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여행입니다 - 나를 일으켜 세워준 예술가들의 숨결과 하나 된 여정
유지안 지음 / 라온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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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나그네 인생이라 하면 왠지 낭만 있게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처지에 있는 그런 삶이었으니. 유목민들이 계절을 따라 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것도 여행이라 하지 않는다. 대항해 시대에 미지의 땅을 찾아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범선이라는 교통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류는 산업 혁명 이후 증기기관차를 발명하고, 이후 자동차와 비행기 등 이동수단을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물류 이동 뿐만 아니라 여객 운송이 활성화되면서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견문을 넓히는 여행은 귀족들의 전유물에서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일이 되었다. 비록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넘게 국외 여행이 제한되기도 했지만, 최근에 다시 여행이 재개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직접 나가지 못할 때는 영상 매체 또는 사진이 포함된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이 훌륭한 대인이 될 수 있다. 먼저 가서 보고 느낀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고,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새롭게 알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미 진부한 말이지만 여행 또한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읽은 유지안의 여행 에세이는 담백하면서도 찰진 느낌이 있다. 여느 패키지 여행이 아닌, 그러면서도 자유로운 여행도 아닌 ‘목적’에 충실한 묵직한 여행 이야기들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 마치 정밀 유도 미사일 같이 평생에 추앙(!)하던 작가들의 흔적을 찾아 세계 곳곳을 수 년에 걸쳐 답사한 기록이기에 그러하다. 단지 여행이 좋고, 걷는 것을 좋아해서 떠난 여행이 아님을 프롤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생 마음에 그리던 활자 속의 작가들-물론 쇼팽 등의 음악가, 고흐 등의 화가도 있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그곳을 찾아 저자는 결코 쉽지 않은 노정을 시작한다. 저자의 여정을 같이 따라 읽어가다 보면 익히 아는 작가, 음악가, 화가도 있지만, 솔직히 잘 모르는 이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이번 기회에 저항 시인 나짐 히크메트라는 인물을 새로 알게 되었으니 족하지 않은가. 익숙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사고의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책 한 권 읽는데 들이는 공력과 시간 값 이상은 충분히 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함에 안주하려 한다. 은퇴 후 인생 제2막을 살아가는 저자의 뚜벅이 여행길을 행간으로 쫓아가다 보면 타성이 젖어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비쳐진다. 꼭 저자처럼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할때 새로운 생각을 하려 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느 다짐을 해 본다.

저자는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등이 산책했던 길을 따라 걷고, 작가의 창작 공간을 둘러 본다. 호젓한 길을 걸으며 생각을 가다듬은 다음 정해진 시각에 ‘묵직한’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대문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젼 없으면 불안해지는 작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창작을 위해 그보다 많은 시간을 산책하며 생각을 가다듬고, 그 시대와 인간 군상을 작품 속에 담아낸 그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저자 유지안은 장장 900일에 이르는 여행을 통해 별처럼 빛나는 인물들의 삶의 자취를 직접 찾아가 오감으로 느낀 것을 사진과 활자로 정리하여 2차원의 지면으로 독자에게 소개해 준다. 저자가 여행을 통해 인생의 고민을 조금씩 풀어나간 것처럼 책을 읽어 나가며 위로를 받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각 장별로 테마를 정하고 거기에 6~7곳의 여행지와 작가를 소개한다. 자유롭게 떠나 위로하고 치유를 받고, 긍정의 힘을 갖고 용기로 도전하고 극복하며 자신의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여행이 이 책의 주제가 된다. 아, 그래서 인생을 알려면 여행을 떠나라고 하는 모양이다. 1킬로그램이 안되는 책이 읽다보면 엄청 무거움을 느끼게 된다. 저자의 사유와 사람과 인생을 바라보면 통찰의 무게가 그러하다.

