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진도 좋고
하라다 마하 지음, 김완 옮김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오늘은 일진도 좋고_하라다 마하
출판사_인디페이퍼



 



<오늘은 일진도 좋고>는 평범한 직장인인 코토하가 스피치라이터(연설기획자)인 쿠온 쿠미를 만나 스피치 라이터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다.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하는 듯 하지만, 그녀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연설문이 주는 힘과 감동, 그리고 정치적 관심과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까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 준 흥미로운 글이었다.


코토하는 소꿉친구이자 자신의 짝사랑 상대인 아츠시의 결혼식에 갔다. 슬픈 마음을 뒤로하고 소중한 친구의 결혼식에 갔던 코토하. 그런데 축사를 듣던 중 졸음사(?)할 일이 발생한다. 너무나 지루한 축사. 결국 코토하는 스프에 얼굴을 박는다. 결국 온 몸에 콩소메 스프 냄새를 폴폴 풍기며 웃음소리를 뒤로하며 화장실로 직행했던 코토하는 낙담하는데, 그런 그녀의 옆에서 자신을 보며 큭큭거리는 한 여성을 발견한다.

그녀의 이름은 쿠온 쿠미. 프로 스피치 라이터다. 물론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식이 끝나고 난 후였지만. 화장실에서 스프를 닦고 나온 코토하에게 쿠미는 그녀가 듣던 지루한 축사에 대해 통쾌하게 비평을 던진다. 그 시점부터 코토하의 흥미를 당기는데, 이어서 아츠시의 결혼식에서 감동적인 축사를 보여준다.

그 축사 이후, 문득 아츠시의 아버지이자 전 민중당 국회의원이었던 이마가와 아츠로의 마지막 대표질문을 떠올린다. 결국 코토하는 아츠시에게 그녀에 대해 물어보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아츠로의 마지막 대표질문을 작성한 스피치라이터였다.

한편, 코토하는 회사 동료인 치카로부터 결혼 선물로 코토하의 축사를 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대형 무역상사 임원 딸의 결혼식. 정재계 인사가 모이는 앞에서 축사를 해야 한다는 일에 깜깜해진 코토하는 결국 쿠미를 찾게 된다.

그렇게 쿠미와 재회한 뒤, 그녀로부터 '스피치 라이터'의 자질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코토하. 축사를 목적으로 스피치 라이터 팁을 배우면서 점차 스피치 라이터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책을 읽기 전까지 스피치 라이터(연설 기획자)라는 직업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연설하는 사람들이 직접 쓰는 줄로만 알았지, 누군가 체계적으로 작성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점을 알게 되어 신선했던 맛도 있었는데, 스피치 라이팅 과정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감동까지 준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 글썽였는데 그 중에서 조금 울었던 부분은 치사의 결혼식 축사와 아츠시의 마지막 유이가마하마 연설 부분이었다. 치사의 결혼식 축하에서는 소중한 친구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그 우정이 느껴져서 울컥했다. 동시에 친구들이 결혼하는 모습을 상상했더니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아츠시의 마지막 연설은 여러가지 의미로 감동적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남편으로서 슬픔, 잘못된 의료 서비스 때문에 피해를 본 국민의 한 명으로서 분노. 자신의 슬픔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이 담긴 연설이구나, 그 생각이 들어선지 울컥했던 것 같다.

