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갱
반시연 지음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무저갱_반시연 

 

 

 

“나는 괴물이 아니야. 가끔 괴물로 변할 뿐이지.”

 

 

복국집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바닥 인생을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노력도 재능이 있는 놈이나 하는 일. 가까스로 이름없는 전문대에 들어갔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그저 ‘안쓰러운 놈’일 뿐. 점차 좁아지는 설 자리에 결국 복국집 삼촌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복국집의 폭력사건에 휘말리면서 내면에 잠재되어있던 폭력성을 깨우고 만다. 

 

 

푹. 푹. 웃으면서 죽였다.

......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순식간에 매료되어버린 그 느낌은.

......

 

드디어 내가 잘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았어. 나는 타고났다.

 

때리고 싶다.

부수고 싶다.

자꾸 속삭이지 마, 간지러워.

 

상대를 찾아.

목덜미를 물어뜯는 거야.

흐물흐물해지기 전에 꽂아 넣어.

 

하지만 누구를 상대해야 하지? -p.83~85

 

죽일 사람을 찾던 ‘나’는 함께 일하던 추영이 청첩장을 받은 이야기를 듣고 첫 번째 희생양을 정한다. 추영을 사회에 매장시켜버린 리벤지 포르노 영상을 유포했던 그녀의 전 남친. 그리고 그런 남자와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보낸 옛 친구라는 여자였다.

 

유명무실한 법, 인간을 지키고 있던 규율. 그 안에서 인간 취급 받지 못하고 살아온 ‘나’는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법을 등지고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응징하는데 자신의 재능, 폭력이라는 정의를 행사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희대의 살인마 노남용이 출소까지 21일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를 두고 ‘차장’이란 사내는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객의 ‘보호’를 목적으로 고객에게 위해를 가한 자들을 처단하는 회사.

   

“네가 지은 죄를 말해.”

 

그는 그곳에서 ‘공포’를 무기로 활동하는 남자다.

 

 

복국집 삼촌과 차장.

어쩌면 전혀 접점이 없던 두 사내. 그들이 노남용이라는 자를 매개로 마주하게 되면서 평범하게 흘러가던 두 사람의 일상이 또 한번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데........

 

 

**

   

프롤로그부터 강렬했던 글이었다. 인간의 끝없는 어두운 내면, 절망, 광기, 욕망, 분노, 폭력, 가학성, 쾌락. 이런 것들에 대한 심리 묘사가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정의를 구현하고 고객을 보호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저자가 던지는 통렬한 메시지가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책표지 뒷면에 또렷이 보이는, 

 제대로 된 형벌이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를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바로 그 메시지 말이다.

 

맨처음 싸움꾼으로 등장하는 ‘나’. 그는 삶에 치여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폭력 사건을 빌미로 자신의 재능(폭력성)에 눈을 뜬 평범하고 불쌍한 사내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열심히 굴러도 그저 노력하는 안쓰러운 사람. 그 주변에는 버젓이 잘 사는 범죄자 때문에 자신을 숨기고 사는 불쌍한 피해자 동료뿐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작품 표현상 행위가 잔혹하게 그려졌지만, 폭력성과 광기에 미쳐가는 그의 모습이 이상하게 납득이 가버리는 글이었다. (물론 폭력은 안 되지만!) 다만, 자신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법, 그 법 더러워서 등지고 차라리 짐승이 되겠노라 선언하는 그의 모습이 표면적으로는 소름을 자아내지만,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서 처연하게 느껴진다.

정말 절망을 맛 본 사람의 내면은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해서 짠하기도 했고, 좌절감에 다 부서버리고 싶었던 한때 나 자신의 어두운 감정을 떠올리게 해서 묘하게 가슴아프기도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꿈도 희망도 없는 캐릭터가 미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던 인상을 주었던 인물이었다.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사냥꾼인 차장이라는 사내가 등장한다. 그는 고객의 보호를 주 사업으로 하는 회사의 직원이다. 그 보호는 고객의 위험 요소 제거로, 고객에게 위해가 되는 짓을 한 상대에게 얼마든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 차장이라는 캐릭터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가 엄청 신사적인 느낌으로 그려진다. 이쯤 되니 오물을 처리하는 청소부 느낌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지 위험했다. 어디까지나 모두 자신이 정한 ‘정의’를 실현하려고 얼마든지 폭력을 행사하는 자인데 말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인물들의 개성에 몰입되고, 행동을 주시하게 된다. 그들의 잔혹한 실력 행사에 ‘윽’하고 놀라고 소름 돋다가도 다음에 벌일 짓(?)이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행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수단은 잘못되었지만 법의 처벌을 피해간 사람들이 그 대상이니까.

 

그러다가 또 이 인간들의 도 넘은 사고 관념에 혀를 내두른다. 정말 제대로 미친놈들이 판을 치는 글이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눈 못 뗄 만큼 재밌지만, 동시에 몇 번이고 머릿속이 피폐해져서 읽다 덮다 했던 글이었다.

다른 의미로 정말 매혹적이고 위험한 글이었다.

 

 

그리고 그 ‘미친놈’의 끝판왕 노남용. 제 멋에 취해 폭력에 잠식 되어가는 복국집 청년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포를 휘두르지만 신사적이고 자기 관리 철저한 멋진 중년의 남자로 그려지는 차장도. 모두 무서웠지만, 노남용은 정말 물건이었다. 정말 이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 캐릭터 때문에 작가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나 말해줄까요. 당신이 그냥 평범한 병신이었다면 이쯤에서 돌려보낼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아니거든요. 당신 그런 거 아니잖아요. 인간 그만뒀잖아요. 사람을 몇이나 죽였는지 비린내가 진동을 해요.

흥분이 돼서 견딜 수가 없어요. 쉽게 끝나지 않을 거고, 저는 당신이 찾아온 게 너무 원망스러우면서 사랑스럽고 그래요.”-p.274~275

 

 

 

가학성이 있지만 동시에 고통을 받으면서 쾌락을 느끼기도 하는 남자. 강간에 살인에, 무수한 범법 행위를 저질렀는데 부자에 나름 엘리트다. 그래서 더 무서운 남자다. <리턴>의 오태석과 김학범이 지금까지 본 캐릭터 중에 제일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인생 또라이 캐릭터를 제대로 만나버렸다. 비틀린 성정에 가학 기술에 지능까지 탑재하니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던 것이다.

 

스포라 말할 수 없지만 뒷부분에 나오는 남용의 술래잡기(?) 정말 읽는 내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중간 중간 나오는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이 흥분된 분위기를 잠시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것 같지만, 이 역시 가만 생각해보면 무섭다. 죽음이라는 안식을 가져다주는 선생님. 사신의 낫을 든 천사 같은 모습이랄까. 그런 기괴한 형상이 떠오르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앞서 형벌 없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면, 이 선생님의 이야기에는 죽음에 대한 저자의 메모가 따라 붙는데. 잔잔하게 죽음에 대해 풀어놓은 메시지가 마음에 남긴 파장이 어마어마했다.

 

 

사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갈망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인간과 죽음 사이에 놓인 고통을 치워준다. 그들이 비굴해지지 않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끔 명예의 경계를 지켜준다. p.75

 

 

이런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달리는 끝은 정말 상상 불가다. 예측불허 반전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이용하는 사람들, 결국 누가 자신의 목표를 이룰 것인가.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무저갱>이었다.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꼭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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