*** ***
책상 위에는 작가가 사용한 펜과 잉크, 신문, 놋쇠 촛대 등이 놓여 있다. 정원 숲에서 깊은 사색을 하며 생각을 정리한 작가는 이 묵직한 책상 앞에서 규칙적인 집필 활동을 했으리라. 대문호의 성실함에 숙연해진다.(103p)

작가의 생가와 주변 저택들을 걷는 시간은 마치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읽는 기분이었다. 작가가 세례를 받고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자니 셰익스피어 시대를 걸었던 하루가 감동으로 다가온다.(2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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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의 신인류가 몰려온다 - 일생 최후의 10년을 최고의 시간으로 만드는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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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오면서 막상 닥쳐야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쌓아가는 적립 포인트를 보면서 나름 지혜롭게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괜찮겠지 하고 신용카드 할부를 하다 보면 언젠가 닥치는 고지서를 보듯. 젊을 때는 노인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지만 결혼과 육아, 교육이란 쓰나미로 수차례 넘어서다 보면 노화의 선발대가 찾아온다. 바로 알게 모르게 늘어나는 주름과 흰 머리들. 거기에 작은 글씨를 읽을때 눈을 저절로 찡그린다. 노안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노인이란 테두리 안으로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지난 해 외신에서는 심심찮게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란 예측을 했다. 그러면서 전쟁이 일어나면 세계 2위군사 강국인 러시아가 단기간 안에 승기를 잡을 것이라 전망을 했다. 결국 전쟁은 일어났고 예상대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까지 진격하여 압박했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된 젤렌스키가 도망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티셔츠 차림의 젤렌스키는 수도를 지켰고 자국민과 전세계를 향해 러시아의 침공에 대항할 것임을 천명했다.

객관적 전력에서 약세인 우크라이나가 효과적으로 러시아와 접전을 벌일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물론 미국 등 서방의 무기, 물자 지원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지도부와 국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동원령과 징집에 동참하여 외적에 대항하고자 뭉친 것이 우선 아닐까 생각한다. 다가오는 전운을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미리 대비하고, 국민들의 이해와 동참을 구한 것이 러시아와 다른 점이다. 반면 러시아는 준비를 제대로 하니 않은듯 전쟁이 지속되자 자중지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90세를 넘긴 정신과 전문의사 이시형 박사의 최신작 ‘신인류가 몰려온다’를 읽으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을 떠올린 것은 최고령 사회 또한 전쟁 못지 않은 재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내게 해당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순을 넘어서다 보니 노화의 전조 현상이 하나 둘 나타난다. 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님을, 아직 늦지 않았음을 노익장을 과시하는 저자의 열정어린 조언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다.

노인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3장에서 장수의 늪이라 표현한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소망하지만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오히려 늪에 빠진 것처럼 재앙이 되고 만다. 책을 읽으며 크게 3가지로 정리해 봤다. 1) 심리적인 대비 2) 건강 관리 3) 재정…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음으로 느낄 때 노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몸이 피곤하면 쉽게 짜증을 내고 완고해질 수 있다. 이것을 이겨내려면 취미 활동과 대화를 나눌 친구가 있으면 좋다. 진정한 장수의 복은 그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근력 운동을 시작하고 탐식을 하지 않는 생활을 실천해야겠다. 노인에게 재정은 쉽지 않은 문제다. 수입이 줄기 때문에 지출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건강 관리를 잘 하면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가진 것을 줄여 나가고 움켜 쥐기보다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저자처럼 전문직-정신과 의사-이 아닌 일반인이라도 초고령 시대를 자기 여건에 맞춰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제6장 ‘최후의 10년, 이렇게 준비하라’를 읽으며 인생 2막을 대비해서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맨날 음식을 사 먹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50대가 넘으면 부부 관계에도 자연스럽게 변화가 찾아온다. 아내는 여행을 갈 때 남편을 데려가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겪어보면 안다. 혼자가 되었을 때를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늦은 것 같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저자의 애정이란 조언에 힘을 내본다.

