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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 정호승 시선집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비채 / 2015년 3월
평점 :

시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학의 작품이자 이야기이자 노래입니다. 고대엔 이야기의 방식을 시의 형식으로 일리어드나 호메로스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고, 시는 그 자채로 노래이자 예술이죠. 물론 가장 짧은 한 문단으로 끝나는 일본의 시인 하이쿠도 있지만 그건 너무 함축적이고 일단 시 자체는 그 안에 내포된 의미와 깊이가 상당해서 시는 일반 소설이나 작품을 읽듯이 읽고 이해해 나가는 작품이 아닌 글임엔 틀림이 없는 가장 오래되고 깊은 감동과 울림을 가진 노래이자 문학의 정점에 서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은 정호승 시인의 지난 42년간 발표한 그 많은 유명한 작품들 중 가장 사랑받고 백미로 꼽히는 수작들이라고 알려진 시 101편을 한데 모아 엮은 시집 <수선화에게>입니다.
얼마전에 JTBC뉴스룸 앵커브리핑 코너에서 정호승 시인의 ‘매혈’이라는 시가 소개가 되어서 지금의 이른바 꿀알바와 그 옛날 처절했던 매혈기를 같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죠. 또한 임상시험을 위해 피를 뽑는다는 요즘의 매혈이 예전의 매혈과 같을 수는 없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다르고 정도가 차이가 난다고 자신의 피를 돈과 바꿔야 하는 그 짠함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모두가 비슷하게 못살던 시대의 매혈보다 이렇게 100층 이상의 빌딩이 올라가는 시대의 매혈이 한결 더 애잔하고 짠하게 보이는 것은 그시절의 매혈과 오늘날의 매혈은 확실히 다른 것을 보이며 오늘날의 매혈이 우리의 현재의 모습과 또다른 모순된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정호승 시인의 매혈이 더 와 닿았는지도 모릅니다.
밤 기차를 탄다
피를 팔아서
함박눈은 내리는데 피를 팔아서
뚝배기에 퍼담긴 순두부를 사먹고
어머님께 팥죽 한 그릇 쑤어 올리러
동짓날 밤 기차를 탄다
눈이 내린다
눈길 위에 이미 뿌려진 피는 몰래 감추고
외로웠던 피는 그 추억마저 팔아서
피막이풀 털동지꽃 피뿌리꽃을 만나러
바늘자국 무수한 혈맥을 찾아
밤 기차는 달린다
血蟲들은 달린다
- 정호승 시인의 <매혈> 中
어찌보면 정호승 시인의 시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우리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그 통증과 아픔, 상실의 고통과 치유와 회복들을 시를 통해서 시인이 전하고 싶고 말하고 싶은 바를 잔잔하면서도 조용히 그러면서도 강하게 전하고 있어서 더 울림이 다르다고 생각이 듭니다.
시집은 너무도 유명한 시인 ‘수선화에게’를 제목으로 수려하고 따스하고 아름다움을 겸비한 박항률 화백의 그림으로 시집이 엮어져 있어서 시와 그림의 완벽한 조화는 시를 읽는 내내 와닿는 느낌과 따스하고 잔잔하게 그리고 편안함을 안겨주어서 한편 한편을 진지하고 깊이 집중하면서 읽어나가게 도와줍니다.
많은 시 중에서도 이 제목이자 대표 시인 ‘수선화에게’를 빼놓을 수가 없죠.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
일단 이 시집의 주요 테마이자 주제는 ‘사랑’입니다. 그중에서도 이 시는 그 주제를 가장 강하면서도 그 정서를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는 시가 아닐까 생각이 들죠.
수선화는 나르시스라고도 하죠. 그리스 신화에서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물에 빠져 죽은 나르시스. 수선화. 그런데 제목이 수선화이지만 이 시에서 많이 비추는 핵심은 사랑과 애절할 정도의 그리움을 많이 비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신화에서 그 죽은 나르시스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다가 나르시스의 죽음을 알고 엉엉 울다가 연못에 빠져 죽은 프리지아가 이 시의 숨은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수선화가 피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리지아가 꽃망울을 맺는다고 하죠. 프리지아의 꽃말은 ‘순진’, ‘천진난만’, ‘깨끗한 향기’인데, 전 이 시에서 가장 어울리는 꽃말이 그 ‘향기’같습니다.
수선화가 필 때 쯤 피었다가 가장 좋은 향기를 내고 수선화가 질 때 쯤 같이 지는 프리지아. 비록 말 못한 짝사랑이지만 사랑을 하고 그리워하고 아파하고 곁에 있고 싶어서 따라서 죽은 프리지아가 이 시의 진짜 화자이자 주인공 같습니다.
사랑과 그리움, 헌신, 슬픔 등 마음속 매마른 감정의 막힌 골을 가래로 사정없이 긁어서 확 터주는 조용한 임팩트가 있는 시들의 이 모음집.
이 시들을 읽으면서 한가지 떠오른 시가 있습니다. 바로 공무도하가이죠.
公無渡河 (공무도하) -임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이별의 만류)
公竟渡河 (공경도하) -임은 그예 물을 건너시네.
墮河而死 (타하이사)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임의 죽음, 격리)
當奈公河 (당내공하) -가신 임을 어찌할꼬.(애도와 탄식, 그리움)
이 시는 우리의 학창시절을 엄청나게 괴롭힌 고시이지만 이렇게 시간이 흘러서 이렇게 보니 이 또한 정호승시인의 이 시집의 분위기나 정서에 가장 어울리는 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사랑과 사랑에 의한 아픔, 그리고 치유와 회복 등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라고 이 시집에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사람이니까 사랑을 하는 거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듯이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한, 삶의 외로움과 깨달음이 맞물린 이 시집은 새봄의 향기와 더불어 깊고 고요한 사색과 서정의 세계를 선사해준 정말 이 새싹이 깨어나는 완연한 이 봄에 딱 어울리고 완벽한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동안 이 시집도 가까운 곳에 놓고 자주 펼쳐보게 될 것 같고. 정호승 시인을 정말 다시 한도안 찾아보게 될거 같습니다. 치유와 힐링을 선사해주기에 완벽한 정호승시인의 이 시집은 외롭고 어렵고 힘겨운 오늘날을 살아가는 슬픈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박카스와도 같은 작품집으로 꼭 추천하고 싶은 시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