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너
박지영 지음 / 청어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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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너>_박지영
출판사_청어람




 


"나는 기다렸어, 너" 

파리에 유학 갔던 제이는 이모의 부탁이라는 사촌 언니의 메일을 받고 8년 만에 한국에 귀국한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그녀를 맞이한 것은, 놀랍게도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환이었다.
 
아픈 기억을 남겨둔 채 떠나야 했던 한국, 열아홉 살의 시린 겨울에 멈춰버린 제이의 시간.
 
환의 등장으로 제이는 혼란스럽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기로 한다.

그때부터 9년이 흘렀으니까.
이제 둘은 열아홉이 아니라 스물여덟이니까.
 
하지만 긴 시간 탓인지, 계속되는 환과의 갑작스러운 재회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런 상황에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 환. 거기에 그녀를 기다렸다는 환의 말이 결정타로 날아온다. 제이는 그 긴 시간을 기다렸다는 환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것도 잠시, 그녀 앞으로 절망적인 상황들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그래서 더욱 환을 밀어내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녀가 힘들어 할 때마다 늘 그러하듯 묵묵히 그녀의 그림자처럼 곁에서 그녀를 지켜준다. 열아홉에서 멈춰버린 제이처럼 환 역시 열아홉의 그때처럼 그대로 그녀를 지켜본다.
 
비참한 마음에 제이는 그의 마음을 밀어내려 하지만. 무의식중에 그에게 쏠리는 신경과 속절없이 그에게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불편하다.
 
하지만 환은 그런 그녀에게 똑바로, 오롯한 자신의 감정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녀가 헤매지 않도록, 그녀를 가둬버린 시간에서 나올 수 있도록. 아니, 나올 때까지 굳건히 그녀를 바라보고 바라보겠다는 그 지고지순한 마음을 증명하듯이, 애틋하고 절실하게 말한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는데.
...... 막상 널 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 약 스포 주의
    

   
    
열아홉의 상처로 마음을 닫아버린 채 떠나버린 제이와 그런 그녀를 묵묵히 기다린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보여준 환의 이야기 <그리고 ...... 다시 너>. 시점은 1인칭 시점으로 여주인공 제이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
(개인적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인 것 마냥, 환으로 시작해서 환으로 끝났던 작품이었다.
 
내게는 <환 그리고 다시 환>이었던.    
    

글은 어쩌면 매우 잔잔했다. 큰 사건들이 터지고 풀어나가는 글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조금 지루할 수도. 프롤로그에서부터 제이를 충격에 빠뜨렸던 중심 사건이 하나 터지기는 하는데, 그 이후부터는 큰 사건 하나 없이 오롯이 주인공 둘을 조명하며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놀랍게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도리어 어느새 몰입해서는 머릿속에 드라마며 순정만화며 상상하며 미친 듯이 읽었다. 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초반부 조금 진입장벽이 있었지만, 제이의 온 신경을 두드리는 환의 존재감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속절없이 작품에 몰입하고 있었달까.
 
독자로서는 오로지 제이의 시점만 보이니, 계속해서 환을 불편해하고 미안하고, 밀어내려는 마음만 따라가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의 눈물겨운 순애보가 느껴져 버린다. 그러니 책을 넘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묵해서 대사 몇 줄 없는데도 9년의 지극한 순정이 흘러넘치니까.
 
또, 한편으로는 제이가 왜 그렇게까지 이 남자를 밀어낼까. 혹은 꼭 밀어내야만 하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들어서 읽기도 했던 것 같다. 작중 인물들의 이야기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로 어렴풋이 알 수는 있지만, 이해되면서도 동시에 공감하기 어려워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보아도 9년이나 흘렀다면. 이제 제 잘못이 아닌 걸 알 것 같은데. 왜 과거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걸까. 계속 그랬던. 정말 모 이웃님의 말씀처럼 너무 캐릭터가 착해서일까 싶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작중 대사에도 담겨있었고, 작가님이 후기에 남긴 이야기도 있던 것처럼.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 무신경하고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그런 것들로 인해 고통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고민하고 쓰셨다는 게 느껴지는 글이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니 제이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니잖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강도는 다른 거니까. 작은 일이라도 견디기 힘들 때가 있는 반면 큰일에 오히려 의연해 지기도하고. 그걸 알면서도 당시에는 나도 솔직히 이해 못했어.”-p.240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셨다니, 이분도 따뜻한 생각을 하고 글을 쓰시는 분이시구나, 그런 생각을 멋대로 해보았다.
 
 
한편, 감성 제대로 자극 당했다고 했는데, 중간 중간 많아서 다 쓸 수는 없고. ...... 개 중에 인상적이었던 게 차고 씬이었는데
(절대로 그런 장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니다.). 아아. 정말 간만에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애틋하게 묘사된 글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환은 그날 울었다.
 
