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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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내며 기억나는 것들. 반공과 멸공, 일본에게 당한 식민지 시절에 대한 비분강개 등이 아직도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일제 강점기가 어떤 시절이었는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데 머무르고 말았다. 내가 당시를 살았다면 소신을 지키고 일본 제국의 황국 신민 정책과 대동아 공영 전쟁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후타(딱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숨 죽이던 그 시절 소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이어령 교수의 유작 한국인 이야기 완결판인 제4권 ‘너 어디로 가니’를-둘째 꼬부랑길 : 한국어를 쓰지 못하는 교실 풍경- 읽으며 마음이 찔린 부분이다.

이런 생생한 증언은 저자 이어령이 일제 강점기에 유소년기를 보냈기에 가능하다. 본래 소학교에 다니던 그는 어느날 교패가 국민학교로 바뀜을 본다. 어린 시절이라 잘 몰랐던 어른들의 세상-36년에 걸친 일제 강점기-을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12개의 꼬부랑 고개로 풀어낸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이 여정을 천지현황으로 시작하는 천자문 고개로 출발한다. 천지현황(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이렇게 외웠는데 정작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어령이 이끌어 주는 꼬부랑 고개를 꾸역꾸역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12고개를 넘어 마지막 장 ‘자세히 읽기’에 이르렀다.

왜 천자문에서는 하늘이 검다고 했을까? 책을 읽다가 과연 나는 이런 질문을 했나 싶었다. 그저 한자말 외우기에 급급했지, 주홍사라는 분이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될 정도로 고심하며 완성한 4글자로 구성된 250개 문장이 무슨 뜻인지 굳이 알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데 없이 저자 이어령은 현관 이야기를 꺼낸다. 거의 모든 건물이나 집에 있는 그 현관이다. 현관에 쓰인 한자말 ‘현’이 어떤 의미인지 또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한국인 시리즈 제4권 ‘너 어디로 가니’는 전작들-제1권 너 어디에서 왔니, 제2권 너 누구니, 제3권 너 어떻게 살래-에 이어 과거 경험에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오늘에 적용할 필요를 역설한다. 그저 옛날 이야기로 치부하고 장롱 속에 넣어둘 일이 아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와 방향을 정하려면 축적된 경험과 지식, 그리고 적절한 판단과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36년에 걸친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를 겪었다. 그저 한국사 교과서 몇 쪽에 기술된 내용으로 식민 통치를 이해했다고 치부해서는 안된다. 생생한 증언을 들어야 한다. 세계는 다시금 자국 중심주의로 회귀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와 경제가 그렇다. 영토 확장과 이권을 위해 이웃 국가 침공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정세 또한 만만하지 않다. 군국주의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한국인 시리즈 1독을 마치면서 드는 생각. 내년 가을에 재독을 해야겠다. 1독에선 내용을 배우는(학) 것으로 하고 2독 때는 그것을 내것으로 익히는(습) 과정으로 삼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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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근대 이전 교육은 획일적인 기준 대신 한 사람씩 맞춤교육을 하였다. 서당이란 작은 공간에서 여섯 살과 스무 살이 함께 배울 수 있었다. 때로 낡은 것이 새롭고 새로운 것이 낡을 수 있다. (79p)

상자와 보자기는 자본주의와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금고, 장롱, 창고, 아파트 등은 자본주의가 만든 상자들이다. 아파트도 겹겹이 쌓아올린 상자가 아닌가. 소유한 게 많을수록 상자 크기는 커진다. 게다가 근대화를 상징하는 ‘기차’도 움직이는 철 상자라고 할 수 있다. (139p)

그러니까 들어오는 입구를 ‘현관’이라고 하는 것은 입구가 어두워서가 아니다. 가장 성스러운 데로 들어가는 문, 지상에서 정신적인 데로 들어가는 문을 현관이라고 정하는 거다. 도교에서 기를 순환시키는 최초의 장소를 처음 현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3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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