*** ***

노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나이는 75세부터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노화가 시작된다. 85세 이상이면 진단은 물론 치료도 아주 까다롭고 어려워진다. 이 나이가 되면 노인은 작은 변화에도 엄청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28p)

무슨 병이든 앓고 잘 낫지 않으면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슬프고 잔혹한 일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생애 한 번은 찾아오는 공평한 운명이기도 하다. 그럴 때 인간은 비로소 처음으로 알게 된다. 내 발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던가. 시원하게 배설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던가.(103p)

그래서 요즈음은 어떻게 사느냐보다 말년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숙제로 떠오른다. 웰 리빙도 중요하지만 웰 다잉도 잘 챙겨야 한다. 옛말에 죽는 복도 타고난다고 했다. 살아 있는 한 삶의 의미가 살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건강 타령을 하지만 마지막에야말로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게 죽어야 한다.(1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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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 김춘수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김춘수 지음, 조강석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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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력고사 세대. 가을철이면 교내 시화전이 열렸다. 자작시 또는 유명을 떨친 시를 그림과 함께 손 글씨로 적어 패널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한다. 단골로 김춘수의 꽃이 빠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십대 후반 떨리는 가슴을 그이만큼 담백하게 담아낸 시어가 있을까 싶었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이 되고 싶다’

방과 후에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깔고 책을 읽고 매주 한 번씩 써클 모임을 하던 소년은 어느덧 반백을 넘어가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고 있다. 그 시절 내게 다가온 김춘수의 꽃은 아직(yet)인 상황이었다. 국어 시간에 색색의 형광 펜으로 그어가며 소재와 주제, 시상을 해부하듯 분석하던 땀내 나는 남자 교실의 설익음 또한 기억에 생생하다. 세월이 흘러 잊혀지지 않는 눈짓을 보낸 사람을 만나 꽃길을 걷기도 하고,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런 삶의 모습들이 모여 이야기가 되었다. 시인은 이런 미묘한 변화를 시어로 박제한다.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은 시인 김춘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한 시그림집이다. 책으로 엮은 시화집인데 여섯 분의 현역 화가들이 시상을 따라 그린 작품이라 대부분 2022년작이다. 그림마다 보고 읽는 느낌이 다르다. 김선두 화가는 화가 이중섭을 그렸다. 김춘수의 시 ‘내가 만난 이중섭’과 함께 김선두가 먹으로 그린 그림을 보노라면 이중섭의 눈물이 배어나오는 듯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한 뼘씩 지우고 있는 이중섭. 동경에 사는 아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에. (111쪽을 보라)

김춘수는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 발간 이후 17번째 시집 ‘쉰한 편의 비가’를 2002년에 펴낸 뒤 2004년에 타계한다. 엮은이 조강석은 김춘수의 일생에 걸친 시 여정을 한 권으로 시화집으로 묶어 냈다. 목차에서 60년 넘는 시인의 발자취가 시집과 선별된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워낙 긴 세월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 시인의 작품 세계 또한 변천을 겪게 되는데 부록으로 있는 ‘작품 해설’에서 길라잡이를 해 준다.

시를 좀 더 이해하고 시인이 보고 느낀 시상을 공감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인의 살았던 시대와 만났던 사람. 그에게 영향을 준 책과 작가들. 살았던 동네를 찾아보는 노력들이 있다. 그런 노정의 결실이 문학과 여행이 융합된 에세이로 출간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를 사는 6명의 화가가 시인의 대표작을 묵상하며 그려낸 그림들이 독자에게 색다른 감동을 준다. 아는 만큼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시집을 넘기며 대부분 처음 접하는 작품이라 좀 더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시를 챙겨보지 않은 메마른 심성이 드러나는 셈이다. 시와 그림집에 담긴 60년 넘는 시인의 쉼 없는 창작 여정을 훑어 보며 한 작은 결심. 매스 미디어는 다이어트를 하고 여력을 책 읽기에 써야겠다는 소박한 다짐을 해 본다.

*** ***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은 김춘수가 1956년 버스 안에서 우연히 본 신문 국제면에 실린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소련은 1956년에 무장 군인들을 동원해 폴란드와 헝가리의 반공산주의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김춘수가 본 사진은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어린 소녀의 것이었다. 시는 이 사건을 극화하면서 이데올로기와 폭력이 개인의 삶을 훼손시키는 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나아가 헝가리에서 자행된 폭력은 비단 한 국가의 특정한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한국전쟁 혹은 그 이전에라도 한국의 소녀에게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음직한 일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178-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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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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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내며 기억나는 것들. 반공과 멸공, 일본에게 당한 식민지 시절에 대한 비분강개 등이 아직도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일제 강점기가 어떤 시절이었는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데 머무르고 말았다. 내가 당시를 살았다면 소신을 지키고 일본 제국의 황국 신민 정책과 대동아 공영 전쟁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후타(딱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숨 죽이던 그 시절 소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이어령 교수의 유작 한국인 이야기 완결판인 제4권 ‘너 어디로 가니’를-둘째 꼬부랑길 : 한국어를 쓰지 못하는 교실 풍경- 읽으며 마음이 찔린 부분이다.