나를 격렬히 품고 자신의 격한 감정을 쏟아낸 후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어금니를 악다물고 소리 없이.
구 년 동안 묵힌 감정을 토해내듯 바들바들 떨면서.
 
나도 울었다.
-p.160~161

 
 
밀어내기 바쁘지만 속으로는 흘러가는 마음을 잡을 수 없어 안달복달한 제이와 제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환. 그런 두 사람이었기에 갑자기 불이 붙은 둘의 장면치고 이야기가 다소 간단히 끝나버렸나 했는데. 뒤에서 다시 훅 들어왔다. 처음에 제이가 “잘래?”라고 하는데 이미 환한테 몰입했던 때였는지. 왜 나는 그게 세상 잔인하게 들렸는지. 너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러지마. 이러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역시나 다 쓸 수 없지만, 앞에서부터 환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인 탓인지, 뒤로 갈수록 환의 애정 표현 하나하나, 간단한 대사 하나하나가 절실하고 절박하게 느껴지니 미칠 노릇이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는 사람마냥,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은 사람마냥 제이에게 반응하는 환의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보이는 진심어린 애정 때문에 내가 괜히 절절.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남자라니, 모성본능 제대로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남주가 너무 매력적이니 여주의 매력이 반감되는 마이너스 요소가 발생하기도!
 
위에서는 조금 이해되었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이의 행동이 조금 얄미웠달까. 아마 제이가 진짜 나쁜 캐릭터였으면 이 절실한 남자 마음 쥐고 흔드는 나쁜 여자였겠다 싶을 정도로, 조금 이기적으로 보이는 태도 때문에 매력이 조금 떨어졌다. 도대체 얘가 뭔데 환이 이렇게까지? 거기다 밀어내려고 다짐하면서 자꾸 환에게 여지를 주는 게 희망고문 하는 것 같아 미웠기도 했다.
 
하지만 이걸 또 역으로 뒤집으면, 읽으면서 내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든 나를 묵묵히 지켜봐주는 남자가 있다는 든든함과 나를 나로 있게 믿어준 고마운 마음,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점. 그게 또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여주 1인칭이라 남주의 시점이 궁금했을 법도 한데. 그 마음을 너무 잘 아시는지, 작가님이 남주의 시점을 크게 3번 써 주셨다. 근데 또 이게 완전 킬링 파트였다. 과거와 현재까지 변하지 않는, 오히려 더 진득해진 환의 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오랜만에 제대로 감성 자극했던 <그리고 다시 너>.
 
읽으면서 드라마 몇 편이 막 떠올랐다. <도깨비>에서 매번 등장하는 장면인데. 도깨비가 은탁이 해맑게 웃는 장면을 상상하는 씬. 그리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약간 옛 느낌 떠오르게 하는 바랜 듯한 장면 연출과 OST. 또 <키스 먼저 할까요?>의 회상씬들. 왠지 모르게 그런 드라마를 보았을 때의 연출이 떠올라서였는지, 글을 읽는 동안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글을 읽고 멜로망스와 김상민 버전의 <You>가 번갈아가면서 자체 재생하는데...... 가사가, 가사가 정말이지 너무 환이 같아서. 이거 들으면 계속 환이가 떠오를 것 같다. 목소리도 너무 절절해. 또, 제이 입장에서 애정하는 곡 중 하나인 다비치 버전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도 떠올랐던 것 같다.
     
     
물론 등장인물들이 너어어무 착해서 판타지(?)스럽기도하고,
여주를 쥐고 흔들던 문제도 쉽게 풀린 느낌이 적잖아 있지만.
 
제이가 자신의 상처에서 스스로 일어나 자신의 사랑을 마주하기까지 마음과 환의 순애보가 주된 이야기였으니까. 한편으로는 군더더기 없이 둘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던 것도 같다. 또, 착한 이야기에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도 들고.
 
 
더운 여름에, 심지어 배경도 겨울. 이토록 잔잔한 글이라니. 궁금했지만 동시에 조금 걱정도 되었던 글이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도록 글은 너무나도 지금 상황에 잘 어울렸다. 지금이 장마철이라 그럴 수도.
다가오는 태풍에 대비해서 한 권 마련해 두시는 건 어떨는지.
 
오랜만에 기교 없이 정공법(?)으로 승부한 온전한 감성멜로 <그리고 ...... 다시 너>
 
운 여름 장마처럼, 아주 조금은 답답하고 마음을 울적이게 할 수 있지만,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인상적인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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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반시연 지음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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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저갱_반시연 

 

 

 

“나는 괴물이 아니야. 가끔 괴물로 변할 뿐이지.”

 

 

복국집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바닥 인생을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노력도 재능이 있는 놈이나 하는 일. 가까스로 이름없는 전문대에 들어갔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그저 ‘안쓰러운 놈’일 뿐. 점차 좁아지는 설 자리에 결국 복국집 삼촌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복국집의 폭력사건에 휘말리면서 내면에 잠재되어있던 폭력성을 깨우고 만다. 

