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절대가이드 - 제주 사는 남친들이 솔직하게 까발린 강추 비추 관광지 절대가이드 시리즈
김정철.서범근 지음 / 삼성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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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에 새로운 형식의 가이드 북으로 일반 가이드 북과는 다른 차별성을 둔 작품임에 틀림이 없어 보이는 것은 바로 부제부터가 눈에 띕니다. '제주 사는 남친들이 솔직하게 까발려 주면서 강추하고 비추하는 장소들'을 잘 정리해서 한데 엮은 작품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죠. 무슨 드라마에서 소품으로 비춰진 것으로도 유명한 책자라고 하죠.

기존의 가이드 북은 일단 있는 곳과 특이하게 보이는 곳은 다 넣어 보고 나머지는 독자가 그리고 관광을 가는 당신들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투로 나온 것이 보통인데 이건 그런 것에서 보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일단 크게 키워드 별로 분류가 되어 있어서 어떤 테마로 갈곳을 정할지 구별을 할 수 있으며 북부, 동부, 남부, 서부에서 한라산 , 올레길 그리고 섬으로 놓여 있어서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책은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가 장소에 대한 설명도 상세하게 그림과 사진과 함께 놓여 있어서 그곳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며 각 페이지와 각 장에 대해선 꿀팁이 같이 놓여 있어서 또한 이것은 보는 재미가 있죠. 가이드 꿀팁엔 그곳에 대한 특징과 제주 방언에 대해서 나와 있어서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제주도 방언과 사투리도 공부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테마별로 짤 때는 어디서 부터 가면 어떻게 되고 각 경비시간과 소요시간 등 무척 계획적으로 일정을 짜는데 큰 도움을 주며 각 특징과 특히 여유없는 20대 배낭여행이나 짠돌이 여행을 가고 싶으면 어떻게 일정과 어느 코스로 가는 것이 유익하고 유리한지도 주도에 경로를 그려놓으면서 상세히 나와있어서 무척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는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테마별로 계절별고 어떤 경로로 어디를 시작으로 제주라는 곳을 어떻게 여행하면서 각 장마다 그곳의 특징과 추천하는 맛집과 숙박 등 가볍게 보다가 크게 된탕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준 이 새롭고 특징있는 가이득북을 보고 이번 여행은 이 책으로 잡으면 무척 좋겠다 싶어서 정말 아주 훌륭한 작품이 나온 것 같아서 무척 반갑고 기쁨이 넘치는 의미있는 가이드 북이었습니다. 이번 여름에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신 분들이 있다면 한번 꼭 봐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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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밤바 - 1915 유가시마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나지윤 옮김 / 학고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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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야스시의 <시로밤바>는 다이쇼시대가 시작되었을 무렵의 이즈의 시골마을을 무대로 합니다. 초등학생 소년이 주인공입니다. 소년은 창고에 증조부의 첩이었던 할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습니다. 부모와 형제들에게서 홀로 떨어져있어 목가적인 마을에서 사는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시로밤바에는 인상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고옆에는 위의집이 있습니다. 위의가정은 소년의 어머니 생가였습니다. 위의집, 사키코는 여학생 정도의 나이의 딸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자주 사키코에게 공동목욕탕에서 몸을 씻어받고 있었습니다. 사키코가 두층의 방에 틀어 박혀 숨어사는 듯이 보여서, 소년이 위층에 오르려고 하면 위의 집 할머니에게서 저지를 당하죠.

사키코는 폐병이었습니다. 소년은 집사람들의 눈을 피해 위층에 올랐갑니다. 사키코언니를 보려고 올라가죠. 방 안쪽에서 오면 안돼 라는 사키코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소년은 멈추지 않고, 미닫이를 열려고 합니다. 네 개로 된 미닫이를 어떻게 안쪽에서 눌러 있는지, 소년이 곳곳을 열려고 해도 아무데도 열리지 않습니다. 사키코는 마을을 떠났습니다. 머지 않아서 사키코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시로밤바는 3인칭으로 이야기되는 이야기이지만, 화자의 관점은 소년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소년의 시선을 통해 말하고 있으며, 스토리는 소년이 보고들은 세계에 한정됩니다.

사키코의 방 앞에 미닫이을 열려고 하는 장면에서 슬퍼서 안타까운 장면이 있는데 어린 소년은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있는 듯이 힘겹게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죠. 오늘날과 당시의 아이가 앞으로 성인이 되어서 살아갈 세상과 당시의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은 아이는 모른 체 열어서도 보여서도 않되는 사람에게 "열어주세요" "안돼"의 입씨름을 하면서 소년은 당지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사키코와 대치하는 장면은 너무도 다른 입장에 놓인 사람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죠. 사키코가 갑자기 미닫이를 열어 소년의 머리를 퍽 내리칠 때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나중에 아이가 즐겁게 그 장면을 회상하죠. 미닫이가 다시 닫은 뒤의 "돌아가라"는 말에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무언가가 담겨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면입니다.