이런 생생한 증언은 저자 이어령이 일제 강점기에 유소년기를 보냈기에 가능하다. 본래 소학교에 다니던 그는 어느날 교패가 국민학교로 바뀜을 본다. 어린 시절이라 잘 몰랐던 어른들의 세상-36년에 걸친 일제 강점기-을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12개의 꼬부랑 고개로 풀어낸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이 여정을 천지현황으로 시작하는 천자문 고개로 출발한다. 천지현황(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이렇게 외웠는데 정작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어령이 이끌어 주는 꼬부랑 고개를 꾸역꾸역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12고개를 넘어 마지막 장 ‘자세히 읽기’에 이르렀다.

왜 천자문에서는 하늘이 검다고 했을까? 책을 읽다가 과연 나는 이런 질문을 했나 싶었다. 그저 한자말 외우기에 급급했지, 주홍사라는 분이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될 정도로 고심하며 완성한 4글자로 구성된 250개 문장이 무슨 뜻인지 굳이 알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데 없이 저자 이어령은 현관 이야기를 꺼낸다. 거의 모든 건물이나 집에 있는 그 현관이다. 현관에 쓰인 한자말 ‘현’이 어떤 의미인지 또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한국인 시리즈 제4권 ‘너 어디로 가니’는 전작들-제1권 너 어디에서 왔니, 제2권 너 누구니, 제3권 너 어떻게 살래-에 이어 과거 경험에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오늘에 적용할 필요를 역설한다. 그저 옛날 이야기로 치부하고 장롱 속에 넣어둘 일이 아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와 방향을 정하려면 축적된 경험과 지식, 그리고 적절한 판단과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36년에 걸친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를 겪었다. 그저 한국사 교과서 몇 쪽에 기술된 내용으로 식민 통치를 이해했다고 치부해서는 안된다. 생생한 증언을 들어야 한다. 세계는 다시금 자국 중심주의로 회귀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와 경제가 그렇다. 영토 확장과 이권을 위해 이웃 국가 침공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정세 또한 만만하지 않다. 군국주의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한국인 시리즈 1독을 마치면서 드는 생각. 내년 가을에 재독을 해야겠다. 1독에선 내용을 배우는(학) 것으로 하고 2독 때는 그것을 내것으로 익히는(습) 과정으로 삼으려 한다.

*** ***
이처럼 근대 이전 교육은 획일적인 기준 대신 한 사람씩 맞춤교육을 하였다. 서당이란 작은 공간에서 여섯 살과 스무 살이 함께 배울 수 있었다. 때로 낡은 것이 새롭고 새로운 것이 낡을 수 있다. (79p)

상자와 보자기는 자본주의와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금고, 장롱, 창고, 아파트 등은 자본주의가 만든 상자들이다. 아파트도 겹겹이 쌓아올린 상자가 아닌가. 소유한 게 많을수록 상자 크기는 커진다. 게다가 근대화를 상징하는 ‘기차’도 움직이는 철 상자라고 할 수 있다. (139p)

그러니까 들어오는 입구를 ‘현관’이라고 하는 것은 입구가 어두워서가 아니다. 가장 성스러운 데로 들어가는 문, 지상에서 정신적인 데로 들어가는 문을 현관이라고 정하는 거다. 도교에서 기를 순환시키는 최초의 장소를 처음 현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3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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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바다로 간다면 - NASA의 과학자, 우주의 심해에서 외계 생명체를 찾다
케빈 피터 핸드 지음, 조은영 옮김 / 해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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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가 머무는 양수의 성분이 바닷물과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실제로 수정된 지 1~2개월 무렵부터 태아는 물고기 처럼 양수 속에서 아가미 호흡을 하며 지낸다. 이처럼 생명의 근원을 찾는 여행에서 깊은 바다는 예전부터 과학자들의 탐구와 탐험의 대상이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우주는 약 4백년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목성의 4개 위성을 발견하는 등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초음파 검사를 통해 태야를 관찰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여전히 깊은 바다, 심해 탐사는 많은 장애물 때문에 더디기만 한 것이 현실이다.