 

 

푹. 푹. 웃으면서 죽였다.

......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순식간에 매료되어버린 그 느낌은.

......

 

드디어 내가 잘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았어. 나는 타고났다.

 

때리고 싶다.

부수고 싶다.

자꾸 속삭이지 마, 간지러워.

 

상대를 찾아.

목덜미를 물어뜯는 거야.

흐물흐물해지기 전에 꽂아 넣어.

 

하지만 누구를 상대해야 하지? -p.83~85

 

죽일 사람을 찾던 ‘나’는 함께 일하던 추영이 청첩장을 받은 이야기를 듣고 첫 번째 희생양을 정한다. 추영을 사회에 매장시켜버린 리벤지 포르노 영상을 유포했던 그녀의 전 남친. 그리고 그런 남자와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보낸 옛 친구라는 여자였다.

 

유명무실한 법, 인간을 지키고 있던 규율. 그 안에서 인간 취급 받지 못하고 살아온 ‘나’는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법을 등지고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응징하는데 자신의 재능, 폭력이라는 정의를 행사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희대의 살인마 노남용이 출소까지 21일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를 두고 ‘차장’이란 사내는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객의 ‘보호’를 목적으로 고객에게 위해를 가한 자들을 처단하는 회사.

   

“네가 지은 죄를 말해.”

 

그는 그곳에서 ‘공포’를 무기로 활동하는 남자다.

 

 

복국집 삼촌과 차장.

어쩌면 전혀 접점이 없던 두 사내. 그들이 노남용이라는 자를 매개로 마주하게 되면서 평범하게 흘러가던 두 사람의 일상이 또 한번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데........

 

 

**

   

프롤로그부터 강렬했던 글이었다. 인간의 끝없는 어두운 내면, 절망, 광기, 욕망, 분노, 폭력, 가학성, 쾌락. 이런 것들에 대한 심리 묘사가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정의를 구현하고 고객을 보호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저자가 던지는 통렬한 메시지가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책표지 뒷면에 또렷이 보이는, 

 제대로 된 형벌이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를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바로 그 메시지 말이다.

 

맨처음 싸움꾼으로 등장하는 ‘나’. 그는 삶에 치여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폭력 사건을 빌미로 자신의 재능(폭력성)에 눈을 뜬 평범하고 불쌍한 사내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열심히 굴러도 그저 노력하는 안쓰러운 사람. 그 주변에는 버젓이 잘 사는 범죄자 때문에 자신을 숨기고 사는 불쌍한 피해자 동료뿐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작품 표현상 행위가 잔혹하게 그려졌지만, 폭력성과 광기에 미쳐가는 그의 모습이 이상하게 납득이 가버리는 글이었다. (물론 폭력은 안 되지만!) 다만, 자신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법, 그 법 더러워서 등지고 차라리 짐승이 되겠노라 선언하는 그의 모습이 표면적으로는 소름을 자아내지만,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서 처연하게 느껴진다.

정말 절망을 맛 본 사람의 내면은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해서 짠하기도 했고, 좌절감에 다 부서버리고 싶었던 한때 나 자신의 어두운 감정을 떠올리게 해서 묘하게 가슴아프기도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꿈도 희망도 없는 캐릭터가 미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던 인상을 주었던 인물이었다.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사냥꾼인 차장이라는 사내가 등장한다. 그는 고객의 보호를 주 사업으로 하는 회사의 직원이다. 그 보호는 고객의 위험 요소 제거로, 고객에게 위해가 되는 짓을 한 상대에게 얼마든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 차장이라는 캐릭터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가 엄청 신사적인 느낌으로 그려진다. 이쯤 되니 오물을 처리하는 청소부 느낌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지 위험했다. 어디까지나 모두 자신이 정한 ‘정의’를 실현하려고 얼마든지 폭력을 행사하는 자인데 말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인물들의 개성에 몰입되고, 행동을 주시하게 된다. 그들의 잔혹한 실력 행사에 ‘윽’하고 놀라고 소름 돋다가도 다음에 벌일 짓(?)이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행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수단은 잘못되었지만 법의 처벌을 피해간 사람들이 그 대상이니까.

 

그러다가 또 이 인간들의 도 넘은 사고 관념에 혀를 내두른다. 정말 제대로 미친놈들이 판을 치는 글이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눈 못 뗄 만큼 재밌지만, 동시에 몇 번이고 머릿속이 피폐해져서 읽다 덮다 했던 글이었다.

다른 의미로 정말 매혹적이고 위험한 글이었다.

 

 

그리고 그 ‘미친놈’의 끝판왕 노남용. 제 멋에 취해 폭력에 잠식 되어가는 복국집 청년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포를 휘두르지만 신사적이고 자기 관리 철저한 멋진 중년의 남자로 그려지는 차장도. 모두 무서웠지만, 노남용은 정말 물건이었다. 정말 이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 캐릭터 때문에 작가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나 말해줄까요. 당신이 그냥 평범한 병신이었다면 이쯤에서 돌려보낼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아니거든요. 당신 그런 거 아니잖아요. 인간 그만뒀잖아요. 사람을 몇이나 죽였는지 비린내가 진동을 해요.

