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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평점 :
가장 소중한 것은 함께한 추억_<아서페퍼_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_패드라 패트릭
출판사_다산북스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서페퍼_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는 아내가 죽고 1년 뒤, 아서가 아내의 옷장에서 낯선 팔찌 하나를 발견하고, '참'에 얽힌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가며 아내의 과거를 하나씩 알게 되는, 아서의 유쾌하고 뭉클한 가슴 따뜻해지는 여행기였다.
혼자 사는 삶의 정적은 그가 불평했던 그 어떤 생활 소음보다도 그의 귀를 먹먹하게 했다. -P.11
1년 전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아서는 집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다. 아내와의 추억이 가득한 그 공간에서, 사랑했던 순간들을 반추하며 살고 있었다. 상실감에 잔뜩 젖은 아서를 보며 두 자식은 아내의 유품을 빨리 정리하라고만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나이 예순 아홉.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자기 연민에 빠졌던 것도 잠시, 아내의 유품을 결국 정리하기로 한 그는 아내의 부츠 속에서 낯선 팔찌 하나를 발견한다.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그리고 반지 모양의 여덟 개의 참(charm)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참에 달린 보석에서 신기한 글자와 숫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한번에 알아 볼 수 있는 인도 전화 번호.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내가 인도에 연락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결국 그 번호로 전화를 건 아서는, 자신의 아내를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처음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때부터 홀로 남은 아서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내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에 젖어 있는 모습은 당연히 안쓰러웠고, 거기에 자식을 꾸리고 타국으로 떠나버린 첫째 아들과 힘들다며 아내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았던 첫째 딸은 그를 더 쓸쓸하게 만든다. 전화로 겨우 연락을 하고 있지만, 가족의 해체와 부재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아서의 고독이 더 짙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와중에 그래도 자식들이라고 홀로 집에 틀어박혀 있는 아버지가 걱정된다며, 자식들은 제 어머니의 유품을 다 정리하라고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더 나아갈 곳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모는 말 같아 더 씁쓸했었다.
앞으로 나아가라고? 대체 어디로 나아가란 말인가, 젠장!
그의 나이는 예순 아홉이었다.
대학에 다니거나 휴학 중인 10대 청년이 아니란 말이다.
앞으로 나아가라니.
그는 터덜터덜 침실로 들어서며 한숨을 내쉬었다.-p.17
어찌되었든, 결국 아내의 옷장 문을 열었던 아서는 우연히 아내의 부츠 속에서 낯선 팔찌를 발견한다. 그런데 팔찌가 특이하다. 아내의 취향에는 거리가 멀었던 팔찌. 팔찌에는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그리고 반지. 이렇게 8개의 각기 다른 모양의 '참(charm)'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첫번째 코끼리에 담긴 인도 전화번호. 그 번호는 아내의 과거를 추적하는 아서의 기이한 여행의 시발점이 된다. 인도에서 누군가의 보모였던 아내, 영국 배스의 그레이스톡 영지에 있었던 아내. 유명한 소설가와 인연이 있었던 아내. 누군가의 절실한 사랑이었던 아내........ 아내의 과거를 사생활을 캐는 것 같아 찜찜하면서도 자신이 모르던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는 흥분감이었는지, 아서는 여행을 도통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다이내믹한 아내의 과거를 알면 알수록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 어째서 아내는 자신처럼 평범하고 재미없는 남자랑 사랑하고 살아왔던 것일까. 하고.
아서는 참에 얽힌 아내의 과거를 하나씩 풀어낼 때마다, 의기소침하기도하고, 더 침울해지기도하고, 몇 번이고 그만둘까 고민도 한다. 하필이면 참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남자, 그것도 자신과 180도 다른 스타일의 남성들이 나오니 더욱 울적해 하신다.
드 쇼펑이라는 작자에 대해 아서가 느끼는 감정이 불안과 질투라고 해도, 그 감정으로 인해 그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의 몸에는 충격오법이 필요했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안락한 감옥을 뒤흔들 무언가가 필요했다.
미리엄과의 추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아서에게는 뭔가 다른 게 필요했다. -p.125
하지만 일흔에 가까운 이 순정남 할아버지는 그래도 끝사랑은 자신이었을 거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이제는 더 이상 이곳에 없는 아내의 흔적을 조금 이라도 더 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저 페이지의 글처럼 아내와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충격 요법이라도 쓰고 싶으셨던 걸까. 결국,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도 끝까지 참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기 위해 움직이신다.