‘우주의 바다로 간다면’이란 희망어린 책 제목에 이끌려 4백 쪽에 이르는 조금은 난해한 독서를 시작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는 과학자인 저자 캐빈 피터 핸드는 우주에 있는 깊은 바다에서 생명체를 찾는 여정을 신나게, 담담하게 풀어낸다. 혹자는 그들에게 왜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하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의회에서는 나사의 우주 탐사 계획을 보다 깐깐하게 심사하는 추세라 한다. 그러나 그간의 경과를 살펴보면 우주 탐사를 위해 많은 인력과 재원을 투자한 결과 인류는 비약적인 기술 발전의 결실을 거뒀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는 약 11km 정도라고 한다. 최근 연구 결과로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에 두꺼운 얼음층 아래 수백 km 깊이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측정이 가능한 것은 탐사선과 고성능의 전파 망원경이 수집한 자기장과 스펙트럼 등의 자료를 분석하고 지구의 그것과 대조한 결과이다. 다만 목성까지 편도로 5년 넘게 탐사선이 이동해야 하고 시료를 채취하여 지구까지 가져 오려면 엄청난 양의 연료를 실은 로켓이 필요한데 현재의 기술력과 예산으로는 어렵다고 한다.

우주선 무게의 85%는 연료라고 한다. 현재까지 인류는 달과 지구 궤도까지 유인우주선을 보냈는데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고 대기권 밖으로 탈출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탓이다. 과학자들은 지구 이외의 행성 또는 위성에도 생명이나 그 흔적이 남아 있는지 탐사를 해오고 있다. 지구의 심해를 탐사하고 인체를 연구하는 노력 이상으로 말이다. 전문 용어들이 많이 나와서 쉽게 읽어낼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포털 검색과 너튜브 영상 자료를 찾아보며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는 심해 탐사 잠수정을 타고 열수구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관찰한다. 미지의 세계로만 여겨졌던 심해와 머나먼 우주 공간에서 생명체와 그 흔적을 찾는 지난한 여정은 이들의 열정 때문에 멈춤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우리나라 심해 탐사선이 인도양에서 열수구를 발견했다는 뉴스를 봤다. 분명 존재하고 있는데 이제사 인간의 눈(카메라)에 발견된 것이다. 광활한 우주 어느 곳엔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더 많기에 저자의 부단한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각박한 세속 또한 우주에서 내려다 보면 어릴 적 멍 때리며 관찰하던 개미 떼와 다르지 않다.

*** ***

타이탄은 태양계에서 이견 없는 탄소의 여왕이다. 지표의 호수에서건, 아래의 바다에서건 타이탄은 아마도 생명이 필요한 모든 탄소를 갖고 있을 것이다. 깊은 바다와 탄소가 풍부한 호수의 조합으로 타이탄은 지표의 ‘기이한 생명체’와 우리가 알고 있는 (물이라는 용매에 기반을 둔) 지표 아래의 생명체를 뒤져볼 매력적인 장소가 되었다. (178p)

물론 우리의 보금자리 지구 말고 다른 세상은 생명을 품고 있지 않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바다세계는 적어도 생명의 기원 가설을 시험할 수 있는 곳이다. 어느 쪽이든 저곳에서 생명을 찾아내든 아니든 우리는 생명이 어디에서 어떻게 기원하고 수십억 년 전 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를.(225p)

먼저 지구 너머에서 생명체를 발견하려면 적어도 다움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났어야 한다. 생명의 씨앗이 뿌려져 생명이 기원하고 , 그 이후 생명체가 그곳에서 성공적으로 수를 불려 한동안 지속하고, 마지막으로 그 생명체가 존재했거나 존재함을 알리는 증거가 남아 있어야 한다. 생명체가 살았던 곳이라고 해서 그 생명체를 발견하거나 탐지할 방법이 확실한 것은 아니다. 지구만 보더라도 지각 활동이 암석을 재활용하면서 수십억 년 전에 존재했던 미생물의 화석 증거 대부분을 지워버렸다. (3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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