흥분이 돼서 견딜 수가 없어요. 쉽게 끝나지 않을 거고, 저는 당신이 찾아온 게 너무 원망스러우면서 사랑스럽고 그래요.”-p.274~275

 

 

 

가학성이 있지만 동시에 고통을 받으면서 쾌락을 느끼기도 하는 남자. 강간에 살인에, 무수한 범법 행위를 저질렀는데 부자에 나름 엘리트다. 그래서 더 무서운 남자다. <리턴>의 오태석과 김학범이 지금까지 본 캐릭터 중에 제일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인생 또라이 캐릭터를 제대로 만나버렸다. 비틀린 성정에 가학 기술에 지능까지 탑재하니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던 것이다.

 

스포라 말할 수 없지만 뒷부분에 나오는 남용의 술래잡기(?) 정말 읽는 내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중간 중간 나오는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이 흥분된 분위기를 잠시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것 같지만, 이 역시 가만 생각해보면 무섭다. 죽음이라는 안식을 가져다주는 선생님. 사신의 낫을 든 천사 같은 모습이랄까. 그런 기괴한 형상이 떠오르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앞서 형벌 없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면, 이 선생님의 이야기에는 죽음에 대한 저자의 메모가 따라 붙는데. 잔잔하게 죽음에 대해 풀어놓은 메시지가 마음에 남긴 파장이 어마어마했다.

 

 

사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갈망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인간과 죽음 사이에 놓인 고통을 치워준다. 그들이 비굴해지지 않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끔 명예의 경계를 지켜준다. p.75

 

 

이런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달리는 끝은 정말 상상 불가다. 예측불허 반전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이용하는 사람들, 결국 누가 자신의 목표를 이룰 것인가.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무저갱>이었다.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꼭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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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0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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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_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에서 말하는 ‘자유’란 시민적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다. 사회가 발전하고 시민의식이 성장하면서 시민들은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런 자유를 제한하는 권력이 존재해 왔다. <자유론>에서는 그와 같은 권력의 본질과 한계에 대해 논의하고, 개인의 행복을 위한 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결국 사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개인의 자유를 실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유에 대한 담론은 시대가 지나면서 그 양상을 조금씩 달리해 왔다. 과거 자유는 정치적인 지배자들의 폭정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으로, 그 당시에는 지배자들의 권력에 대한 제한을 의미했다. 하지만 인류 사회가 발전하고 정치의식이 성장하면서 ‘지배자’의 위치에 있던 국가 권력을 지닌 자들이 국민의 대리인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양상에서 그 ‘지배자’들은 국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회에서 ‘자유에 대한 억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국민의 의지’라는 것이 결국 ‘다수의 의지’로 변질되면서, 다시 ‘다수의 폭정’이 나타났다. 지배적인 여론이나 정서의 폭정과 같은 사회적으로 다수인 자들이 행사하는 억압이 자유를 제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과 부합하지 않는 개성이 발전하는 것은 막으려 든다.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정치, 종교, 교육 등을 통한 각 분야, 사회 제도와 규범 등에서 나타난다.
 
물론 과거에는 국가의 질서 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자유를 통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가 해악을 가져오지 않는 한, 국민 스스로, 혹은 정부를 통해서든 자유를 막을 강제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개인의 의사 표현을 막는 행위만으로도 현재부터 미래,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 해악을 주는 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견해가 옳은 것은 아니다. 억압하고자 하는 견해가 옳을 수도 있고, 오류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상 앞에서 토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 인간의 판단이 지니는 모든 힘과 가치는 그 판단이 틀렸을 때에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데 달려 있다. _p.65
 
* 각각 진리의 어느 부분을 반영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격렬하게 충돌하는 것은 해로운 것이 아니다. 도리어 진리의 절반을 담고 있는 어떤 의견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억압되고 있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가공할 해악이다. _p.128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그로부터 나오는 문제도 다양해지는 상황이다. 답이 떨어지는 수학이 아니고서야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토론해야 한다. 나와 반대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부터도 그렇고, 반대의 의견을 듣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역시 관습과 같은 것에 얽매여서 자신도 모르게, 소수의 견해라는 이유로 타인의 자유를 좀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유론>은 이 역시 경계한다. 많은 독창성을 지닌 사람들이 관습과 전통 때문에 사장되는 천재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이다.
 
