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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너
박지영 지음 / 청어람 / 2018년 6월
평점 :
<그리고...... 다시 너>_박지영
출판사_청어람

"나는 기다렸어, 너"
파리에 유학 갔던 제이는 이모의 부탁이라는 사촌 언니의 메일을 받고 8년 만에 한국에 귀국한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그녀를 맞이한 것은, 놀랍게도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환이었다.
아픈 기억을 남겨둔 채 떠나야 했던 한국, 열아홉 살의 시린 겨울에 멈춰버린 제이의 시간.
환의 등장으로 제이는 혼란스럽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기로 한다.
그때부터 9년이 흘렀으니까.
이제 둘은 열아홉이 아니라 스물여덟이니까.
하지만 긴 시간 탓인지, 계속되는 환과의 갑작스러운 재회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런 상황에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 환. 거기에 그녀를 기다렸다는 환의 말이 결정타로 날아온다. 제이는 그 긴 시간을 기다렸다는 환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것도 잠시, 그녀 앞으로 절망적인 상황들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그래서 더욱 환을 밀어내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녀가 힘들어 할 때마다 늘 그러하듯 묵묵히 그녀의 그림자처럼 곁에서 그녀를 지켜준다. 열아홉에서 멈춰버린 제이처럼 환 역시 열아홉의 그때처럼 그대로 그녀를 지켜본다.
비참한 마음에 제이는 그의 마음을 밀어내려 하지만. 무의식중에 그에게 쏠리는 신경과 속절없이 그에게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불편하다.
하지만 환은 그런 그녀에게 똑바로, 오롯한 자신의 감정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녀가 헤매지 않도록, 그녀를 가둬버린 시간에서 나올 수 있도록. 아니, 나올 때까지 굳건히 그녀를 바라보고 바라보겠다는 그 지고지순한 마음을 증명하듯이, 애틋하고 절실하게 말한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는데.
...... 막상 널 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 약 스포 주의
열아홉의 상처로 마음을 닫아버린 채 떠나버린 제이와 그런 그녀를 묵묵히 기다린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보여준 환의 이야기 <그리고 ...... 다시 너>. 시점은 1인칭 시점으로 여주인공 제이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 (개인적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인 것 마냥, 환으로 시작해서 환으로 끝났던 작품이었다.
내게는 <환 그리고 다시 환>이었던.
글은 어쩌면 매우 잔잔했다. 큰 사건들이 터지고 풀어나가는 글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조금 지루할 수도. 프롤로그에서부터 제이를 충격에 빠뜨렸던 중심 사건이 하나 터지기는 하는데, 그 이후부터는 큰 사건 하나 없이 오롯이 주인공 둘을 조명하며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놀랍게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도리어 어느새 몰입해서는 머릿속에 드라마며 순정만화며 상상하며 미친 듯이 읽었다. 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초반부 조금 진입장벽이 있었지만, 제이의 온 신경을 두드리는 환의 존재감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속절없이 작품에 몰입하고 있었달까.
독자로서는 오로지 제이의 시점만 보이니, 계속해서 환을 불편해하고 미안하고, 밀어내려는 마음만 따라가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의 눈물겨운 순애보가 느껴져 버린다. 그러니 책을 넘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묵해서 대사 몇 줄 없는데도 9년의 지극한 순정이 흘러넘치니까.
또, 한편으로는 제이가 왜 그렇게까지 이 남자를 밀어낼까. 혹은 꼭 밀어내야만 하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들어서 읽기도 했던 것 같다. 작중 인물들의 이야기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로 어렴풋이 알 수는 있지만, 이해되면서도 동시에 공감하기 어려워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보아도 9년이나 흘렀다면. 이제 제 잘못이 아닌 걸 알 것 같은데. 왜 과거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걸까. 계속 그랬던. 정말 모 이웃님의 말씀처럼 너무 캐릭터가 착해서일까 싶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작중 대사에도 담겨있었고, 작가님이 후기에 남긴 이야기도 있던 것처럼.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 무신경하고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그런 것들로 인해 고통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고민하고 쓰셨다는 게 느껴지는 글이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니 제이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니잖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강도는 다른 거니까. 작은 일이라도 견디기 힘들 때가 있는 반면 큰일에 오히려 의연해 지기도하고. 그걸 알면서도 당시에는 나도 솔직히 이해 못했어.”-p.240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셨다니, 이분도 따뜻한 생각을 하고 글을 쓰시는 분이시구나, 그런 생각을 멋대로 해보았다.