시로밤바는 소년이 모험하고, 사건이 일어나고 위기에 빠지거나 하는 드라마가 쌓여 이야기가 전개하는 유형의 소설은 확실히 아닌 작품입니다. 소년이 알고 싶고 궁금해 하는 할머니는 깊은 드라마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끝까지 할머니의 이야기는 아무런 대답도 말도하지 않죠. 마을의 아이들이나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세상이 다른 어른들과의 생활 속에서 소년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가 소년의 시선에서 잔잔히 서술되어 나갈 뿐 입니다.

시로밤바의 라스트씬이 마음에 깊은 무언가를 남기는 장면이 됩니다. 소년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마을에 전학하게 되었죠. 그냥 소년의 제2차 성장이 시작했을 무렵이었습니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 마을에서 함께 자라온 친구들과 공동목욕탕에 갑니다. 소년은 친구들이 미래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어제까지 놀고 있던 소년이 언젠가 마을을 떠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친구는 버스를 타고 마을을 나갈 때 거리에있어도 얘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역 대기실을 나와 근처를 산책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소년은 변두리의 황량한 풍경을 보고 소년은 난생 처음 그것이 "황량한"것이다 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시로밤바를 읽고, 작가가 그린 것은 영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키코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없어져 버린 것도, 마을의 초등학교를 제일 먼저 졸업한 선배가 몰락한 모습을 하고 돌아온 것도, 함께 사는 할머니가 몸이 자유롭지 않게 말을 듣지 않게 될 무렵에서 욕심이 깊어진 것도, 소년은 그것이 왜인지 알 수 없어하죠. 성인의 도리라는 필터를 통하면 설명이 생기는 현상을 소년은 무엇과도 지키지 않은 순진한 마음으로 계속 받아들이며 갑니다. 라스트씬에서는 소년은 변두리의 풍경을 접하고 애절함을 느껴가는 마음을 어느새 키워져 나가고 있으면서 소년은 유년에게 작별을 고하고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모른 체 성장해 가 버리게 됩니다.

시로밤바의 부제는 그리운 향수라고 합니다. 소년이 유년의 그 시절에 간직한 것은 너무도 친절한 마음과 그리움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때가 묻지 않은 유리와 같은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해할 수 없는 어른과 나이 많은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그것을 천천히 알게 되면서 유년에게서 작별을 고하며 황량하게 비춰지는 주변의 풍광을 소년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런 소년은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 이노우에 야스시가 시로밤바를 통해서 전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 가진 숙명적인 애절함을 향한 아련한 유년의 추억을 다시한번 상기시키며 그시절을 생각하게 하고자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근처에 있는 사람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이노우에 야스시의 장식없이 심플한 문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희미하게 넓게 퍼지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일본의 국민작가 이노우에 야스시의 시로밤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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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하루 - 하나님께서 출타 중이셨던 어떤 하루의 기록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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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설립자 옥한흠 목사의 장남인 옥성호 씨가 한국과 기독교 교회의 현실을 비판 풍자한 소설인 <낯선 하루>입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설립한 사랑의 교회의 후임목사인 오정현 목사와 그 중진들의 교회 운영과 비리 등을 풍자하는 듯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적나라한 어둡고 도저히 믿는 사람들로서 할 수 없는 그런 참단한 행보들의 내용을 담았던 오늘날 기독교와 교회의 현실에 경종을 울린 <서초교회 잔혹사>에 이은 옥성호 씨의 두 번째 소설이자 믿음을 가지고 교회와 신앙심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과 믿음속에서 얼마나 힘이 들고 겉과 속이 다른 모순된 행보의 끝이 어떤 것인지를 작품의 화자인 목사의 하루의 일과를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대는 한국이 아닌 미국 시카고의 한인 교회를 무대로 무대만 다르지 국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소위 말하는 수면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은 물신주의에 찌들어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사의 하루를 보여주 듯 새벽기대에 일어나는 목사의 모습에서 시작을 합니다. 누구나가 그렇듯 사람인지라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무척 힘들어 하는 목사의 속마음을 보여주고 있죠. 그러나 그가 꾸준히 일어나서 새벽기도의 강단에 서는 것은 신앙과 은혜와 믿음이 아닌 순전히 교회의 핵심맴버가 모이는 새벽기도를 통해서 목회 철학과 활동에 그들이 절대적이기 때문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정집사의 등장에서 그의 평소와는 다른 파란을 일으킨 하루가 시작이 됩니다.

