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좋은 방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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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_우지현
출판사_위즈덤하우스



 




<혼자 있기 좋은 방>은 우리들의 '방'에 대한 이야기다. 방, 그곳은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나의 마지막 피난처이자 유일한 안식처다. 그곳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기도 했지만, 숱한 고민에 잠 못 들기도 했을 것이다. 이 책은 방을 통해 그런 삶의 모습들을 반추하고,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책을 읽다보면 그간 방치했거나 잊고 지냈던 나의 그 소중한 공간을 돌아보게 된다. 나의 인생이 스며든 그 공간을 돌아 보면서, 홀로 숨죽이며 풀어냈던 아픔을 떠올리고 그 실체를 마주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힘과 용기을 얻을 수 있었다. 



*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숨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사는 게 힘겨워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을 때,
지탱해온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세상과의 불화가 이어질 때,
만사가 귀찮고 무용하게 느껴질 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히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각자의 공간으로 도피하고, 저마다의 장소로 은둔한다.
세상의 유일한 안식처, 아무도 없는 내 방으로.
-p.28 <세상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할 때> 중


평소에 '방'이라는 공간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살까. 늘 그 공간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아닐테지만. 힘든 일이 있거나 어떤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편히 쉬고 싶을 때, 나는 방을 찾았다.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소소한 취미 생활을 즐기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외부에서 받은 상처를 홀로 풀기 위해서 일때도 있었다. 그저 남 신경스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방을 찾았다.

마찬가지로 역사상 수많은 화가에게도 방은 그런 의미였다. 사적인 은신처이자 안전한 도피처, 그리고 이상적인 휴식처. 혹은 그 이상의 의미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방은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자 그들의 인생을 담은 삶의 흔적 자체였다. 에세이 속에 담긴 명화 속 무수한 방들이 그걸 보여준다.


방에 홀로 지내는 여성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구현해 냄으로써 방에 담긴 의미를 표현하고자 고민했던 마르셀 리더, 방을 심리적 공간으로 확장해 방에 있는 인물의 내면적 요소까지 담아낸 에드워드 호퍼. 이처럼 방에 담긴 의미를 연구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화가가 있는가 하면, 방을 미술관으로 바꾼 귀스타브 모로와 같은 화가도 있었다.
 


 



읽다보면 '방'이라는 공간이 지닌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방이라는 공간에 씌워진 '은신처' 혹은 '피난처', '쉼터'와 같은 프레임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화가의 손을 거쳐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표출되고, 개조되는 과정을 보며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그간 얼마나 방을 협소하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다. 

여기서 말하는 '방'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집, 그곳에 있는 방만을 '방'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사적인 시간이 담겨있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든 물리적 공간들이 우리의 '방'이 된다. 우리의 내면이 담긴, 시간과 사고가 고스란히 반영된 그곳 모두가 우리의 방이다.

미술관이 될 수도 있고, 카페가 될 수도 있고, 공원이 될 수도 있다. 세상 풍파에 지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찾게되는 그곳, 지친 영혼의 쉼터. 고민끝에 방황하다 우연히 도달한 그곳이, 오롯이 나 혼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나의 방이 될 수도 있다.


* 도망가기 좋은 밤이다.
훌쩍 떠나는 것으로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 밤.
그래서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밤.
살다 보면 그대로 없어지고 싶은 날이 있다.
(중략)
그러고 보면 카페야 말로 혼자 있기에 알맞은 장소다.
나라는 사람에서부터 다른 누군가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르기까지.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독립이 존재한다. ...... 카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켜봄으로써 모든 것을 품는다. 이것이 카페가 주는 푸짐하면서도 든든한 위로다.
-p.94~102 <혼자를 선택한 시간>
   

실은 이 장을 읽을 때, 다시 앞장의 '세상과의 거리두기' 부분도 떠올랐다. 홀로 있는 시간은 중요하다. 그런데 가끔 집 안의 내 방은 '가족에서 위치'라는 페르소나가 남아 있어서 인지, 온전히 '내' 생각만 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마지막 보루로 카페로 도망칠 때가 있다. 

카페는 참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개방되고 제한된 공간이지만 동시에 독립적으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어느 곳이든 '나'의 방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공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 허세성 짙은 생각일 수 있지만, '커피하우스 이펙트'라는 말도 있으니. 우리의 '혼자 있기 좋은 방'을 한정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안성맞춤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세상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그건 소외나 단절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자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마음을 관찰하고 일상을 재조직하며 삶을 재생한다.