 
* 천재라는 말 자체 속에는 이미 그들이 다른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개성이 강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사회가 자신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개성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몇 가지 정형화된 표본들은 천재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주 심한 억압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거기에 적응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_p.153
 
 
사회가 만들어 놓은 표본 때문에 억압을 느끼는 천재들로부터 사회는 유익을 얻을 수 없다. 결국 계속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자유론>은 어떤 권력에 대해서든, 개인의 자유는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가지 사례와 반론 등을 통해 제시하고 있었다. 여기부터는 조금 책의 중심 내용에서 샐 수 있지만, 나는 이 책이 ‘국가에 대한 개인의 자유’와 같은 정치적인 부문 말고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근육의 힘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힘도 오직 사용할 때에만 커진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것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것을 믿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한다는 이유로 그 일을 한다면,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능력들은 전혀 훈련될 수 없다. _p.140
 
* 어떤 사람의 욕망과 감정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력하고 더 다양하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질을 더 풍부하게 지니고 있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나쁜 짓을 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더 많은 좋은 일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강한 충동은 활력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_p.142
 
* 지금은 인간의 본성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개개인의 충동과 선호가 지나치게 많고 활발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도리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_ p.144
 
 
사회가 복잡해지고 그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다원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고 다수에 억눌려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동양 문화권이라서인지, 아니면 그곳에 살고 있는 ‘나’만 심한 건지 모르겠다. 의사를 표현할 때 주변의 눈치를 심하게 보거나 어떤 판단에 대해 일반적인 견해를 먼저 생각할 때가 많다.
 
이처럼 글을 읽다가 나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자유를 억눌러 왔던 상황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계속 그런 상태라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이는 책에서 경계하는 모습이 아니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자보, 시위, 선거 등 다양한 형태로 자유를 표현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하면, 나처럼 자유롭게 의사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상황 때문에 통제 받아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종종 보았다. 다양한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라지만, 동시에 그 개성이 모두 비슷한 길로 걷고 있는 사회 일면을 보면 또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속에서 함께 걷고 있는 나로서는, <자유론>이 주는 자유의 의미가 지금 사회에 더욱 곱씹어 봐야 할 중요한 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개인적으로는 19세기 중반에 정리한 이 작품이 지금의 사회 문제도 적용된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조금 한심한 소리일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 작품을 필두로 다른 고전들도 차근차근 읽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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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진도 좋고
하라다 마하 지음, 김완 옮김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오늘은 일진도 좋고_하라다 마하
출판사_인디페이퍼



 



<오늘은 일진도 좋고>는 평범한 직장인인 코토하가 스피치라이터(연설기획자)인 쿠온 쿠미를 만나 스피치 라이터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다.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하는 듯 하지만, 그녀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연설문이 주는 힘과 감동, 그리고 정치적 관심과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까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 준 흥미로운 글이었다.


코토하는 소꿉친구이자 자신의 짝사랑 상대인 아츠시의 결혼식에 갔다. 슬픈 마음을 뒤로하고 소중한 친구의 결혼식에 갔던 코토하. 그런데 축사를 듣던 중 졸음사(?)할 일이 발생한다. 너무나 지루한 축사. 결국 코토하는 스프에 얼굴을 박는다. 결국 온 몸에 콩소메 스프 냄새를 폴폴 풍기며 웃음소리를 뒤로하며 화장실로 직행했던 코토하는 낙담하는데, 그런 그녀의 옆에서 자신을 보며 큭큭거리는 한 여성을 발견한다.

그녀의 이름은 쿠온 쿠미. 프로 스피치 라이터다. 물론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식이 끝나고 난 후였지만. 화장실에서 스프를 닦고 나온 코토하에게 쿠미는 그녀가 듣던 지루한 축사에 대해 통쾌하게 비평을 던진다. 그 시점부터 코토하의 흥미를 당기는데, 이어서 아츠시의 결혼식에서 감동적인 축사를 보여준다.

그 축사 이후, 문득 아츠시의 아버지이자 전 민중당 국회의원이었던 이마가와 아츠로의 마지막 대표질문을 떠올린다. 결국 코토하는 아츠시에게 그녀에 대해 물어보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아츠로의 마지막 대표질문을 작성한 스피치라이터였다.

한편, 코토하는 회사 동료인 치카로부터 결혼 선물로 코토하의 축사를 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대형 무역상사 임원 딸의 결혼식. 정재계 인사가 모이는 앞에서 축사를 해야 한다는 일에 깜깜해진 코토하는 결국 쿠미를 찾게 된다.

그렇게 쿠미와 재회한 뒤, 그녀로부터 '스피치 라이터'의 자질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코토하. 축사를 목적으로 스피치 라이터 팁을 배우면서 점차 스피치 라이터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책을 읽기 전까지 스피치 라이터(연설 기획자)라는 직업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연설하는 사람들이 직접 쓰는 줄로만 알았지, 누군가 체계적으로 작성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점을 알게 되어 신선했던 맛도 있었는데, 스피치 라이팅 과정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감동까지 준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 글썽였는데 그 중에서 조금 울었던 부분은 치사의 결혼식 축사와 아츠시의 마지막 유이가마하마 연설 부분이었다. 치사의 결혼식 축하에서는 소중한 친구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그 우정이 느껴져서 울컥했다. 동시에 친구들이 결혼하는 모습을 상상했더니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아츠시의 마지막 연설은 여러가지 의미로 감동적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남편으로서 슬픔, 잘못된 의료 서비스 때문에 피해를 본 국민의 한 명으로서 분노. 자신의 슬픔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이 담긴 연설이구나, 그 생각이 들어선지 울컥했던 것 같다.