거룩함과 침묵과 경건함이 있어야할 기도시간에 한 여자를 안고 싶어 미치겠다고 통성을 하면서 기도하는 정집사의 등장에서 목사는 그의 안위와 고미에 대해서 궁금은 하지만 실은 교회 분위기와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 상담을 핑계로 그를 밖으로 대리고 나오면서 그와 얘기를 하면서 어긋나기 시작하는 하루 아침이 시작이 됩니다. 중진회의에서 300명이 마지노 선이라고 생각하다가 오늘 주일예배 참석자가 300명 이하로 떨어진걸 보고 듣는 순간 목양담당 목사에게 면박을 주고 구박하는 것은 마치 회사의 상사가 부하에게 힐책하고 갈구는 모습을 비춰주죠. 그러다가 청년부 리더의 신학추천서건에 대해서 듣는 순간 그는 마치 그를 앞세워서 신도들이 자신을 밀어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과 미움과 의심속에서 결국 아침 밥을 먹는 자리에서 아내에게서 수련회 도중 집으로 돌아온 딸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언을 듣게 됩니다. 목사의 딸인 은정의 자신은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도 같이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유독 기독교의 변질과 타락은 너무 많이 알려진 것이 사실이죠. 사회적 문란과 문제와 사건 사고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죠. 기독교는 유럽에 오면서 교리가 되었고 미국에 건너가면서 기업이 되고 한국에 오면서 재벌이 되었다고. 청빈정도는 아니지만 경건함과 세속과 엄연한 거리와 구분이 되어야할 종교적 순결을 잃은지 오래된 기독교의 문제와 모순을 목사의 하루속에서 여기저기 터지고 심란해 하는 속에서 결정타를 맞은 것은 바로 자신의 딸에서 절정에 이르는 모습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런 딸의 선언에 목사는 부모가 아닌 목사의 체면에 더 중점을 두는 모습을 보이면서 급기야 딸은 타협안으로 내 놓은 것이 바로 성이 될 때까지 나가주겠다 였죠. 오후에 심방을 돌면서 부목사를 통해서 들은 다른 교회의 담임목사의 횡포와 비리 모순과 부정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부목사의 목사를 내려놓고 기독교를 더 이상 믿지 않겠다는 소식과 자신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신앙심은 깊지만 자식이 선교에 나가는 것을 뜯어 말리려고 매일 기도를 했다는 한 어머니 등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딸과 대면한 목사는 옛날 장로였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딸에게 안나와도 좋다 그러나 언제든 돌아오라며 처음으로 목사가 아닌 아버지로 딸을 대하면서 손편지를 쓰는 모습을 보이며 이야기는 마칩니다.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영성과 문학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같은 작품을 쓰고 싶은 마음에서 펜을 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이와 같은 속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내 놓은 것이 바로 목사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 작품의 딸인 은정은 작가 자신이 아니였나 그런 생각도 합니다. 실제로 작가는 옥한음 목사의 아들이였고 기독교에 회의를 느껴서 끊었던 적이 있었죠.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예전의 모습과 그가 바라보고 봐 왔던 교회와 기독교의 모순과 그 불편한 속내를 이 작품에 써 나가면서 작가는 오늘날의 믿는 다는 기독교 신도와 목회자들에게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기를 원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은정을 통해선 목회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본의 아닌 공인이 된 자신들의 고뇌와 항상 모범적인 연기를 해야 하는 아이들이 나중에 많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봐온 그로선 목사와 아버지, 부모란 무엇인지를 또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지만 응답이 없으신 하나님은 너무도 신비스러워서 그런 어렵고 신비스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세상으로 떠나가는 기독교의 오늘날의 문제와 모순과 신앙심에 비상을 알린 어느 한인교회 목사의 특별한 하루를 통해서 교회사회의 문제점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사회의 문제와 모순과 부정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더 깊은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 굳이 기독교신자가 아니어도 꼭 한번 읽어볼 의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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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7
신진오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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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산악자전거 동호회의 회원들이 제주도의 김녕사굴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참변을 당하는 장면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이 됩니다.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회원들은 한명 한명 어둠의 존재로부터 꼼짝없이 굳어서 회원 중 한명인 희진마저 어둠의 존재로부터 덮쳐지면서 이야기는 시작이 되죠. 그리고 시간과 장소가 바뀌면서 서울에서 금주의 남편 주열이 갑작스레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 금주는 장례식장에서 정신이 없는 가운데 남편의 후배라는 진명이 찾아와 대면하게 됩니다. 퇴마사인 진명은 주열의 혼을 불러내어 주열이 무녀의 저주를 받아 죽었음을 알게 되고 주열로부터 아내 금주와 딸 세연을 부탁한다는 말을 듣고 이 사고의 진상을 파헤쳐나가게 되는데...

