런식의 일본만화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패러독스13>의 이야기 전개는 사실 그렇게까지 놀랄만큼 기발하다거나 창의적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어느정도 예측가능한 부분들이 많고, 상상해서 써내려가면 12권짜리 대하소설이 될 수도 있는 세계관을, 비록 페이지수는 적잖이 많지만 어쨌거나 한권에 압축해서, 적당히 축소해서 써냈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P-13 현상에 대한 해석, 법과 규칙이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인간에 대한 의미와 인간사이의 관계에 대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생각, 안락사나 노인복지에 관한 생각 등 의미있고 생각해볼만한 문제들을 잘 녹여내 이것저것 곱씹을 거리가 있다. 특히 P-13현상과 등장인물들이 지금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된 그 순간만큼은 '오~ 나름 참신한데!'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과연 이 절체절명의 순간 그 끝에 있는 결말은 무엇일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이야기를 과연 어떻게 끝낼까 너무도 궁금해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결말 역시 예측가능하다면 가능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지금껏 이끌어온 이야기와 인물들간의 관계 등에서 결말을 잘 이끌어내 나름 여운있는 마무리로 장식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역시 애증의 작가다. 진심어린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게 뭐야 싶은 망작(?!)도 있고, 이젠 그만 봐야지 하다가도 신작만 나오면 찾아 보게 되고. 굳이 추리소설에만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작품 스펙트럼을 보여주기도 해 다양한 형태의 기대감과 다양한 형태의 실망감을 동시에 주기도 한다. 국내에 기출간된 그의 작품 대부분을 찾아 읽은 지금 확실한 것은, 어찌됐건 저찌됐건 그의 신작이 나오면 나도 모르는 새에 그 책을 손에 쥐고 파락파락 책장을 넘기고 있을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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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 2012-11-23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추천드리고갑니다^^
 
자물쇠가 잠긴 방
기시 유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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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시 유스케의 대표작을 딱 하나 꼽으라면 누구나 <검은 집>을 떠올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유리망치>가 떠오른다. 처음 접했던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밀실트릭과 그 치밀한 준비과정 서술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읽은지 몇년 지난 지금도 읽을 당시의 몰입감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이 <유리망치>를 읽고 기시 유스케의 작품을 모조리 찾아 읽어야 겠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유리망치>에서 <도깨비불의 집>을 거쳐 이번 작품 <자물쇠가 잠긴 방>에 이르는 에노모토 케이, 아오토 준코 콤비. 무늬만(?!) 방범 컨설턴트인 에노모토 케이가 냉철한 눈으로 깨부수는 밀실 트릭, 자뻑개그를 비롯해 깨알같은 푼수연기(?!)를 선보이는 아오토 준코 변호사.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번 작품은 오롯이 밀실을 연주하기 위한 소나타처럼 스케치된 작품이다.

 

 밀실 트릭만을 구상하고 파훼하기 위해 쓰여진 작품인 만큼 범인과 범행동기 등은 시작부터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밀실의 형태를 빌어 사장의 자살처럼 꾸미는 '서 있는 남자', 역시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양아들을 밀실의 형태로 자살시키는 '자물쇠가 잠긴 방', 달콤한 신혼을 위해 지은 집을 부실시공으로 망쳐놓은 건축업자에 대한 복수 '비뚤어진 상자', 앞의 세작품과는 달리 우연과 돌발로부터 유발된 사건 '밀실 극장'.

 

 각각 100여페이지 내외의 단편들이지만 짤막짤막한 설명들로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의 사연들은 나름 기구하기도, 나름 흥미롭기도 해 이야기꾼 기시 유스케의 솜씨가 여실히 드러난다. 장례사업에 관한 것이라든지, 건축시공에 대한 지식이라든지, 샤를의 법칙, 보일의 법칙 등 중고등학교 때 배웠(으나 막상 기억은 잘 안나는...)던 과학지식이라든지, 추리소설임을 떠나서 소소하고 세세한 지식들을 알음알음 깨달아가는 재미도 있다. 이런 것이 또한 기시 유스케 소설을 읽는 맛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작품을 집필하기 전에 관련분야의 지식들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쓴다는 기시 유스케니까.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캐릭터나 설정이 <악의 교전> 주인공이었던 '하스미 세이지'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했다는 점. 특히 까마귀에 대한 언급을 보면 심증이 확증이 된다. 이는 작가의 '하스미 세이지'에 대한 오마주(?!)이거나, 흔한 자기복제이거나... 어떤 의도였건간에 기시 유스케의 작품들을 즐겨읽는 독자들이라면 살짝 웃음이 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여러 의미에서.

