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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포로원정대
펠리체 베누치 지음, 윤석영 옮김 / 박하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흔히들 산에 미치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왜 산에 오르느냐고, 산에 오르면 무슨 득될 것이 있냐고 하면 그곳에 산이 있고 산에 오름으로서 진정한 자유와 비로소 세상속에서의 자신을 알 수 있다고 하죠.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미치광이들에 대한 실화를 담은 자전격 수기입니다. 일어난 기간과 결과를 보면 너무도 짧고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의 계획하고 의도한 목표엔 미치지 못했고 과정은 참으로 참담하지만 그들의 열정과 상황을 놓고 본다면 너무도 아름답고 열정과 목표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너무도 확실히 보여준 도전이었습니다.
이들의 등반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탈출이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그들은 추축군이고 그들을 가둔 건 유럽에서 외로이 싸우던 영국군이었습니다. 전쟁포로의 신세로 있던 주인공이자 이 황당무개한 계획을 세우고 도모한 펠리체 베누치는 무의미하고 포로신세에 만성이 되어서 목표도 꿈도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견디기 힘들었던 때이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다 할 점은 아프리카 전선에서 이 주인공이 있던 포로의 상황을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흔히 우리가 아는 전쟁포로의 그 상황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있던 곳은 유럽전선의 수용소도 태평양 전선의 포로수용소가 아니라는 것이죠. 당시 이탈리아와 영국과의 대치상황과 독일만큼의 증오심과 격렬한 전투를 치루지 않아서 그런지 상당히 자유롭고 너무도 인도주의적인 대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 이 무모한 등반을 가능케 했고, 무엇보다 스포츠 정신을 두고 다시 수용소로 돌아올 수 있게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는 거죠. 만일 이들이 유럽전선과 태평양전선에 수용되었다면 이런 계획자체를 세울 수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과 주인공이 이런 목숨을 내걸은 탈출을 감행하면서도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케냐산에 등반을 하고자 결심을 세운데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서 도전을 함으로서 살아있다는 무엇인가를 느끼고 싶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수용소에서 수감되고 살아가면서 인간성과 목표와 희망이 없는 사람의 모습과 참담함을 보여주었다면 이 <미친 포로원정대>는 그 상황에서 과감히 희망과 목표을 향해서 무모함을 걸고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구름과 안개에 가려져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케냐산 바티안봉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펠리체 베누치에겐 그 케냐산이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오늘의 우리에겐 잘 공감이 가진 않겠지만 초라한 막사와 의욕과 목표도 없는 희망을 볼 수 없는 자신에게 얼마나 큰 대조를 보여주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라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리라 생각이 들죠.
“마침내 마주하게 된 케냐 산. 일렁이는 운해를 뚫고 우뚝 솟은, 천상에서나 있을 법한 산이 칙칙한 두 막사 건물 사이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거대한 치아 모양을 한 검푸른 색의 깎아지른 암벽. 지평선 위로 두둥실 떠 있는 푸른빛 빙하를 몸에 두른 5.200미터 높이의 산을. 이때 처음 보았다. 낮게 깔린 구름이 이동하며 급기야 그 위용을 숨길 때까지, 나는 멍하니 서 있기만 했었다. 이후 몇시간이 지나서까지 여전히 그 장면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사랑에 빠져버렸다.”(P.60)
그에게 목표와 희망이 생긴 순간 그는 그 상황에서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고 증명해야 하는 큰 사명을 띄게 되었던 겁니다. 이게 가장 중요하며 작가가 작품을 쓴 큰 이유라고 생각이 듭니다. 희망과 목표가 있는 자는 어떠한 어려움과 곤경에 처해 있어도 능히 극복하고 정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게 된다는 거죠.
그때부터 그는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일단 장비가 가장 큰 문제이지만 같이 등반할 믿을 수 있는 생사고락을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이자 전우를 섭외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죠. 자신을 포함해 정확히 3명이 이 원정대의 인원입니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다른 장비나 물품을 확보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 마지막까지 말썽을 일으킨 것이 바로 인원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큰 문제였죠. 가장 먼저 마지막까지 정상을 같이 등반할 두 번째 인원은 얼마지나지 않아서 섭외가 됩니다.
