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할 성경다음으로 미국문학과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책입니다. 예전에 느낌표라는 프로그램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에서 소개가 되어서 큰 인기와 열풍을 일으킨 작품으로도 유명한 작품이죠. 500page가 넘는 두께에 부담은 되었지만 책 내용만 괜찮다면 page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정말 인종차별과 그의 어른들의 모순과 부조리를 바라보는 어린이의 시선에서 깨닫고 성장해가는 성장소설로 이보다 더 훌륭한 소설이 있을까 싶은 최고의 고전이자 명작이죠.

 

책 제목인 앵무새 죽이기라는 말만 들어도 참으로 끔찍하게 들린다. 실제 Mockingbird는 앵무새는 아니라고 합니다. 미국 남부에 사는 개똥쥐바귀인데 그 새 역시 인간의 말을 따라할 줄 알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앵무새라는 말로 대체했다고 하기에 꼭 원제를 표지에 같이 써 놓은 것은 그걸 알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놓은 책이라고 하죠. 별의 별 분야에서 순위를 매긴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이 책은 충분히 그런 찬사를 받을만한 가치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읽고 난 다음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역시나 책의 분량은 엄청납니다. 예전엔 나온 것도 분량이 어마 무시 했지만 이번에도 새로 나온 열린 책들 판도 만만치 않죠. 하지만 200p정도 참고 인내심을 갖고 읽다 보면 그 후 나머지 300여 페이지는 쭉쭉 읽어나가게 되는 엄청난 긴장감과 가속도가 붙어서 금방 읽게 됩니다.

 

톰 로빈슨이라는 남자를 그리워하던 봅 이웰의 딸이 아버지에게 이 장면을 들켜 실패하자 톰 로빈슨이 자신을 강간했다고 주장하고 너무도 톰 로빈슨의 무죄가 뻔한데도 배심원들은 결국 이 흑인에게 유죄 즉 사형을 선고하죠. 이 과정을 톰의 변호사인 에티커스의 자녀들이 지켜보면서 어른들의 편견을 형상화시키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줄기이자 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의 전체 비중중에 줄거리가 너무 짧았나싶지만 줄거리가 궁금하면 꼭 읽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부 래들리에 대한 아이들의 편견 그리고 톰 로빈슨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이 일부와 이부에서 묘하게 대립되어 있죠. 아이들의 편견은 아직 다른 사람 입장에 서 본적이 없는 아이들이 자신과 다름을 참아내지 못하고 부 래들리를 괴롭히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톰 로빈슨 즉 흑인에 대한 편견을 보고 부 래들리에 대한 자신들의 편견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그의 입장에서 다시 바라보게 되는 성장소설입니다.

 

우선 화자인 7살에서 10살로 커가던 스카웃과 12살에서 15살로 즉 사춘기를 겪게 되는 화자의 오빠의 성장에 따른 생각의 변화들이 우리에게 제시됩니다. 그들의 3년 동안의 정신적인 성숙은 오히려 메이콤 주민들의 정신연령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죠. 그것은 이들의 아버지 에티커스의 노력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듭니다. 물론 자신들의 관념에 맞춰 넣으려는 고모가 있지만 결국 고모도 이들의 이런 성숙을 막지는 못하죠.

 

어찌보면 스카웃이라는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본 시골마을과 이웃주민들의 모습, 인종차별로 간략히 요약이 된다. 하지만 깊게보면 스카웃과 그녀의 오빠인 젬의 성장소설로 점점 성숙해져가는 모습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성장소설입니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앵무새 사냥을 하는것을 보고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변호사인 핀치는 죄없는 앵무새를 죽이는것은 나쁜행동이라고 일깨워주면서, 앵무새는 인종차별적인 편견에 의해 누명을 쓴 채 끝내 죽음을 당하고야 마는 로빈슨 같은 힘없는 유색인종이나 소외받는 가난한 사람 같은 죄없는 타자(他者)의 상징이죠. 죄 없이 죽은 톰로빈스도 힘없는 한 마리의 앵무새였으니까요. 더 이상의 죄없는 앵무새의 죽음이 일어나지 않아야한다.