 

 그런데 정작 밀실 트릭과 그 해결에 있어서는 살짝 아쉬움이 느껴졌다. 상황을 주어놓고 여러가지 재료를 깔아주기는 하는데, 독자가 추리를 통해 이를 깨뜨려보기란 쉽지 않다. 밝혀진 진상을 놓고 보면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에노모토 케이가 이건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하다 하니까 그런가보다 싶었지, 이게 실제로 말이 되는건지, 안되는건지 조금 아리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범인들의 단순한(?!) 생각들. 그렇게 치밀하게 밀실을 만들어놓고 밀실 속 자살이니까 난 결백하오~ 하면 뭘하나. 누가봐도 심증과 혐의는 범인에게 가게 되어 있는데. 차라리 우연을 가장한 사고사를 노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손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뭐, 어디까지나 밀실만을 위해 설계된 작품이니 지극히 당연한 설정이겠지만.

 

 어쨌거나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읽는 재미는 훌륭하다. 말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기발한 트릭들과 이를 산산이 깨부수고 범인을 굴복시키는 쾌감 또한 일품이다.

 

 이번 작품의 번역후기를 보면 번역자님의 기시 유스케에 대한 질문과 답변 몇가지가 실려 있는데(지난 8월 <다크존>(씨엘북스) 출간을 기념한 방한때 했던 것이라고 한다), 에노모토-준코 콤비의 밀실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 기시 유스케의 언급이 있다.

 

 "일단 상황을 설정해두면 트릭은 어떻게든 나옵니다."
 "아이디어는 있습니다. 작품이 드라마화되면서 의욕이 좀 더 샘솟더군요."

 

 그토록 애정해마지않는 콤비는 아니지만(^^;) 에노모토-준코 콤비의 밀실트릭 작품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부디 다음 작품은 조금 더 그럴싸하고, 조금 더 기발한 밀실로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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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의 가문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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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역사에 있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전국시대를 종결짓고(단순히 '전국시대를 통일했다'라고 표현하기에는 제법 복잡한 역학관계들과 사연들이 많다) 이후 근 300년 가까이 지속된 에도 막부를 창시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패왕의 가문>은 일본역사소설의 거장인 시바 료타로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도쿠가와 이야기다. 마치 시오노 나나미가 팩트와 사견을 엮고 상상력을 보태 '로마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듯, 시바 료타로 역시 여러 기록들과 일화들을 바탕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과 역사를 조망하고,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과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하듯 서술해 나간다. 그야말로 '도쿠가와 모노가타리(德川物語)'라 할 수 있겠다.

 

 도쿠가와 가문, 이전의 마쓰다이라(松平, 도쿠가와로 성姓을 바꾸기 전의 성) 가문의 발원과 해당지역의 풍토, 기질에 대한 서술로 운을 떼는 시바 료타로. 이른바 '미카와 기질'로 명명한 이 성격과 풍토, 기질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본인을 비롯, 도쿠가와 가문의 가신들과 나아가 에도 막부 270년간 치세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유전인자로 작용함을 역설한다. 질박하고 정이 많으며, 쉽게 남을 믿지 않고, 허례허식이나 허황된 것을 배척하고 기존의 가치와 인식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촌사람 특유의 음험함과 질퍽하면서도 끈끈함을 동시에 갖춘 미카와 사람들의 미카와 기질. 철저하게 낮추고 인내하고, 지키고 뭉치는 이 미카와 기질로 말미암아 전국시대 최후의 패자覇者로 군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야스 뿐만 아니라 향후 에도 막부의 성격, 아울러 근대 현대 일본인들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이 미카와 기질에 대해 시바 료타로는 무척 회의적인 표현을 여러번 하는데, 시대와 동떨어지고 안존하고 폐쇄적인 기질이 일본의 발전을 저해하고 왜곡되고 뒤틀린 일본인을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시각과 작가의 생각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비판의 여지도 있고 논란의 여지도 있을 수 있으나 어쨌거나 무척 흥미롭게 느껴지는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인간 이에야스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들여다보고 짜내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이 '미카와 기질'에 대한 언급이 작품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고 있고, 이 '미카와 기질'이 전국시대 후반부터 에도시대를 관통하고 있다고 보는만큼 작품의 제목을 인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니라 '패왕의 가문'으로 이름지었다 한다.