그런데, 심각했던 아서 할아버지께는 죄송했지만, 그런 가엽고 귀여운 모습의 아서 할아버지의 그 모습들 덕분에 울고 웃었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남자의 모습에 너무 슬펐고, 아무도 남지 않아 홀로 살아야하는 일흔에 가까운 할아버지의 모습에 먹먹하다가, 추억을 곱씹는 아서의 모습에서 아내를 애지중지 했을 순정이 너무 애틋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서를 응원하게 된다. 철책을 넘다가 바지가 찢어지고, 호랑이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낯선 도시에서 소매치기 당해서 부랴부랴 헐떡이며 뛰어가는 모습에 '할아버지 힘내요!'하게 된다. 책 소개글에 '전 세계 사람들이 아서 페퍼를 응원하게 만든'이라는 문구가 격하게 와닿았던 순간들이었다.
여기에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가세해주니, 여행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하렘을 만들었던 탕아도 나오고, 바람둥이 소설가도 나오고, 양다리를 걸친 채 결혼할 여자를 고민하는 청년도 나오고, 마약에 찌들었다가 탈출하고 훈훈한 일화를 보여준 청년도 나온다.
이렇게 아서의 여행기를 따라 울고 웃고 하다보면, 잔잔히 오던 감동의 물결이 확 밀려오는 걸 느낀다. 집에서 영영 갇혀 살 것 같았던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청년에게 결혼 상담도 해주고, 약에 찌들었던 청년을 만나 위로도 해주고 구원도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얽매여 밖으로 나가지 못한 사람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밀어주기도 한다.
"방법을 찾아아죠. 아직 젊잖아요. 아직 살날이 많잖아요. 지금 모험과 경험과 사랑을 놓치고 있잖아요. 메모를 남기고, 편지를 쓰고, 신분을 밝히지 말고 전화를 해요. 그리고 당신 자신의 삶을 살아요.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 곁에 주저앉지 말아요.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 또래의 남자를 만나요." -p.181
아서가 발견한 건 결국 그 자신에 관한 것들이었다. 호랑이 한테 물렸을 때 그토록 용감하게 행동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잠옷과 치약도 없이 이상한 영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바로 전날만 해도 일상의 조화가 깨어진다는 생각만으로 이마에 진땀이 나던 그였다.
카페에서 낯선 사람에게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했고, 그 조언이 그가 그 자신을 두고 새각하는 것처럼 한심한 노인네가 하는 소리 같진 않았다.
...... 아서는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고 더 속 깊은 사람이었고, 그는 자신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발견이 마음에 들었다. -p.226
평생을 규칙적인 삶을 살아온 아서 페퍼가, 그 규칙을 뒤흔드는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변화해가는 모습이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처음에는 처음 마트에 장보기 심부름을 시킨 엄마 마음으로 조마조마 하면서 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허둥지둥하는 할아버지 모습에 피식 웃기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서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위로도 받았다.
무엇보다 초장에서 가족 해체의 모습을 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서글펐던 아서 가족은 알고보니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고, 그 사연을 풀면서 다시 화합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그리고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딱 떠올랐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간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는지, 아내 미리엄의 팔찌가 아서가 자신이 없는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큰 그림'인 줄 알았다.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만 살아 온 아서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큰 그림......이라는 반전. 하지만 그런 반전은 없었다. 물론 아서의 입장에서 아내의 과거 이야기는 충격이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시간을 걸으면서, 아서는 그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모습들에 대한 발견했으니 말이다. 자신은 계속 비루한 사람이라고 그랬지만, 아내 팔찌 하나 쥐고, 영국을 누비고 프랑스까지 다녀온 그는 누구 못지않게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가족의 마음을 다시 얻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국 소중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사랑하고 행복했었다는 사실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지 않았나 싶다.
"그게 뭐든 그것 때문에 두 분이 함께 나누었던 것들이 달라지진 않아요. 아버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사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과거에 집착하고 계세요.
........ 아버지의 삶을 보세요. 어머니가 어떻게 웃고 있는지, 아버지가 어떻게 웃고 있는지 보시라고요. 두 분은 서로를 위해 태어났어요. 아버진 행복했어요. 호랑이도 없었고, 형편없는 시들도 없었고, 파리에서 쇼핑을 한 적도 없었죠. 낯선 나라로 여행을 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두 분이 함께한 삶이 있잖아요. 이걸 보시고 소중히 간직하세요." -p.380~381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야 행복하고, 서로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했다는 사실. 비록 그 사람은 떠났지만, 그 사람과의 결실에 곁에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 못지않게 사랑했다는 아름다운 사실들인 것이 아닐까.
그런 따뜻한 이야기와 메시지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