이야기는 스피치 라이터라는 독특한 직업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무난한 일상 일화를 다루다가 후반부를 달리면서 분위기가 한번 고조된다. 초반부 결혼식 축사나 사내 브랜드 마케팅, 사내 연설 등등 일상적인 상황이나 업무적인 스피치를 다루다 후반부로 넘어가면 아츠시의 출마 선언과 정권 교체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실은 요 책, 정말 앞부분은 살짝 코믹하기도하고, (내겐) 신선하고, 흥미롭고, 감동적이고 생각 거리도 많이 안겨 준!! 그런 알찬 책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읽다덮다를 해서 힘들었다. 바로 '정치'와 관련된 소재 때문이었다(그 정도로 쥐약일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그 장벽을 넘고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 왔다. 영화 <변호사>와 같은 어쩌면 이상적인, 진정 국민을 위하는 정견을 지닌 사람들이 나오다보니, 연설 내용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또, 정치에 무관심했던 날들을 떠올리던 주인공들이 결의에 차 연설에 몰두하는 이야기를 보면 함께 가슴 벅차오르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 "일본은 오랫동안 유권자가 정치에 무관심했으니까요. 선거 같은 거 해봤자 어차피 진전당이 여당인 건 마찬가지고, 결국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덮어놓고 생각했던 거에요. 저도 그랬지만요."_p.298
 
* "총리님, 이번에야말로 들어주십시오. 국민을 대표하는 민중당, 우리가 지향하는 정치가 대체 어떤 것인지를. 그것은 .......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과 『똑바로』 마주하는 정치입니다."_p.205
 
자신의 한 표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포기했던 유권자, 이 나라를 바꾸는 데에 관심도, 흥미도, 정열도 가지지 않았던 국민. 이 민중을 단숨에 움직이는 것이다.
선거라는 거, 좀 재미있겠는데?
우리가 움직이면 세상이 변할지도 몰라. _ p.294


무튼 확실히 의회 해산과 함께 야당과 여당의 정권교체를 놓고 벌이는 선거, 그런 드라마틱한 전개가 들어있다보니 드라마로 만들어도 참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여기에 중간중간 나오는 감동적인 말들이 한가득 했는데. 코토하가 본업도 그만두고 스피치 라이터의 길을 가겠노라고 결심을 굳혔을 때. 할머니가 인간으로써 성장할 수 있기에 찬성했다는 말이 공감이 갔다.
 


* 우선 마음에 평정을 가져오고, 떠올린다. 이 스피치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_p.76

* 스피치를 잘했고 못했고는 스스로 평가하는 게 아니야. 청중이 결정하는 거지.
...... 스스로 아무리 잘했다고 생각해도 청중의 마음에 울리는 것이 없었다면 의미가 없잖아?_p.99

* 묵묵히 듣는다는 행위는 결코 상대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뜻이에요. 나이를 먹으면 이야기가 집요해지고,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잖아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해도 다들 싫어하죠. 원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_p.146

* 듣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죠. 하지만 그만큼 말을 하기 위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_p.148


책으면서 그간의 말하기 습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연설의 범위와 목적, 청중의 특성, 그 책임감. 그런 여러가지 문제를 넘어서서, 일상이든 공적인 상황이든 내가 뱉는 말의 내용과, 말할 때의 태도, 고르는 언어. 이런 것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정말 어렸고, 창피하고, 부족하고..... 다 주워담고 싶었다. 물론 지금도 변한 것은 없지만, 그만큼 말이 주는 영향력을 알게 되니 조금씩 고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감동과 재미 모두 잡았던 <오늘은 일진도 좋고>. 소설 속 인물들처럼 연설이 주는 힘과 감동을 알고, 언젠가는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끝으로 가장 감동받았던 말로 마무리 한다. 어쩌면 코토하의 인연들을 연결해 준 사람이자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이마가와 아츠로. 바로 아츠시의 아버지이자 전 국회의원, 그리고 쿠미의 인생 스승인 그의 말 중 하나다.

 


* 3시간 후의 너, 눈물이 그쳤다. 24시간 후의 너, 눈물은 말랐다. 이틀 후의 너, 고개를 들고 있다. 사흘 후의 너, 걸어 나가고 있다.

어떠니?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지? 왜냐하면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거든.

멈추지 않는 눈물은 없단다. 마르지 않는 눈물도 없단다. 얼굴은 아래만을 보고 있을 수도 없어. 걸어나가기 위해 다리가 있는 거야.

