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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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이 도시와 전염병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 페스트로 시달린 사람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나도 이곳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란 얘기죠.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상태에서 좋다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런 것을 알면서 될 수 있으면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가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항상 빠져나가려고 했어요.

...

이론이란 것은 사람들의 머리를 혼잡스럽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살인행위에 동의하도록 만들어버렸어요. 덕분에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명료한 얘기를 하지 않는데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정도를 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나는 재화와 희생자가 있다고 말할 뿐, 그 이상은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록 내 자신이 재화가 되는 일이 있다할지라도 나는 그곳에 동조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차라리 죄없는 살인자가 되길 바랍니다. (이하 생략)"

 

페스트(흑사병)가 돌면서 도시는 고립됩니다. 그리고 고립과 죽음 앞에 팽개쳐진 군상은 그 자체가 하나의 소우주가 되어 찐한 이야기로 남겨집니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을까요. 아마도 페스트의 공포에 갇힌 사람들은 사실 세상이라는 넓은 감옥 속에 있는, 하나의 독방 속에 있는 것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독방에 있으나 합방에 있으나 기분 차이만 있을 뿐 감옥에 있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듯이, 페스트가 물러간다고 한들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변화란 감정 상의 기복 뿐이지 실제적인 현상에서의 변화는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흑사병이 없어진다고 해도 우리의 삶에 있어 무서운 것은 흑사병 하나 뿐만은 아니지요. 하지만, '감정의 기복'이란 게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이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크나큰 고난까지 다가오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에게 자신을 내버리며 느닷없이 운명론자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한편으론 불가능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 고난과 부조리한 세상에 대항하여 끝없이 저항하기도 합니다. 어느 편이 '옳은' 선택인지는 속단하기 힘들겠지요. 어찌되었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고난을 딛고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세상을 헤쳐나간다는 것이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가지고 올 수도 없고, 또 결국에는 다 부질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한번씩은 찾아오게 되는 성취감과 승리감, 감동과 행복의 감정에는 그동안의 고통을 모두 보상해주고도 남을만한 충만감이 있습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그 찰나에 가까운 순간을 위해서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결국 우리는 감정의 기복이 있기에 삶을 소중히 여기며 감정의 기복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스스로 감정의 기복을 만들어갈까요. 다시 말해, 왜 우리는 스스로를, 고통스러우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다른 페스트 속으로 몰아넣을까요. 실상 모든 페스트는 우리와 함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존재할 '부조리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힘들게 살아가며 언제나 순간을 믿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겠지요.

 

얼마전 JTBC에서 메르스사태 관련해 카뮈의 이 페스트가 소개가 되었죠.

"명령이 있어야 그렇게 하지"

"시 당국은 자진해서 무엇을 해볼 생각도 전혀 없었고 아무런 대책도 없었지만"

적어도 무기력했던 메르스 초기 단계의 방역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입니다. 그 이후에도 대책은 뒷북이었고, 관리는 허술했습니다.

"관료들이 위만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은 스스로를 여론에서 자가 격리시켜왔고. 그 결과 메르스는 궁궐 밖 먼 곳에서 풍문으로 떠돌았다"

아마도 메르스는 곧 지나가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은 안전해질 것인가. 알베르 까뮈는 작품 속에서 말합니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사라져 버리지도 않는다"

사실 알베르 까뮈도 자신의 작품이 '긍정으로 읽히길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고 하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페스트에 저항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시지프의 신화와 그대로 맞아떨어집니다. 산 위로 바위를 굴리며 힘들게 올라가면 다시 바위는 산 아래로 미끄러지고, 그러면 다시 굴리고, 또 다시, 또 다시... 별 내용도 없는 문장 하나를 가지고 마음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수정하는 인물의 이야기도 이와 마찬가지지요.

 

3자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보이기도 하는 이들 주인공들의 모습은 작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인 것 같습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가장 확실한 인생의 해결책인 '죽음'으로 모든 갈등을 정리하는 반면, '페스트'의 주인공들은 무의미할지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또다른 해결책을 모색합니다.(솔직히 다른 해결책이란 건 없지만 모색의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이겠지요.) '이방인'이 증상이면 '페스트'는 처방이요, '시지프의 신화'는 진단서와 처방전의 합본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비유일까.

 

얼마전에 메르스사태라고 할 정도로 나라 전체가 페닉에 빠졌던 상황에서 이 페스트는 너무도 많은 유사점과 많은 것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며 꼭 우리 정부와 기관과 당국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에서도 나오듯이 페스트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하듯이 가까운 시일에 메스와 같은 것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메르스를 겪은지 얼마않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카뮈의 페스트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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