“새로 옮긴 막사에서 나는 귀안이라는, 앞서 언급했던 그 의사를 주목했다. (...) 그리고 나는 조금씩 깨달아갔다.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 찾으려 했던 바로 그 대원이 귀안 아니었던가. (...) 그는 흔쾌히 응했다. 그 순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를 만난 것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그를 섭외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장차 우리가 시작할 모험을 위한 최고의 동료이자 내 평생의 친구를 바로 이때 만난 것이다.”(P.80~81)
의사인 지오바니 발레토, 일명 귀안은 정말 같이 가지 않았으면 큰일 날정도로 신이 그에게 붙여준 최고의 친구이자 동반자였죠. 그리고 귀안은 그가 기대한 이상의 최고의 활약과 그의 소임을 기대이상으로 다해줍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구해지지 않아서 계획을 크게 수정해야 할 지경까지 가게한 베이스켐프의 대장겸 세 번째 인원은 우여곡절 끝에 찾아내지만 정말 너무도 확실한 적임자를 만나게 됩니다.
“탈출을 꿈꾸기 전까지만 해도 엔초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이번 여정을 통해, 나는 그가 유쾌하며 어떤 면에서는 ‘또라이’ 같고, 다혈질에 모험심으로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분위기를 잘 살리는 사람이었다. 이런 그에게 지금도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엔초는 정말 자기 몫을 톡톡히 해내는 사람이었다.”(P.308)
너무도 개성이 강한 말그대로 반 미쳐있거나 아니면 나사가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제 삼의 인물로 그의 맡은 바 임무와 소임을 그리고 그 이상의 확실한 분위기 메이커로서 없었으면 큰일날뻔한 인물로 이 원정대는 확실하게 색깔과 개성이 있는 너무도 다른 세명이 서로 도우고 배려함으로서 어느정도 계획한 바를 성공할 수 있도록 한 가장 큰 원동력은 이 세사람이였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나를 알아주고 나와 동행할 수 있는 친구가 살아생전에 두 명만 있어도 그사람은 성공했다고들 합니다. 이를 보면 베누치는 성공을 했다고 볼 수 잇는 인물이라고 생각이 들죠. 실제로 그의 이 짧지만 강렬한 모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순탄한 날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피하면 동물이 문제고 동물을 피하면 날씨와 산이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죠. 그리고 산을 하산하면 지독한 굶주림이 마지막까지 힘들게 하였는데 그때마다 서로 도우고 배려하고 보살핌으로서 다시 수용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한 것은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친구와 함께 였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일단 그들의 등정은 그리 크게 성공이라고 보기엔 왠지 쑥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건 그 자체가 대단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하죠.
“이번 여행을 결산해보면 뭐가 남을까. 오로지 등산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그건 실패였다. 기껏해야 ‘명예로운 실패’ 정도였다. 레나나는 ‘관광객들이나 다닐 만한 산’인 걸로 드러났으며 바티안은 우리면전에서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우리가 시도한 것은 결과적으로 애국자 시늉이나 내고 마는 등산 여행이 아니었다. 철조망 바깥으로 뛰쳐나온 우리의 행위는 포로수용소의 고리타분한 삶에 대한 반항이었다. 무기력함 속에서도 의지를 드러내 보인 행동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여행은 성공이 아니었을까? 그 답은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번 모험이 의심할 나위 없이, 포로로서의 그리고(아마도 나중에는) 자유인으로서의 삶에 끊임없이 분명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을 확신했다.”(P.352)
목표를 향해서 삶아있음을 증명하고 자유인임을 느끼고 삶을 의미를 느끼고 싶었기에 목숨을 건 대장정을 떠난 그들. 그들은 꿈을 향해 도전하는 자에겐 세상의 어떤 위험도 장애물이 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고 잔잔하면서도 단호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내 앞을 막는 이는 나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죠. 주저하고 포기하는 순간 이미 끝이라고 말하고 있는 펠리체 베누치의 이 모험은 그 자체로도 그들은 승리자이고, 오늘날 어렵고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슬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누구도 환영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목표를 향해서 담대히 나가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아픔답고 그 목표를 향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찬란해 질 수 있음을 1948년에 나온 이 작품이 2015년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