 

우리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않는 무고한 사람이 왜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고 죽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는 것에 큰 경종을 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왜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사랑을 받는 지 최고의 작품으로 오랜시간을 부동의 1위로 남아있는지 다시한번 알게 해 준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최고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사 & 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3
미우라 시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우라 시온의 유쾌한 할아버지들의 좌충우돌 우정에 대한 작품. <마사와 겐>입니다. 주인공인 구니마사와 겐지로는 소꿉친구이죠. 두 사람은 나이도 마찬가지로 73세로, 구니마사는 평생을 다니던 은행을 퇴직하고 현재 연금생활을 하고 있고, 겐지로는 전통비녀인 쓰마미 간자시 직공장인 장인입니다. 도저히 닮은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찾을 수 없는 이 두 노인은 단지 소꿉친구라는 이유 하나로 싫다 싫다 하면서 자주 다투고 매번 화해하기를 반복하죠. 서로 혼자(구니마사는 아내와 별겨중이며 겐지로는 부인과 사별한 상태)이므로, 언제나 서로를 오가며 저녁을 먹고 그대로 밤까지 눌러 앉아 잠도 자고 그런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구니마사와 겐지로의 생활은 보기엔 즐거운 노후이죠. 하지만 두 사람에겐 나름대로 그림자를 안고 있는데, 겐지로는 집도 가족도 잃은 어두운 유년시절의 도쿄 대공습의 악몽에 시달리고, 구니마사는 또한 겐지로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데, 대학을 나와 은행원으로 취직하고 근무하고 결혼하는 무난한 일생을 보내고 있다가 노년에 아내와 별거하고 졸지에 홀몸이 되어버리는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자신과는 달리 꾸준히 배운 기술로 나름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일을 하면서 가족이 없어도 제자와 이웃에 둘러싸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겐지로에게서 자격지심과 질투와 우울함을 느끼지만 내심 속에 담아두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나름의 각자의 어두운 그림자를 숨기고 있지만 쉽게 숨길 수 없어서 의지아닌 의지를 하며서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구니마사와 겐지로는 이제는 단순한 소꿉친구가 아닌 가족이상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가는 사이가 되어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미우라 시온의 소설의 특징은 4가지로 구별이 되는데, 가족을 그리고, 그 안에서 특징적인 관계가 있고, 하나의 일이나 작업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그리는 작품들과 슬픔과 끔찍한 일을 겪고 아픔과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그런 4가지의 작품들이 대체적인 미우라 시온의 작품의 세계인데 이 <마사와 겐>에는 그 4가지가 다 들어가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의외로 재미가 없는 무난한 삶을 살아온 도련님과 같은 구니마사와 그의 소꿉친구라는 괴짜 겐지로는 이제 73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의외로 우여곡절과 뜻밖의 사건속에서 돌발적인 행동들을 일삼게 되죠. 겐지로의 제자인 뎃페를 위해서 그를 쫓고 협박하고 폭행하는 폭력배들에게 달려들어서 두들겨 패고 협박하고 겁을 주고 쫓아내는데 이런 돌발행동은 처음이 아니라 이미 이전에 겐지로의 아내인 하나에와의 사랑의 도피를 위해서 둘은 대담한 모험을 감행한 젊은 시절이 있었죠. 사랑의 도피를 위해서 야밤에 수로에서 배로 질주를 하고, 항상 티격태격하지만 무슨 일을 할때는 꼭 둘이 환상을 궁합을 보여주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데 근 친구 이상의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이 소꿉친구 녀석이 어떻게 든 해 준다라는 절대적인 믿음속에서 가능한 것이겠죠.