...... 그리고 마음은 너 자신이 길러 나가는 거야. 넉넉하게, 따뜻하게, 정의감 넘치는 마음으로 길러나가렴. _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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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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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_우지현
출판사_위즈덤하우스



 




<혼자 있기 좋은 방>은 우리들의 '방'에 대한 이야기다. 방, 그곳은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나의 마지막 피난처이자 유일한 안식처다. 그곳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기도 했지만, 숱한 고민에 잠 못 들기도 했을 것이다. 이 책은 방을 통해 그런 삶의 모습들을 반추하고,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책을 읽다보면 그간 방치했거나 잊고 지냈던 나의 그 소중한 공간을 돌아보게 된다. 나의 인생이 스며든 그 공간을 돌아 보면서, 홀로 숨죽이며 풀어냈던 아픔을 떠올리고 그 실체를 마주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힘과 용기을 얻을 수 있었다. 



*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숨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사는 게 힘겨워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을 때,
지탱해온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세상과의 불화가 이어질 때,
만사가 귀찮고 무용하게 느껴질 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히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각자의 공간으로 도피하고, 저마다의 장소로 은둔한다.
세상의 유일한 안식처, 아무도 없는 내 방으로.
-p.28 <세상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할 때> 중


평소에 '방'이라는 공간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살까. 늘 그 공간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아닐테지만. 힘든 일이 있거나 어떤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편히 쉬고 싶을 때, 나는 방을 찾았다.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소소한 취미 생활을 즐기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외부에서 받은 상처를 홀로 풀기 위해서 일때도 있었다. 그저 남 신경스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방을 찾았다.

마찬가지로 역사상 수많은 화가에게도 방은 그런 의미였다. 사적인 은신처이자 안전한 도피처, 그리고 이상적인 휴식처. 혹은 그 이상의 의미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방은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자 그들의 인생을 담은 삶의 흔적 자체였다. 에세이 속에 담긴 명화 속 무수한 방들이 그걸 보여준다.


방에 홀로 지내는 여성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구현해 냄으로써 방에 담긴 의미를 표현하고자 고민했던 마르셀 리더, 방을 심리적 공간으로 확장해 방에 있는 인물의 내면적 요소까지 담아낸 에드워드 호퍼. 이처럼 방에 담긴 의미를 연구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화가가 있는가 하면, 방을 미술관으로 바꾼 귀스타브 모로와 같은 화가도 있었다.
 


 



읽다보면 '방'이라는 공간이 지닌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방이라는 공간에 씌워진 '은신처' 혹은 '피난처', '쉼터'와 같은 프레임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화가의 손을 거쳐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표출되고, 개조되는 과정을 보며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그간 얼마나 방을 협소하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다. 

여기서 말하는 '방'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집, 그곳에 있는 방만을 '방'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사적인 시간이 담겨있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든 물리적 공간들이 우리의 '방'이 된다. 우리의 내면이 담긴, 시간과 사고가 고스란히 반영된 그곳 모두가 우리의 방이다.

미술관이 될 수도 있고, 카페가 될 수도 있고, 공원이 될 수도 있다. 세상 풍파에 지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찾게되는 그곳, 지친 영혼의 쉼터. 고민끝에 방황하다 우연히 도달한 그곳이, 오롯이 나 혼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나의 방이 될 수도 있다.


* 도망가기 좋은 밤이다.
훌쩍 떠나는 것으로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 밤.
그래서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밤.
살다 보면 그대로 없어지고 싶은 날이 있다.
(중략)
그러고 보면 카페야 말로 혼자 있기에 알맞은 장소다.
나라는 사람에서부터 다른 누군가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르기까지.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독립이 존재한다. ...... 카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켜봄으로써 모든 것을 품는다. 이것이 카페가 주는 푸짐하면서도 든든한 위로다.
-p.94~102 <혼자를 선택한 시간>
   

실은 이 장을 읽을 때, 다시 앞장의 '세상과의 거리두기' 부분도 떠올랐다. 홀로 있는 시간은 중요하다. 그런데 가끔 집 안의 내 방은 '가족에서 위치'라는 페르소나가 남아 있어서 인지, 온전히 '내' 생각만 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마지막 보루로 카페로 도망칠 때가 있다. 

카페는 참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개방되고 제한된 공간이지만 동시에 독립적으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어느 곳이든 '나'의 방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공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 허세성 짙은 생각일 수 있지만, '커피하우스 이펙트'라는 말도 있으니. 우리의 '혼자 있기 좋은 방'을 한정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안성맞춤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세상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그건 소외나 단절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자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마음을 관찰하고 일상을 재조직하며 삶을 재생한다.

