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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문제적 영화이자 작품인 <은교>의 작가이신 박범신 작가의 작품 <주름>입니다.
이 작품의 이력은 참으로 흥미롭죠. 199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침묵의 집'을 2006년에 개작하여 '주름'으로 발표를 했는데 그것을 한 차례 더 개작해 이번에 다시 발표를 했습니다.
작가가 제목까지 바꿔가며 수정에 또 수정을 감행한 이 책 작가는 계속해서 수정하고 또 손을 보게 하게 하는 이 작품. 아마도 작가는 앞으로도 계속 이 작품을 손을 볼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의 작품들을 계속 손을 보고 수정하여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손을 볼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정도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계속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손을 보게 한 이 작품은 뭔가가 있는 것이기에 더욱더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여서 읽어나가게 되었습니다.
일명 박범신 작가의 갈망 3부작의 그 첫 번째인 <주름>은 한줄로 요약하자면 인생의 기로에 선 50대 남자의 파멸과 또 다른 환생을 그린 작품으로, 흔히 인생과 삶에 지친 중년의 갈망과 기로, 그로 인한 한순간의 파멸을 박범신 작가의 그 특유의 필력으로 그려나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작은 아들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아버지의 거처와 올 수 있느냐는 전화. 평범한 회사원 50대의 가장이었던 김진영.... 가정과 직장, 그리고 나라를 떠나면서까지 쫓아간 여인을 향한 그의 집념.
나름 규모가 큰 주류회사의 자금 담당 이사인 김진영에게 그의 인생은 흔히 그 나이의 우리의 아버지들이나 가장들이 그렇듯이 톱니바퀴와도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던 여느 가장과 다를바없는 공허한 인생을 살아가는 50대이죠. 회사를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일탈과 벗어남이란 용납할 수 없는 그의 인생에 어느 순간 번개와 같이 큰 전환점의 계기된 일이 찾아오죠. 한순간의 늙었다는 생각은 그의 하루 일과를 다 틀어놓아버리고 그런 우울한 나날을 비오는 퇴근길에 문득 유년에 잃어버린 꿈인 그림, 그 그림을 쫓아서 화실로 들어간 김진영은 앞으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여자 천예린과 대면하게 됩니다.
연상이 여인인 천예린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녀에게 빠져버린 김진영은 그 날부터 그에겐 사랑이지만 세인이게 있어선 불륜을 열정적으로 하게 되죠. 회사의 공금을 빼내서 가져다 주고 하루에 그녀의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그녀와의 시간은 그의 새로운 삶의 활력이자 이유가 되어 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천예린은 뜻모를 암시를 하고 홀연히 한국을 떠나게 됩니다. 좌절과 분노 그 여러 복합적인 심란함에 빠진 김진영은 과감하고도 큰 결심을 하게 되는데 바로 천예린의 자취를 따라서 그녀에게 가기로 하죠. 때는 우리에게 아직도 상처이자 큰 시련의 시기인 IMF에 회사와 가정을 버리고 한 여인을 따라서 이 나라를 떠난 김진영.
아프리카, 유럽대륙, 영국을 거친 긴 여정 후에 스코틀랜드의 한 성당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 레드 하우스라는 그들만의 집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눕니다. 그리고 온 몸에 종기들로 죽음이 다가온 천예린은 그녀가 죽기에 가장 좋을 것 같았던 장소 바이칼에서 김진영의 곁에서 생을 마감하고 김진영은 그 추운 바이칼에서 사랑하는 여인 천예린의 시신을 지켜보고 지키고 있게 됩니다.
작품의 일반적인 내용만으로 봐선 이들은 분명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진영의 천예린에 대한 사랑은 분명 도가 지나쳤고, 그런 그를 보면서도 그에게 파멸과 맹목적인 것을 부추긴 천예린 그리고 천예린 사후에 보여준 김진영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봐야 할 것은 그런게 아닌 김진영의 천예린의 행방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그가 느끼고 본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프리카 나이바로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로코, 유럽, 그리고 스코틀랜드까지로 북극해를 향하던 그들의 여정속에서 비친 북극해라는 의미가 무엇이 였는지.
‘신생의 젊은 땅으로부터 시작해 북진을 거듭, 고절한 죽음의 땅끝으로 이어진 여정이었다. 내가 거쳐온 길이 탄생-청춘-노년-죽음으로 이어지는 생의 여정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나는 목이 메었다.’
이 여정의 과정을 천예린은
‘나는 지나온 삶을 재현해보고 싶었어. 적도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한 게 그 때문이야. 우기의 적도 아래는 온갖 생명들이 다투어 깨어나고 무섭게 무성해지고.... 바꿔 말해 유년기와 청년기가 거기 있는 샘이잖아. 아프리카는 청춘이 한낮과 같았지. 위도를 거슬러 파리쯤 오면 가을 같은, 부드러운 중년의 계절을 만나는 셈이고, 또 거슬러 올라오면 그래, 여기쯤.... 황량한 노년의 겨울이야. 칠흑 같은 밤바다가 천지 사방에서 레드 하우스를 포위한 채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게다가... 당신과의 게임이 보태졌잖아.’
어쩌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서 진짜로 말하고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김진영의 여정을 통해서 거쳐간 곳을 통한 탄생과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작가는 미리 이 작품을 부도덕한 러브스토리로 보지 말라고 했듯이 진짜 내용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죠.
사람에게 있어서 주름이란 나이 듦이겠지만 주름, 즉 시간의 주름은 보다 사람을 성숙하고 완성되어감의 상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에게 나이테라는 주름이 많아질수록 단단하고 커지듯이 인간도 주름이란 그저 노화와 약함, 나이듦의 상징이 아닌 단단함과 성숙의 상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보기에 중년의 남자가 치명적인 매력의 마성의 여인에게 빠져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사정없이 빨려간 파멸의 과정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생각이 지울 수 없는 것이 왜일까요. 그가 짊어진 어깨의 무거움을 너무 쉽게 내던진 것이 커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주인공이 좀 더 젊은 사람이 이랬으면 그 깊은 내용이 더 잘 보였으나 무엇이든 쉽게 생각하기보단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나이의 가장이자 어른이 이랬으니 좀 씁쓸한 마음을 금치 못한 건 사실입니다. 그가 그로 인해서 찾은 것이 무엇인지 그는 그 주름의 깊이를 알았을까 아니 찾았을까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파렴치한 두 중년의 로맨스로 인한 파멸로 향하는 여정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안엔 심오하고 깊은 내용이 담겨있던 박범신 작가의 <주름>. 아직 <은교>와 이 <주름>밖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무척 궁금해서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작품으로 정말 작가의 그 표현력과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였던 엄청난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