 

특히 작품의 마지막의 이 둘의 대화에서 아련하고 슬프게 와 닿죠.

"벚꽃도 벌써 다 지네."

"내년이 있잖아."

"우리, 내년에도 벚꽃을 볼 수 있을까?"

"글쎄."

역시 73살이라는 나이는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글쎄라는 대답에 겐지로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리가 볼 수 없어도 벚꽃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피어. 그걸로 됐잖아."

서로를 알고 소꿉친구와 함께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서 그것에 충실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이를 먹는 것과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단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의미있게 즐겁게 살아갈 것이지를 생각하고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려고 하는 구니마사와 겐지로의 모습에서 이 둘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나이를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의미있는 미우라 시온의 <마사와 겐>이었던거 같습니다.

    

 

이상하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난 영화가 있는데 바로 영화 <버킷리스트>가 생각이 나더라구요. <마사와 겐>과는 전혀 다른 상황의 배경이 아니지만 죽음을 앞둔 두 노년의 우정과 남은 삶을 어찌 살아갈 것인지를 진지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그 영화가 왜 이리 생각이 나는지 이 소설에서도 결국은 걸어온 인생에 대한 후회와 남은 삶과 인생, 그리고 주변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담겨 있다면 영화에서도 후회없는 인생과 남은여생에 대처하는 의미있는 생활과 삶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주죠.

어찌보면 영화의 명대사는 따로 있지 않고 전하려는 바는 에드워드와 카터의 여행속에서 잔잔히 흘러나옵니다. 그럼에도 가장 손에 꼽는 대사는 바로 카터가 에드워드에게 죽어가면서 힘겹게 써내려간 마지막 편지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에게 며칠동안 이걸 쓸지 고민했었네. 결국 이걸 안쓰면 후회하고 말 거란걸 깨달았네. 그래서 이렇게 적네. 지난번에 만났을때 기분이 언짢았던것 아네. 원했던것 아니지만 우리여행이 끝난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네 미안하네. 그러나 솔직히 기회가 된다면 또 그렇게 할 것이네. 버지니아가 그러더군 떠날 땐 낯선 사람이더니 남편으로 돌아왔다고 하더군. 다 자네 덕분이네. 이 모든것을 갚을 방법이 없네. 대신 부탁하나 하고싶네. 자네 인생의 기쁨을 찾아가게. 아무나가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 그래, 맞네. 확실히 자넨 아무나가 아니지. 그러나 사람은 다 같은 거잖나. 목사님이 우리 삶이란 같은 강으로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거라고 하더군. 앞에 무엇이 놓여있던 말야. 안개던지 폭포던지 말이지. 인생의 기쁨을 찾아가게나 에드워드. 친구, 눈을 감아보게. 그리고 물결따라 흘러가게나.”

결국 유언이 되어버린 카터의 편지로 멈췄던 남은 여정을 착실히 이행해 나가면서 둘의 버킷리스트를 이뤄나가는 에드워드는 잠깐의 시간을 통해서 알고 같이 동행해 나간 카터로 인해서 삶과 인생이 바뀌면서 잃어버리고 놓쳤던 것들을 찾아가면서 소중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죠. 결국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했던 친구의 뒤를 따라간 에드워드는 마지막 버킷리스인 히말라야 정상에 서는 것을 죽은 다음에 유골을 정상에 놓는 것으로 버킷리스트를 완수합니다. 그것도 둘의 유골을 놓는 것으로 말이죠.