......혼자를 택한다는 건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겠다는 용기이다.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내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각오이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p.30~31 <세상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할 때>


우리는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홀로 지낸다는 것은 이기적이거나 사회성 없다는 것이 아니다. 혼자 있다보면 외롭고, 처량하고, 한심해보여서 우울한 사고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야 말로 비로소 내가 그간 놓쳤던 것, 잘못했던 것, 상처받았던 것들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숨겨두고 싶었던 흑역사를 들춰내는 과정 자체도 무지 힘들다. 하지만 혼자 있으면 조금은 폭력적이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흑역사가 떠오를 때가 많다. 억지로 열어 젖힘을 당한달까. 처음에는 부정하고 싶고, 그걸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그 과정이 있기에 자신의 아픔과 상처의 뿌리를 마주하고, 그것들을 치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중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저마다의 방에서 은밀하고 위대하게 이루어진다.


 이 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가 풀어가는 방에 대한 담론은 다채롭고 흥미롭다.

* 휴식은 단지 노동의 부재가 아니다. ......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지혜, 과감히 내려놓는 용기, 무리하지 않는 자세, 여유를 즐기는 기술 등이 요구된다. 쉬운 것 같지만 절대로 쉽지 않은 휴식, 잘 쉰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이다.

...... 쉬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게으름도, 뒤처짐도, 무책임도, 시간 낭비도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휴식을 허락해야 한다. 삶에 있어 휴식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p.131 <마음이 소생하는 장소>

*나는 우리 모두 꿈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할 마음은 없다. 그건 폭력적인 것이다. 세상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머릿수만큼 각각의 사연과 처지가 있다. 상황도 환경도 여건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같은 꿈을 꾸더라도 같은 경우란 없다.
다만 꿈을 꾸고 있는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p.223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휴식, 꿈, 불안에 떨던 방에서의 기억, 평범한 일상에 대한 소망 등. 혼자 고민했을 법한 것들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도 담겨 있어서 공감하며 읽는 재미와 감동이 솔솔했다.


* 설령 언젠가 그 사람이 사라진다 해도, 훗날 그들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때 서로가 나눈 생각과 그 순간의 말들과 그날의 공기는 영원히 내 곁에서 머문다. 그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떠올릴 수 있다면, 만지지 않아도 느껴진다면, 그건 존재하는 것과 다름 없다.
- p.177 <일상으로의 초대> 


모든 공간에는 시간이 스며들고 우리는 그 시간을 기억한다. 가끔 그곳에 놓인 물건이나 다양한 흔적을 통해 잊고 지내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때론 공간에 응축된 감정과 사념들을 막연하게 떠올리며 공간 자체가 주는 위로에 젖기도 한다. 그렇게 공간의 힘이란 이렇게 엄청난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방에 대한 다양한 담론과 그와 관련된 명화에 대한 해석, 그리고 작품 속에 반영된 화가의 작품 세계관과 인생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혼자 있기 좋은 방>.

예술작품과 함께 담겨서인지,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문체도 왠지 감성적으로 느껴졌는데 꼭 새벽에 쓴 일기를 보는 것 같아 아련하고, 몇몇 부분들은 잠 못 들던 밤, 절절하게 내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때의 일기 같아 코끝이 찡하기도 했다. 

그림 감상을 좋아하고, 에세이를 잘 읽는 분들에게는 바로 추천! 마음에 여유가 없는 분들, 힐링이 필요하고, 혼자 조용히 숨고 싶은 분들에게 조심스레 권해드리고 싶다. 이 책을 읽는 공간이 저마다의 '혼자 있기 좋은 방'이 되길. 혹은 그 방을 찾을 길잡이가 되길 바라면서.


 


(* 여기부턴 사족이 많이 붙은 감이 있어요. ;)

한때 집에 있는 내 방조차도 숨막힐 때가 있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마지막 피난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나의 위치를 상기시키는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답답함에 가족 앞에 숨겼던 슬픔도 있었고, 들키고 싶지 않았던 소심하고 추악한 모습 때문에 베란다에서 숨죽여 울던 날도 더러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방'이라는 공간의 인식이 중요할텐데. 혼자 있기 좋은 방이란 게 집에 딸린 방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전혀 다른 공간일 수도 있을텐데. 책을 읽다가 생각이 정리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은 너무나도 잘 들어맞았다.

책을 읽고 난 뒤. 이제 알게 되었다. <혼자 있기 좋은 방>이 꼭 우리 집에 있는 방 만이 아닌 것임을. 어디든 홀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라면 나의 안식처가 될 수 있음을. 그 생각을 하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불편했던 방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행복한 기억만 있으면 당연히 좋겠지. 물론 그런 기억들이 삶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겠지만, 인생의 시련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디딤판은 아픈 기억을 통해서 견고하게 굳어진 것들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지금 당장 보이는 나의 방들이 아픈 기억만 가지고 있다고 좌절하지 말고, 그 기억이, 그 시간이 스며든 '방'이 있기에 지금 내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될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본 서평은 위즈덤하우스에서 진행한 서평단을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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