 

이번에 개봉하는 퇴마 무녀굴의 원작소설입니다. 흔히 이런 류의 작품은 옛날 TV에서 하던 '전설의 고향'이란 프로그램에 나왔을 법한 그런 이야기에 엄청난 인기와 현재에도 인기를 얻고 있는 퇴마록과 같은 류의 작품임을 알 수 있어서 한국판 미스터리 장르의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하면 우리는 장르소설이 너무 취약한 편이라 책으로 좋은 작품을 만나기가 결코 쉽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죠. 그런데 이 책은 제주도에 있는 김녕사굴에 얽힌 전설과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제주 4.3사건을 엮어서 무척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는 작품으로 정말 가독성이 장난이 아니어서 책을 재미있게 금방 읽어나갈 수 있었던 작품이었죠. 정말 읽으면서도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퇴마록'이 많이 연상되는 작품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진부한 스토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박진감 넘치는 사건전개를 통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공포를 실감나게 해주어서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이거 장난이 아님을 느낄 수 있고 정말 막판의 그 긴장감과 끝날때까지 마지막 한 장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 그 긴박감은 정말 장난이 아니죠~

 

첨에 진명으로부터 남편이 무녀의 저주로 죽었다는 말을 들은 금주는 진명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진명을 경계합니다. 그 와중에 자신을 좋아하던 회사의 상사가 남편과도 무척 유사한 과정의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저주의 실체와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 금주는 진명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한편 김녕사굴에 들어갔다가 실종되었던 산악자전거 동호회 회원들 중 한 명인 희진이 일년만에 발견되지만 귀신이 씌인 상태여서 환자의 상태의 치료에 급히 진명이 투입되는데, 희진에게 빙의된 귀신과 사투를 벌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또 희생자가 발생하게 되고 힘겨운 사투 끝에 진명은 희진에게 빙의된 원혼이 바로 주열을 죽게 만든 무녀의 원혼이며 무녀가 노리는 대상이 바로 금주인 것을 알게 되자 금주와 세연을 지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무녀의 원혼과의 한판 대결을 준비하고 원호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 김녕사굴에 직접 가게 되죠.

 

이 작품이 더욱 와 닿았던 것은 역시 우리의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원혼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전설의 주인공은 없을 것인데 이 작품 속 무녀가 바로 전형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죠. 그것도 아픈 역사의 한 장인 제주 4.3.사태 때 억울하게 희생당한 무녀여서 우리의 아픈 역사와 절묘하게 엮어낸 작가의 솜씨를 칭찬해줄 수밖에 없을 것 같고 그리고 할머니가 무당이었던 금주 집안의 내력이 연결되면서 한편의 운명적인 드라마가 펼쳐지게 되는 것은 또한 작가의 기량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던 대목이죠.

특히, 무녀의 원혼이 희진에게 빙의되어 병실을 초토화시키는 장면은 왠지 영화 '엑소시스트'를 연상시켰고, 다른 사람들에게 빙의되어 세연을 노리는 무녀의 원혼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공포를 선사해주었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김녕사굴에서 벌어지는 무녀의 원혼과의 대결과 결말은 한국 공포소설이 줄 수 있는 최대치에 접근하지 않았나 싶어서 진짜 마지막 한페이지를 다 넘기기 전까지 긴장감과 긴박감을 놓을 수 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무녀굴'이란 제목만 봤을 때는 식상한 내용의 그저 그런 작품의 그런 스토리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건 성급한 선입견으로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책을 읽는 내내 느꼈고, 첫 장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와 내용 전개를 선보여서 우리 공포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줄 작가를 만난 것 같아 기쁘고 반가웠던 작품이었습다.

우리에게도 공포소설의 소재가 널려 있다는 걸 생각하면 신진오 작가가 과연 앞으로 어떤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줄 건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고, 그리고 영화개봉이 임박한 이 때 극장에서 만날 무녀굴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지 궁금하면서도 언뜻 본 예고편에서 원작을 떨어뜨리지 않는 한도내에서 잘 만들어져서 나와줬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제발 어설프게 원작을 훼손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한국판 장르소설인 무녀굴 정말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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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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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이 도시와 전염병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 페스트로 시달린 사람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나도 이곳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란 얘기죠.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상태에서 좋다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런 것을 알면서 될 수 있으면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가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항상 빠져나가려고 했어요.