 

다른 듯 하지만 소설과 영화에선 노년의 행보를 통한 인생의 마무리에 대처하는 자세와 놓쳤던 것들과 생을 마무리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일러주는 듯 합니다.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 봤을 때 나는 누구이며 내 주변에 무엇과 누가 있는지. 진지하고 강열하게 물어보는 듯한 느낌이 들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진실되고 진정한 친구이죠.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하고 나를 일깨워주는 진정한 친구가 있는지. 있으면 그보다 더 값진 것은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가 당신에게 있습니까? 외롭고 힘뜰 때 당신에게 언제나 웃으며 다 괜찮을 거라고 일으켜줄 친구가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나에게 같이 늙어가면서 곁에 있어줄 친구에 대해서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인생과 행복에 대해서 잔잔하면서도 진지하게 읽어주고 있는 미우라 시온의 재미있고 유쾌한 작품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동주 시선 : 사랑스런 추억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7
윤동주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가슴속에서 뜨겁고 슬픈 애환과 깊은 울림을 주는 윤동주 시인의 시집 <사랑스런 추억>입니다. 보통 그의 시집이라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인데 이 시집은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며 사랑과 슬픔과 애환 등 깊은 울림을 안겨준 대표적인 시들로 묶은 시집이죠.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습니다. 그에 대해선 지금도 꾸준히 연구중이며 그의 죽음엔 너무 일찍 진 꽃과 같아서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슬픔이 넘치지만 그럼에도 그런 시대적 아픔의 시기에 그가 남긴 것은 너무도 아름답기에 그를 칭할 때 앞에 아름다운이란 수식어가 붙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시와 그를 알아가는 중에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를 우리 한국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사랑을 받는 시인지만 일본열도에서도 그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울 정도였죠. 침략국이던 일본에서 그가 재평가 받고 그를 사랑하고 추모하는 열기가 엄청나다니! 아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그의 대표시인 <서시>가 일본의 <안녕, 쿠로>라는 영화에서 영화말미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일본어로 번역된 상태로 그의 시를 조사로 낭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분명 기뻐해야할 부분이지만 만감이 교차되면서 거북하게 느껴지던 건 왜일까... 아무래도 다른 나라도 아닌 이런 역사문제와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시라는 이유로 윤동주의 시가 침략국인 일본에서 그런 식으로 이용된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싶어서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일본에서도 그렇게 열광하고 좋아하는 윤동주의 시는 너무 아름답습니다. 어렵거나 심오하거나 그런 부분이 없음에도 그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울림을 안겨주죠. 가장 대표적인 <서시>는 말할 것도 없고 <참회록>, <십자가>, <별 헤는 밤> 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그의 시 중에서 이 <사랑스런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시집은 제목이 윤동주의 시 중에 하나입니다.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차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東京)교외 어는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차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 아아 젊은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왜 이 시를 이제야 눈여겨 보겨 된 것일까 그간 시집을 많이 넘겨보고 봐 왔지만 아무래도 대표적이고 눈에 띄는 시만 바라보고 봐 와서 그랬는지 이 시를 이제야 깊이 보게 되면서 아! 이 시가 제목으로 쓰인 이유가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죠.

서울의 어느 조그만 정거장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이 담겨 있고, 차가운 언덕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과 그리움이 담긴 공간을 뜻하면서 기차를 기다리는 행위가 곧 희망과 사랑으로 당시의 이 나라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고통, 그리고 미래 해방에 대한 기다림과 희망이 고스란히 담긴 이 시를 보면서 과연 윤동의 시답고 이렇게 아름답게 쓰인 시를 그 어린 나이에 썼다는 것에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었죠.

이런 시 뿐만이 아닌 그가 북간도 부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며 아이들을 위한 잡지와 글들을 썼다는 것은 이미 문익환목사나 지인들을 통해서 알려진 사실로 그런 그의 아이들을 위한 동시같은 시도 눈에 띄는 시입니다.

 

 

만돌이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봇대 있는 데서

돌재기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

 

전봇대를 겨누고

돌 첫 개를 뿌렸습니다.

------ -----

 

두 개째 뿌렸습니다.

----- 아뿔사 -----

 

세 개째 뿌렸습니다.

------ -----

 

네 개째 뿌렸습니다.

----- 아뿔싸 -----

 

다섯 개째 뿌렸습니다.