한편, 감성 제대로 자극 당했다고 했는데, 중간 중간 많아서 다 쓸 수는 없고. ...... 개 중에 인상적이었던 게 차고 씬이었는데(절대로 그런 장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니다.). 아아. 정말 간만에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애틋하게 묘사된 글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환은 그날 울었다.
나를 격렬히 품고 자신의 격한 감정을 쏟아낸 후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어금니를 악다물고 소리 없이.
구 년 동안 묵힌 감정을 토해내듯 바들바들 떨면서.
나도 울었다.
-p.160~161
밀어내기 바쁘지만 속으로는 흘러가는 마음을 잡을 수 없어 안달복달한 제이와 제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환. 그런 두 사람이었기에 갑자기 불이 붙은 둘의 장면치고 이야기가 다소 간단히 끝나버렸나 했는데. 뒤에서 다시 훅 들어왔다. 처음에 제이가 “잘래?”라고 하는데 이미 환한테 몰입했던 때였는지. 왜 나는 그게 세상 잔인하게 들렸는지. 너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러지마. 이러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역시나 다 쓸 수 없지만, 앞에서부터 환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인 탓인지, 뒤로 갈수록 환의 애정 표현 하나하나, 간단한 대사 하나하나가 절실하고 절박하게 느껴지니 미칠 노릇이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는 사람마냥,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은 사람마냥 제이에게 반응하는 환의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보이는 진심어린 애정 때문에 내가 괜히 절절.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남자라니, 모성본능 제대로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남주가 너무 매력적이니 여주의 매력이 반감되는 마이너스 요소가 발생하기도!
위에서는 조금 이해되었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이의 행동이 조금 얄미웠달까. 아마 제이가 진짜 나쁜 캐릭터였으면 이 절실한 남자 마음 쥐고 흔드는 나쁜 여자였겠다 싶을 정도로, 조금 이기적으로 보이는 태도 때문에 매력이 조금 떨어졌다. 도대체 얘가 뭔데 환이 이렇게까지? 거기다 밀어내려고 다짐하면서 자꾸 환에게 여지를 주는 게 희망고문 하는 것 같아 미웠기도 했다.
하지만 이걸 또 역으로 뒤집으면, 읽으면서 내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든 나를 묵묵히 지켜봐주는 남자가 있다는 든든함과 나를 나로 있게 믿어준 고마운 마음,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점. 그게 또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여주 1인칭이라 남주의 시점이 궁금했을 법도 한데. 그 마음을 너무 잘 아시는지, 작가님이 남주의 시점을 크게 3번 써 주셨다. 근데 또 이게 완전 킬링 파트였다. 과거와 현재까지 변하지 않는, 오히려 더 진득해진 환의 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오랜만에 제대로 감성 자극했던 <그리고 다시 너>.
읽으면서 드라마 몇 편이 막 떠올랐다. <도깨비>에서 매번 등장하는 장면인데. 도깨비가 은탁이 해맑게 웃는 장면을 상상하는 씬. 그리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약간 옛 느낌 떠오르게 하는 바랜 듯한 장면 연출과 OST. 또 <키스 먼저 할까요?>의 회상씬들. 왠지 모르게 그런 드라마를 보았을 때의 연출이 떠올라서였는지, 글을 읽는 동안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글을 읽고 멜로망스와 김상민 버전의 <You>가 번갈아가면서 자체 재생하는데...... 가사가, 가사가 정말이지 너무 환이 같아서. 이거 들으면 계속 환이가 떠오를 것 같다. 목소리도 너무 절절해. 또, 제이 입장에서 애정하는 곡 중 하나인 다비치 버전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도 떠올랐던 것 같다.
물론 등장인물들이 너어어무 착해서 판타지(?)스럽기도하고, 여주를 쥐고 흔들던 문제도 쉽게 풀린 느낌이 적잖아 있지만.
제이가 자신의 상처에서 스스로 일어나 자신의 사랑을 마주하기까지 마음과 환의 순애보가 주된 이야기였으니까. 한편으로는 군더더기 없이 둘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던 것도 같다. 또, 착한 이야기에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도 들고.
더운 여름에, 심지어 배경도 겨울. 이토록 잔잔한 글이라니. 궁금했지만 동시에 조금 걱정도 되었던 글이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도록 글은 너무나도 지금 상황에 잘 어울렸다. 지금이 장마철이라 그럴 수도. 다가오는 태풍에 대비해서 한 권 마련해 두시는 건 어떨는지.
오랜만에 기교 없이 정공법(?)으로 승부한 온전한 감성멜로 <그리고 ...... 다시 너>
더운 여름 장마처럼, 아주 조금은 답답하고 마음을 울적이게 할 수 있지만,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인상적인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