 

 그렇게 미카와 기질로 서두를 뗀 뒤, 이에야스의 슨푸 인질 시절부터 미카타카하라, 장남 노부야스와 정실 츠키야마의 처형, 혼노사의 변, 혼노사의 변 후 고슈와 신슈 병합, 고마키-나가쿠테 전투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따라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미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었기 때문에 무척 익숙하게 다가왔던 이야기들인데, <패왕의 가문>만의 특징은 이 사건과 이야기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해설하듯 서술해 놓았다는 점이다. 서두에 언급한대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비슷한 형식이라고 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듯 하다. 거기에 수많은 일화와 기록들을 군데군데 끌어와 해당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었고(이를테면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에게 제철이 아닌 때에 복숭아를 선물했는데 이에야스는 하나도 먹지않고 가신들에게 나눠주었다라는 사실을 다케다 신겐이 듣고 이에야스가 천하에 야망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제철이 아닌 음식을 먹고 탈이나서 목숨을 잃거나 하면 천하를 취할 수 없지 않겠느냐 하는 것 등등), 시바 료타로만의 시각으로 함께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상상의 날개를 펼쳐볼 수 있었다는 점 등, 소설형식으로 읽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또다른 새로운 재미와 흥미를 느껴볼 수 있었다. 물론 부분부분 소설적인 서술과 묘사들도 함께 한다.

 

 스토리 라인에 있어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고마키-나가쿠테 전투 이후 꽤 많은 세월을 뛰어넘어 곧바로 이에야스의 최후로 넘어간 점. 개인적으로 히데요시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까지 이에야스가 혼란 정국을 휘어잡고 전국을 구워삶는 모습을 재미있게 풀어 보여주었으면 했는데 조금 아쉽다(이 부분은 작가가 쓴 '세키가하라전투'라는 작품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초반부 이에야스 독립부터 미카타카하라까지의 약 10여년간도 그대로 점프해버리는데 이 부분은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도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던 기간으로 기억하는 만큼(읽은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달게 자다가도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시대, 어제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지도 모름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자식간에 반목하고 믿었던 친구나 충직한 가신이 칼을 들고 자신의 목을 노릴지도 모르는 그런 시대. 채 100년이 안되는 짧은 시간속에서 무수히 사그러져 간 수많은 인물들과 파격에 충격을 더하는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결국은 살아남아 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긴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 이에야스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치고 피로 눈물로 삼키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는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마음먹고 행동했는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까지 했는가를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앞서 말한대로 천하쟁패의 결정적인 장면은 언급되지 않았으므로(이 말을 쓰고보니 작가가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에야스의 고난과 인고의 세월에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어린 시절부터 인질로 잡혀가 굴욕을 당하고 이웃 강대국들에게 계속 고개를 숙였던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시대의 보편적인 요구와 흐름, 거기에 특수한 미카와 기질이 합쳐져 인간 이에야스를 만들고, 미카와국을 만들고, 나아가 에도 막부를 만들어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에야스가 최후에 이르러서도 그답게 많은 것을 정하고 부탁하고 떠나는 모습을 끝으로 정말 담백하게 작품을 마무리 짓는다.

 

 인간관계의 갈등과 갖가지 모략, 기구한 운명과 기괴한 인물들,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의외의 흐름과 역사 등 일본의 전국시대를 다룬 작품들 중에는 무척 흥미로운 것들이 제법 있다. 우리에게 있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감정, 전국시대 말기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꼴도 뵈기 싫은 인물이 있어 조금은 묘한 감정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할지라도 참 재미있게 잘 쓰여진 작품들이다. 결국은 스토리텔링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할 수도 있겠지만.

 

 이 <패왕의 가문> 역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져들어 읽어내릴 만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소설로 쓰여진 작품과 함께 읽으면 흥미와 깨달음이 배가倍加되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으리라. 인내의 화신 이에야스, 처세의 달인 이에야스지만 굳이 거기에서 배울점을 찾아내고 느껴도, 그렇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일단 재미있다는 것, 먼지쌓인 기록에서 튀어나온 인물답지 않게 생생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 어떤 형태로든 느끼는 바가 있어 한번쯤 자기와 비교도 해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재미난 작품들은 계속 찾아 읽게 될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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