------ -----

 

다섯 개에 세 개 ... ...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

손꼽아 구구를 하여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 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 하고 선생님한테

흰 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맞았을까요.

 

정말 앞으로 전봇대를 보면 이 시가 많이 생각이 날거 같습니다. 많은 문인들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로 윤동주의 시를 선택하였다는데 윤동주의 시에는 이와 같은 동시 같은 시가 아주 많이 있고 합니다. 아이들의 그 마음이 잘 들어가 있고 시인의 아이다운 날카로운 관찰들도 엿보이며 그의 순수한 마음. 정서가 잘 녹아있어서 많이들 아이와 함께한 이런 동시와 시들을 꼽을 때 윤동주를 많이 꼽는 다고 하죠. 일예로 웃긴 것은 이런 문예창작과 잡지등을 내 놓고 활동을 하던 때 좌절을 안기고 다시는 시를 짖지 않도록 굴욕을 안긴 사람 또한 윤동주 시인이라고 하죠. 바로 시인의 친구인 문익환 목사인데 목사가 어느날 야심차게 심혈을 기울여서 시를 짓고 윤동주에게 가져다 줬는데 윤동주가 이것도 시냐?’라며 굴욕을 안겨서 다시는 문익환 목사가 시를 짓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도 있죠. 아무튼 시와 글에 있어선 친구라도 얄짤없이 냉정한 모습을 보인 윤동주 시인. 시대의 아픔 속에서 그의 친구들과 방향과 방식은 달랐어도 목표는 같았던 그 희망을 품고 장렬히 산화하듯 이 세상을 너무 이른 나이에 떠난 윤동주 시인 그런 그가 그렇게 안타깝고 일찍 죽었어도 그가 남긴 것은 너무도 아픔답고 깊이 와 닿기에 그는 죽은 것이 아닌 영원히 우리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시대가 흐르고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살아 숨쉬는 그의 시, 한국을 넘어서 일본인들에게 까지 사랑받는 시를 남긴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의 그의 시집은 글과 시가 남아있는 한 영원히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서 깊고 뜨거운 울림과 사랑을 느끼게 해 줄 것입니다.

또한 이런 아름답고 멋진 시집을 선물해 주신 아티초크에도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이렇게 비오는 날 한번 윤동주의 사랑의 시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봄이 어떤지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렁크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작가의 신작 <트렁크>입니다.

내놓는 작품마다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에 날카로운 도전을 하시는 작가의 이번 주제는 바로 결혼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에게 차츰 퇴색되고 흐려지는 사랑과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하게 하는 소설이죠.

 

결혼정보업체(NM)에서 회원들을 상대로 계약결혼 생활을 해주는 필드와이프(FW)로 일하는 스물아홉살의 노인지라는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네 번의 계약결혼을 하고 또다른 회원인 한 남성으로부터 재결합 요청을 받아 다섯번째 계약결혼을 하게 되죠. 무엇을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정말 거의 동거형식의 평온한 계약결혼 생활을 하고 있던 인지 앞에 엄태성이라는 남자가 등장하면서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엄태성은 보여지는 이미지완 달리 무척 뒤가 구린 구석이 있는 남자로 그런 그에겐 아무리 찍어도 넘어오지 않는 인지가 정복해야 할 도전대상이 되어서 끊임없이 떡을 가져다가 집요하게 인지에게 대쉬하죠. 이유는 왜 내가 싫으냐입니다. 이정도 되면 거의 스토커에 병이죠.

결국, 그는 계약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인지와 회원의 집에까지 나타나 결국은 NM의 보안업체 직원들에게 끌려가서 겉으로 보이기엔 차밭인 요양원에 끌려가 말로 담을 수 없는 고초를 겪게되죠. 그런 그의 행방이 궁금하고 마음에 죄책감이 느껴지던 인지는 남편에게 부탁해서 그곳에서 꺼내와 구해주고 보내줍니다.