...

이론이란 것은 사람들의 머리를 혼잡스럽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살인행위에 동의하도록 만들어버렸어요. 덕분에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명료한 얘기를 하지 않는데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정도를 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나는 재화와 희생자가 있다고 말할 뿐, 그 이상은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록 내 자신이 재화가 되는 일이 있다할지라도 나는 그곳에 동조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차라리 죄없는 살인자가 되길 바랍니다. (이하 생략)"

 

페스트(흑사병)가 돌면서 도시는 고립됩니다. 그리고 고립과 죽음 앞에 팽개쳐진 군상은 그 자체가 하나의 소우주가 되어 찐한 이야기로 남겨집니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을까요. 아마도 페스트의 공포에 갇힌 사람들은 사실 세상이라는 넓은 감옥 속에 있는, 하나의 독방 속에 있는 것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독방에 있으나 합방에 있으나 기분 차이만 있을 뿐 감옥에 있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듯이, 페스트가 물러간다고 한들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변화란 감정 상의 기복 뿐이지 실제적인 현상에서의 변화는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흑사병이 없어진다고 해도 우리의 삶에 있어 무서운 것은 흑사병 하나 뿐만은 아니지요. 하지만, '감정의 기복'이란 게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이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크나큰 고난까지 다가오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에게 자신을 내버리며 느닷없이 운명론자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한편으론 불가능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 고난과 부조리한 세상에 대항하여 끝없이 저항하기도 합니다. 어느 편이 '옳은' 선택인지는 속단하기 힘들겠지요. 어찌되었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고난을 딛고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세상을 헤쳐나간다는 것이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가지고 올 수도 없고, 또 결국에는 다 부질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한번씩은 찾아오게 되는 성취감과 승리감, 감동과 행복의 감정에는 그동안의 고통을 모두 보상해주고도 남을만한 충만감이 있습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그 찰나에 가까운 순간을 위해서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결국 우리는 감정의 기복이 있기에 삶을 소중히 여기며 감정의 기복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스스로 감정의 기복을 만들어갈까요. 다시 말해, 왜 우리는 스스로를, 고통스러우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다른 페스트 속으로 몰아넣을까요. 실상 모든 페스트는 우리와 함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존재할 '부조리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힘들게 살아가며 언제나 순간을 믿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겠지요.

 

얼마전 JTBC에서 메르스사태 관련해 카뮈의 이 페스트가 소개가 되었죠.

"명령이 있어야 그렇게 하지"

"시 당국은 자진해서 무엇을 해볼 생각도 전혀 없었고 아무런 대책도 없었지만"

적어도 무기력했던 메르스 초기 단계의 방역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입니다. 그 이후에도 대책은 뒷북이었고, 관리는 허술했습니다.

"관료들이 위만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은 스스로를 여론에서 자가 격리시켜왔고. 그 결과 메르스는 궁궐 밖 먼 곳에서 풍문으로 떠돌았다"

아마도 메르스는 곧 지나가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은 안전해질 것인가. 알베르 까뮈는 작품 속에서 말합니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사라져 버리지도 않는다"

사실 알베르 까뮈도 자신의 작품이 '긍정으로 읽히길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고 하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페스트에 저항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시지프의 신화와 그대로 맞아떨어집니다. 산 위로 바위를 굴리며 힘들게 올라가면 다시 바위는 산 아래로 미끄러지고, 그러면 다시 굴리고, 또 다시, 또 다시... 별 내용도 없는 문장 하나를 가지고 마음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수정하는 인물의 이야기도 이와 마찬가지지요.

 

3자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보이기도 하는 이들 주인공들의 모습은 작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인 것 같습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가장 확실한 인생의 해결책인 '죽음'으로 모든 갈등을 정리하는 반면, '페스트'의 주인공들은 무의미할지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또다른 해결책을 모색합니다.(솔직히 다른 해결책이란 건 없지만 모색의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이겠지요.) '이방인'이 증상이면 '페스트'는 처방이요, '시지프의 신화'는 진단서와 처방전의 합본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비유일까.

 

얼마전에 메르스사태라고 할 정도로 나라 전체가 페닉에 빠졌던 상황에서 이 페스트는 너무도 많은 유사점과 많은 것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며 꼭 우리 정부와 기관과 당국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에서도 나오듯이 페스트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하듯이 가까운 시일에 메스와 같은 것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메르스를 겪은지 얼마않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카뮈의 페스트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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