이야기는 스피치 라이터라는 독특한 직업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무난한 일상 일화를 다루다가 후반부를 달리면서 분위기가 한번 고조된다. 초반부 결혼식 축사나 사내 브랜드 마케팅, 사내 연설 등등 일상적인 상황이나 업무적인 스피치를 다루다 후반부로 넘어가면 아츠시의 출마 선언과 정권 교체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실은 요 책, 정말 앞부분은 살짝 코믹하기도하고, (내겐) 신선하고, 흥미롭고, 감동적이고 생각 거리도 많이 안겨 준!! 그런 알찬 책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읽다덮다를 해서 힘들었다. 바로 '정치'와 관련된 소재 때문이었다(그 정도로 쥐약일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그 장벽을 넘고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 왔다. 영화 <변호사>와 같은 어쩌면 이상적인, 진정 국민을 위하는 정견을 지닌 사람들이 나오다보니, 연설 내용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또, 정치에 무관심했던 날들을 떠올리던 주인공들이 결의에 차 연설에 몰두하는 이야기를 보면 함께 가슴 벅차오르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 "일본은 오랫동안 유권자가 정치에 무관심했으니까요. 선거 같은 거 해봤자 어차피 진전당이 여당인 건 마찬가지고, 결국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덮어놓고 생각했던 거에요. 저도 그랬지만요."_p.298
 
* "총리님, 이번에야말로 들어주십시오. 국민을 대표하는 민중당, 우리가 지향하는 정치가 대체 어떤 것인지를. 그것은 .......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과 『똑바로』 마주하는 정치입니다."_p.205
 
자신의 한 표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포기했던 유권자, 이 나라를 바꾸는 데에 관심도, 흥미도, 정열도 가지지 않았던 국민. 이 민중을 단숨에 움직이는 것이다.
선거라는 거, 좀 재미있겠는데?
우리가 움직이면 세상이 변할지도 몰라. _ p.294


무튼 확실히 의회 해산과 함께 야당과 여당의 정권교체를 놓고 벌이는 선거, 그런 드라마틱한 전개가 들어있다보니 드라마로 만들어도 참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여기에 중간중간 나오는 감동적인 말들이 한가득 했는데. 코토하가 본업도 그만두고 스피치 라이터의 길을 가겠노라고 결심을 굳혔을 때. 할머니가 인간으로써 성장할 수 있기에 찬성했다는 말이 공감이 갔다.
 


* 우선 마음에 평정을 가져오고, 떠올린다. 이 스피치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_p.76

* 스피치를 잘했고 못했고는 스스로 평가하는 게 아니야. 청중이 결정하는 거지.
...... 스스로 아무리 잘했다고 생각해도 청중의 마음에 울리는 것이 없었다면 의미가 없잖아?_p.99

* 묵묵히 듣는다는 행위는 결코 상대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뜻이에요. 나이를 먹으면 이야기가 집요해지고,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잖아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해도 다들 싫어하죠. 원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_p.146

* 듣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죠. 하지만 그만큼 말을 하기 위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_p.148


책으면서 그간의 말하기 습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연설의 범위와 목적, 청중의 특성, 그 책임감. 그런 여러가지 문제를 넘어서서, 일상이든 공적인 상황이든 내가 뱉는 말의 내용과, 말할 때의 태도, 고르는 언어. 이런 것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정말 어렸고, 창피하고, 부족하고..... 다 주워담고 싶었다. 물론 지금도 변한 것은 없지만, 그만큼 말이 주는 영향력을 알게 되니 조금씩 고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감동과 재미 모두 잡았던 <오늘은 일진도 좋고>. 소설 속 인물들처럼 연설이 주는 힘과 감동을 알고, 언젠가는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끝으로 가장 감동받았던 말로 마무리 한다. 어쩌면 코토하의 인연들을 연결해 준 사람이자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이마가와 아츠로. 바로 아츠시의 아버지이자 전 국회의원, 그리고 쿠미의 인생 스승인 그의 말 중 하나다.

 


* 3시간 후의 너, 눈물이 그쳤다. 24시간 후의 너, 눈물은 말랐다. 이틀 후의 너, 고개를 들고 있다. 사흘 후의 너, 걸어 나가고 있다.

어떠니?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지? 왜냐하면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거든.

멈추지 않는 눈물은 없단다. 마르지 않는 눈물도 없단다. 얼굴은 아래만을 보고 있을 수도 없어. 걸어나가기 위해 다리가 있는 거야.

...... 그리고 마음은 너 자신이 길러 나가는 거야. 넉넉하게, 따뜻하게, 정의감 넘치는 마음으로 길러나가렴. _P.3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