과거를 회상하며 이성남자와의 결혼을 부모의 반대로 깨지고, 고교절친인 시정을 통해서 알게 된 혜영의 죽음에 대한 인지, 혜영, 시정의 당시의 보통을 넘었던 서로에 대한 관계 등 그리고 계약마지막 날 계약남편을 통해서 알게된 재계약의 이유 등. 결국 승진통보를 받았지만 인지는 NM에서의 생활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사표를 제출하고 시정과 밥을 먹으며 앞으로의 일에대해서 등 얘기를 하기로 하다가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을 여니 엄태성의 떡과 메모를 보게 되죠. ‘그러니 나는 그게 알고 싶은거야 왜 내가 싫은 건지.’ 그러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파격적이면 파격적인 이 작품은 이제는 많이 흐려지고 퇴색되어가는 결혼에 대해서 그리고 사라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변한 사랑에 대한 이미지에 날카로운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인지, 그리고 그런 남이 다 하는 결혼이 과연 행복의 결정체인지.

확실히 파격적인 작품으로 읽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 체 읽어나간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왜이리 와닿지 않는 아니 낯선 내용의 공감이 가기 힘들던 작품이였습니다. 그러나 확실한건 읽으면서 씁쓸함을 금치못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었죠. 소설과 작품은 시대를 반영한다고 하던가요? 이런 추세와 분위기가 있고 이런 계약적 생활과 결혼 등 이런게 있으니 작품으로 나오게 된 것이 아닌지 직장구하기 힘든 요즘같은 시대에 월급을 받고 돈준다면 이런 생활도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시대에 계약적 동거형식의 결혼생활은 낯설지 않은 흔한 일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서로가 윈윈이라면 가능한 생활이 된 요즘이 되어가고 있는 듯해서 읽으면서 큰 공감보단 거북한 씁쓸함을 느낀 김려령작가의 <트렁크>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에게서 온 편지 : 멘눌라라 퓨처클래식 1
시모네타 아녤로 혼비 지음, 윤병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알팔레파 가문의 하녀로 10대에 들어가서 거의 평생을 알팔레파 가문을 위해서 일해온 마리아 로살리아 인제릴로, 일명 멘눌라라가 운명을 달리하고 죽은 이후에 알팔레파 가문의 자식들이 그 폭군이라고 불리우던 멘눌라라의 유서로 인해서 일어난 헤프닝과 죽은 이후에도 알팔레파를 쥐락펴락 할 정도의 혜안속에서 오해하고 잘 알지 못하던 멘눌라라의 정체와 그 속에 숨어있던 멘눌라라의 진심을 알아가는 작품입니다.

멘눌라라가 죽었습니다. 모시고 있던 마님보다도 먼저 죽음으로 페닉에 빠진건 오직 마님 뿐이죠. 자식들은 그 폭군이자 하녀주제에 자신들을 하녀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오히려 하녀에게 생활비를 타 쓰던 암울한 시절이 가고 그녀가 숨겨놓은 가문의 재산에만 온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어 있죠.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가 있으니 주치의 멘디코와 아레나 신부입니다. 이 둘은 숨은 이 작품의 화자로 이 둘의 대화와 만남 그리고 멘누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면서 그녀의 진실과 진심을 그리고 아무도 몰랐던 그녀의 과거를 알아가게 됩니다. 모든 것이 오해였으며 알려지지 않는 것이 그녀의 바램이었고 오히려 알려지지 않고 그녀가 품고 가는 것이 모두가 서로에게 이롭다는 걸 알았기에 그녀혼자 감당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멘누는 분명한건 알팔레파 가문의 하녀였죠. 그러나 특별한 하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사실 가문의 가장이자 당주라고 할 수 있는 오라치오는 가문과 재산 등 관리에는 소질이 너무 없었고 당시의 이탈리아의 정세의 변화에 둔하고 대처하지 못하던 많은 귀족들과 거의 다를 바 없었던 이였죠. 그건 그 자식들도 그대로 물려받았기에 멘누는 팔을 걷어 붇이고 악역을 자처하면서 재산과 관리 전반을 그녀가 다 담당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뿐 아니라 같은 시종들, 하급계층의 사람들에게 까지 건방지고 사나운 폭군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고 급기야 오라치오의 사후에 저택의 관리에 돈이 많이 들어가니 저택을 관리하기 보단 마님과 자신은 자신의 집에서 살기로 하고 마님은 그런 그녀를 따라가고 자식들은 영문도 속마음도 모른체 염치없이 그녀를 통해서 돈을 타 쓰는 전세가 역전된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그녀의 유서가 가장 큰 관심의 중심에 놓이게 되고 유서의 내용은 자신의 장례식을 치러주되 신문 기고에 올려주는 것이 명령 아닌 명령을 하게 되죠.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장례식과 신문 기고를 올리게 되고 장례식장에 의외의 인물이 그곳에 참석을 하게 되는데 바로 마피아 두목인 돈 빈첸초가 참석을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그녀에 대한 많은 논란의 소문들이 떠돌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아레나 신부와 멘디코, 피에트로 파타의 만남속에서 그녀의 진실이 양파껍질이 벗겨지 듯 하나씩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