......혼자를 택한다는 건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겠다는 용기이다.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내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각오이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p.30~31 <세상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할 때>


우리는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홀로 지낸다는 것은 이기적이거나 사회성 없다는 것이 아니다. 혼자 있다보면 외롭고, 처량하고, 한심해보여서 우울한 사고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야 말로 비로소 내가 그간 놓쳤던 것, 잘못했던 것, 상처받았던 것들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숨겨두고 싶었던 흑역사를 들춰내는 과정 자체도 무지 힘들다. 하지만 혼자 있으면 조금은 폭력적이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흑역사가 떠오를 때가 많다. 억지로 열어 젖힘을 당한달까. 처음에는 부정하고 싶고, 그걸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그 과정이 있기에 자신의 아픔과 상처의 뿌리를 마주하고, 그것들을 치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중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저마다의 방에서 은밀하고 위대하게 이루어진다.


 이 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가 풀어가는 방에 대한 담론은 다채롭고 흥미롭다.

* 휴식은 단지 노동의 부재가 아니다. ......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지혜, 과감히 내려놓는 용기, 무리하지 않는 자세, 여유를 즐기는 기술 등이 요구된다. 쉬운 것 같지만 절대로 쉽지 않은 휴식, 잘 쉰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이다.

...... 쉬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게으름도, 뒤처짐도, 무책임도, 시간 낭비도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휴식을 허락해야 한다. 삶에 있어 휴식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p.131 <마음이 소생하는 장소>

*나는 우리 모두 꿈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할 마음은 없다. 그건 폭력적인 것이다. 세상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머릿수만큼 각각의 사연과 처지가 있다. 상황도 환경도 여건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같은 꿈을 꾸더라도 같은 경우란 없다.
다만 꿈을 꾸고 있는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p.223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휴식, 꿈, 불안에 떨던 방에서의 기억, 평범한 일상에 대한 소망 등. 혼자 고민했을 법한 것들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도 담겨 있어서 공감하며 읽는 재미와 감동이 솔솔했다.


* 설령 언젠가 그 사람이 사라진다 해도, 훗날 그들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때 서로가 나눈 생각과 그 순간의 말들과 그날의 공기는 영원히 내 곁에서 머문다. 그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떠올릴 수 있다면, 만지지 않아도 느껴진다면, 그건 존재하는 것과 다름 없다.
- p.177 <일상으로의 초대> 


모든 공간에는 시간이 스며들고 우리는 그 시간을 기억한다. 가끔 그곳에 놓인 물건이나 다양한 흔적을 통해 잊고 지내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때론 공간에 응축된 감정과 사념들을 막연하게 떠올리며 공간 자체가 주는 위로에 젖기도 한다. 그렇게 공간의 힘이란 이렇게 엄청난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방에 대한 다양한 담론과 그와 관련된 명화에 대한 해석, 그리고 작품 속에 반영된 화가의 작품 세계관과 인생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혼자 있기 좋은 방>.

예술작품과 함께 담겨서인지,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문체도 왠지 감성적으로 느껴졌는데 꼭 새벽에 쓴 일기를 보는 것 같아 아련하고, 몇몇 부분들은 잠 못 들던 밤, 절절하게 내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때의 일기 같아 코끝이 찡하기도 했다. 

그림 감상을 좋아하고, 에세이를 잘 읽는 분들에게는 바로 추천! 마음에 여유가 없는 분들, 힐링이 필요하고, 혼자 조용히 숨고 싶은 분들에게 조심스레 권해드리고 싶다. 이 책을 읽는 공간이 저마다의 '혼자 있기 좋은 방'이 되길. 혹은 그 방을 찾을 길잡이가 되길 바라면서.


 


(* 여기부턴 사족이 많이 붙은 감이 있어요. ;)

한때 집에 있는 내 방조차도 숨막힐 때가 있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마지막 피난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나의 위치를 상기시키는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답답함에 가족 앞에 숨겼던 슬픔도 있었고, 들키고 싶지 않았던 소심하고 추악한 모습 때문에 베란다에서 숨죽여 울던 날도 더러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방'이라는 공간의 인식이 중요할텐데. 혼자 있기 좋은 방이란 게 집에 딸린 방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전혀 다른 공간일 수도 있을텐데. 책을 읽다가 생각이 정리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은 너무나도 잘 들어맞았다.

책을 읽고 난 뒤. 이제 알게 되었다. <혼자 있기 좋은 방>이 꼭 우리 집에 있는 방 만이 아닌 것임을. 어디든 홀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라면 나의 안식처가 될 수 있음을. 그 생각을 하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불편했던 방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행복한 기억만 있으면 당연히 좋겠지. 물론 그런 기억들이 삶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겠지만, 인생의 시련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디딤판은 아픈 기억을 통해서 견고하게 굳어진 것들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지금 당장 보이는 나의 방들이 아픈 기억만 가지고 있다고 좌절하지 말고, 그 기억이, 그 시간이 스며든 '방'이 있기에 지금 내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될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본 서평은 위즈덤하우스에서 진행한 서평단을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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