작품은 한가지 확실한건 무척 재미있는 블랙코메디와 당시의 귀족계급들의 모순과 풍자가 익살스럽게 그려지면서 유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멘누란 이름은 아몬드를 수확해서 거둬들이는 소녀를 뜻하는 이름으로 노동자계급을 뜻하죠. 그런 그녀가 어떻게 알팔레파 가문의 운명과 전반을 쥐락펴락하는 존재로 거듭나는지 이야기는 파타와 멘디코, 아레나신부와 알팔레파 가문의 유일한 이성적인 사람인 릴라에 의해서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확실한건 그녀의 대한 소문은 거의 다 뜬소문이라는 거고 그녀의 재산과 돈은 많은 건 확실하나 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 부정으로 증식된 것이 아니라는 거죠. 다 사연과 이유가 있는 그녀의 행동과 사실들. 그녀는 그렇다고 구차하게 변명을 하려하거나 사리사욕을 탐하여 자신을 위해서 살진 않았다는 겁니다. 어찌보면 그건 오라치오를 향한 마지막까지 알팔레파와 오라치오를 위해서 살던 하녀 멘누로 남고 싶었던 것이 아닌지. 그런데 마지막을 보면 오히려 매달리고 더 깊이 마을을 보낸건 멘누가 아닌 멘누로 향한 오라치오의 마음이 아니였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라치오가 더 멘누를 사랑한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오라치오의 마지막 편지를 읽은 파타의 생각이였죠. 어쩌면 둘다 표현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맞게 살긴 했지만 둘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서로 끌렸기에 같이 있었고 그런 오라치오를 이해하고 알팔레파의 사람으로 죽을 때까지 살았던 멘누와 그런 멘누를 이해하고 끌렸던 오라치오는 멘누가 하라는 데로 하게 놔둔 것이 아닌지 그리고 같이 미술과 도자기를 연구하고 멘누는 그걸 남긴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확실한건 오라치오가 더 좋아했던 것이라는 거죠. 당시의 많은 격동의 시대에 신분과 계급질서가 무너지던 사회적 상황에서 한 가문을 말없이 지키고 유지시키기 위해서 뒤에서 조정하고 오명을 쓴체 죽어간 알팔레파가문의 하녀 멘눌라라의 사후 유서로 인해서 벌어진 헤프닝을 익살과 유머로 재미있게 그녀나간 멘눌라라. 정말 명성에 걸맞게 무척 재미나고 다 읽기 전까지 손에서 책이 놓이지 않던 작품으로 이런 작품을 이제라도 볼 수 있었던건 분명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정도로 무척 재미있었던 작품입니다. 정말 너무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